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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Feb 05. 2023

풍경같은 오늘

나&남편

"나갈 거예요?"


아침 7시 30분,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향해 잠에서 깬 남편이 묻는다. 좀 더 자두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심스레 움직였는데, 남편의 잠귀는 가동되고 있었나 보다.


요 몇 주 사이에 남편과 나의 주말 스케줄이 각각 있다 보니 함께 할 기회가 없었기에 남편이 주말 근무를 가면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고 온다든지, 산사에서 108배를 하고 온다든지 하면서 주말 오전을 보냈다.


그런데 오늘은 주말을 함께 보냄에도 불구하고 어젯밤 남편이 늦게 잠들었다는 걸 알기에 나 혼자 아침 드라이브를 나서려고 했던 것이다.


"같이 나갈래요?"

 

나의 물음에 남편은 대답 대신 아이 마냥 벌떡 일어나서 씻는다. 그 사이 나는 아들이 일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주먹밥을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주말 드라이브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디로 갈까......

사실 어제부터 미역국이 계속 생각났다. 행동으로 옮기자면 미역국 끓이기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이지만, 예전 근무지 근처에 할머니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의 가자미 미역국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하는 곳은 아니기에 접을 수밖에. 그다음 선택지로 결정한 곳이 기장이고, 그곳에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미역국 전문점이 아침 8시 30분부터 영업한다는 걸 확인하고 시동을 걸었다.


[적당한 거리의 드라이브를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주말 오전에 내가 누리고 싶은 두 가지 모두를 다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남편과 함께.


40여분 정도를 느긋하게 달리면서 남편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새로 발령받은 지점 근처에 구립 도서관이 있는데, 너무 좋아서 점심 식사 후에 꼭 다녀온다.

머리 정수리 부분에 흰머리카락이 많이 생겼다.

요즘엔 과식하면 속이 부대껴서 힘이 든다.

일요일 오전에는 도로에 차가 많이 없어서 드라이브하기에 너무 좋다.

올 한 해, 아들 뒷바라지에 함께 잘해보도록 노력하자.

다시 학부로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다......


강물이 잔잔하게 흐르듯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남편이 그냥 친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편하게" 말할 수 있고, "편안하게" 답해준다.

아이의 질풍노도가 한창이었을 때, 나의 어수룩한 대응에 아이와 내가 부딪힐 때도 남편은 "애한테 속상해도 자기는 나한테 다 풀어요." 하면서 나의 미숙함을 다 받아주었다.


오전 아홉 시를 조금 넘겨 도착한 기장의 식당은 이미 문전성시였다.

북적이는 건 싫지만 나도 남편도 시장기가 있었던 상태라서 들어가 보았다.

가장 기본의 가자미 미역국 2인분을 주문하고 10여분 정도 기다렸다.

뚝배기 안에 펄펄 끓는 미역국을 보자 북적이는 어수선함은 뒷전이고 맛있게 한 그릇 뚝딱했다.

남편도 정말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내가 만들어 주는 음식에 투정이라고는 없는 사람인데, 내가 가자고 하는 식당 음식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다.


처음부터 닮았던 것인지, 살면서 닮아가는 건지.

아마 후자가 더 적합하리라.

어느새 취향과 식성과 생각등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여겨진다.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라든지, 미사여구가 없어도 남편이 호소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건, 처음 만날 때부터 20여 년을 살고 있는 지금까지 변함없는 마음의 진정성을 느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나와 송정 바닷가로 갔다.

우리는 바다뷰 방향으로 주차하고 커피를 사 와서 차 안에서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예전에는 나의 고민과 우울감을 달래주던 곳인데, 이제는 남편과 토스트도 먹고,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는 아늑한 곳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차 앞유리를 통해 내려오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끼고, 자장가처럼 잔잔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30분 남짓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이면 아들은 성인이 될 것이고, 진작에 독립을 희망해 온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집을 빠져나갈 것이다.

지금도 35평형의 아파트가 세 식구에겐 과분한 평수라고 생각하는데 아들이 독립하고 나면 그 과분함이 더 크게 느껴질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고 안도하는 건, "남편"이라는 뒷배를 믿고 있어서다.


계획하지 않아서 여유로웠고, 남편과 함께하는 단정한 어우러짐이 나의 주말을 더욱 값지게 해 주었다.

좋아하는 것을 느끼고 실행할 수 있는 마음, 함께여서 다행이고, 마음이 통해서 고마움을 알게 된다.

이 잔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마음에 새겨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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