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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r 03. 2023

고독을 느끼는 방법

나는 혼자서 행하기를 좋아한다. 혼자 밥 먹기를 좋아하고, 혼자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고, 산책, 드라이브, 등산, 와인 한두 잔 정도의 가벼운 음주, 카페에서 멍 때리기, 서점 다니기...... 누구와 함께하기보다는 혼자서 할 때 더 잘 느낄 수 있고, 기분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독립적"이라는 의미와는 별개다.


결혼 전 남편과 교제를 하고 있을 때, 여름휴가는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남편의 물음에 "경주로 여행 다녀오려고요."하고 답했다.

"누구랑요?"

"혼자서요."

"????????", "같이 갈까요?"

"아니요. 그냥 혼자 가려고요. 예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 알았어요."

남편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나의 계획을 존중하려는 듯했다.

나의 생각은 두 가지였는데, 한 가지는 결혼 전의 남녀가 여행을 함께 다녀온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지금에 와서 보면 고리타분한)이 있었고, 또 한 가지는 진짜 나 혼자 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나의 이러한 취향에 대해 남편은 익숙해져 있어서 어색해하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벌써 1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날은 며칠 째 나를 에워싸고 있는 멜랑꼴리(melancholy)를 수습하고 싶어서 퇴근 후 혼자 해운대 바닷가로 향했다. 일렁이는 수면 위로 네온사인이 투영된 알록달록한 저녁 바다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봐도 괜찮았다. 조선비치호텔에서 미포까지 다시 미포에서 조선비치호텔까지 걸어서 오가며 머릿속을 비우자고 주문을 걸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울감과 상관없이 배고픔은 나에게 노크하고 있었다. 잠시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센텀의 어느 파스타 식당. 일본인 셰프 혼자 요리하고, 한 명의 종업원이 있었다. 파스타라고는 꾸덕한 토마토소스 파스타 밖에 모르던 내가 처음으로 오일 파스타를 먹어 보게 되었다. 포크로 면을 말아서 입에 넣는 순간, 음식으로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조용하고 정갈한 그 식당의 분위기와도 너무 잘 어울리는 그런 맛, 마치 나를 기다리고 준비한 듯한 그런 맛이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이 맛과 좋은 느낌을 알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싶었다.

오후 출장이 있는 날, 주말 교육이 있는 날이면 마치고 그곳 파스타를 먹으러 혼자서 가곤 했다.


어느 해 여름이었던가, 토요일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여자 종업원이 나에게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사실 주문을 받을 때도, 음식을 서빙할 때도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느낌은 있었다.


"저희 이번 달까지만 영업하고 이제 마무리합니다. 자주 오시는 분이시라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참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항상 고마웠습니다."

"......", "아! 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치 실연당한 사람 마냥 식당 쪽으로 자꾸 뒤돌아보며 서서히 멀어져 갔다.

사실 고마운 쪽은 나인데......




오늘, 10여 년 전의 그 멜랑꼴리와 결이 비슷한 기분이 나를 뒤덮는 듯 마음이 좀 갑갑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그 셰프는 지금쯤 어디서 파스타를 만들고 있을까 하고 아련하게 떠올리게 된다.

그는 알고 있을까. 그가 들인 정성이 누군가에게 큰 힘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하긴 나도 모르고 있었다. 맛있게 먹고 기분 달래는 나를 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퇴근해서 혼자 파스타를 만들어 저녁 식사를 했다.

몸은 다소 피곤했지만 나를 어루어 만져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기꺼이 한 접시가 뚝딱 만들어진다.

그리고 맛있게, 기억하며 먹는다.

아무리 흉내내어도 셰프의 맛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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