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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r 02. 2023

병원을 다녀오고.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오늘 하루는 휴가를 내었다.

늘 그러하듯 병원은, 특히 대학병원은 분주함과 차가움, 긴장감이 혼재된 표현하기 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3년 전부터 건강 검진을 받고 나면 후속 치료를 위한 강력한 소견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2020년, 부인과 검진을 받던 중, 의사는 나에게 호통을 쳤다. 

"제가 j 씨를 기억해요. 작년에 분명 근종 적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상황을 왜 이렇게 만들어놨죠?"

"만약 올해도 제 의견을 그냥 넘어가면 자궁 자체를 적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부랴부랴 대학병원 수술을 잡고 1주일의 휴가를 내고는 아들 출산 수술 이후 두 번째로 전신 마취를 필요로 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2021년.

"j님, 갑상선 호르몬 수치 결과가 너무 안 좋아요. 빠른 시일 내에 우리 병원이나 가까운 내과 가셔서 재검받으셔야 해요. 꼭 하셔야 합니다. 알려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용하기 시작한 갑상선 약을 3년째 복용하고 있다.


2022년.

이젠 건강검진 실시 문서가 시행되면 긴장부터 된다. 걱정이 앞서서일까. 회사에서 부담하는 검사 항목 외에도 자부담으로 이것저것 항목을 추가한다.


[유방 조직검사]

작년에 나에게 내려진 재검 소견이다.

유방 관련 진료를 받았던 동료들의 의견을 참고해 조직검사를 위해 선택한 병원은 그야말로 "공장"이었다.

조직 검사를 받고, 가슴에 압박붕대를 칭칭 감고, 2주 뒤에 결과를 듣고.....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모양을 가진 혹입니다. 당장 맘모톰을 시행하고, 조직검사를 다시 해야 합니다."

모니터를 응시하며 마스크 안에서 웅얼대는 의사의 모습만이 내 눈 속에 들어왔다.

'이 자식...... 확! 마!'(마음의 소리)

그 순간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 안의 폭력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의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감정 절제가 어려운 내가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병원에서 후속 검사를 받을 마음이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병원 선택에 신중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아마도 난 검진결과의 재검 소견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리라. 또한 의사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사도 그렇겠지.

"나도 환자 가리고 싶다고요. j양반아."


앞서 조직검사를 받았던 병원 보다 더 공장 같은 이곳에서 오늘 세 번째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 수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조직 검사 결과지와 진료 의뢰서를 받아 들고 이곳 병원으로 왔을 때 의사는 수술이 필요한 혹은 아니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3개월 뒤, 또 3개월 뒤에 각각 한 번씩 초음파 검사를 통해 모양의 변화를 보겠다고. 오늘은 또 3개월 뒤인 날인 것이다.


의사를 기다리며 진료실 앞에 있는데 오후 진료가 시작될 즈음 하나둘씩 모여드는 환자들을 보면서 또 한 번 묘한 기분을 느꼈다. 대략 눈대중으로 보아서 서른 명 정도의 환자가 두 명의 간호사만 응시하며 본인 순서를 놓칠세라 호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진단을 받고 수술을 끝냈는지 두건으로 머리를 감싸거나 모자를 쓴 사람들, 이제 입원과 수술 절차를 밟는 사람들, 작년의 나처럼 결과지와 CD를 쥐고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사람까지.

그 와중에 아직 두건을 쓰고 계신 분께서 옆 사람들에게 하시는 이야기가 또렷하게 들린다.

"나이 60 넘길 때 즈음에는 이런저런 병이 찾아와요."

......

내 차례가 되어 초음파 검사를 받고, 의사가 판독을 해주었다.

"크기도 변화 없고, 모양도 좋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년 뒤에 오시면 되겠네요."

기분은 좋았지만 의사 목소리가 진료실 밖으로 나갈까 봐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에겐 간절한 소견일 수도 있으니까.

진료실을 나오면서 고개를 숙이고 복도 바닥만 보고 걸었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되뇌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꼭 병원을 다녀오면 마음을 다시금 다지게 된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아픔을 밑거름으로 내 마음을 돌본다는 게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알면서도 마음이 그렇게 흘러간다.


내가 처해진 환경도 중요하지만 내 몸과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와의 비교가 아닌 오직 내가 느끼고 조절할 줄 아는 것.


병원을 나서니 아직 겨울의 추위가 봄에게 자리를 내 줄 마음이 없는 듯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잠시 드라이브를 하고 집으로 향하기로 하고 달맞이길로 향해본다.

달맞이길 카페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해운대 바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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