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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Aug 13. 2022

아들의 이성교제

겉과 속이 다른 엄마

 아들 K는 열여덟 살,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친가 외가 식구들의 작은 키에 비해 180센티미터의 장신, 전자 기타, 전자 피아노를 좋아한다. 외모와 몸매 관리에도 관심이 많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며 아빠와 너무도 잘 지낸다. 엄마인 나와는 가끔 생각이 달라 충돌이 생기기도 하지만 저녁에 귀가할 때쯤에는 종종 엄마를 먼저 찾는다. (물론 이것은 메인 반찬이 무엇인지, 과일은 어떤 게 준비되어 있는지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적은??? 며칠 전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K는 중상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네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일찍이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 1차 질풍노도가 왔었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오는 듯, 또다시 사라지는 듯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가도 이내 말랑말랑한 상태로 되돌려 놓기도 했는데, 1차 사춘기 무렵에는 내가 너무도 무지했던 탓에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려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있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들자식을 먼저 키워 본 직장 선배들로부터 에피소드를 들어왔던 게 있었던 지라 실전에서는 아이에게 잘해보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뜻대로 나가지 않을 때에는 속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K는 참 잘 커가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맙고, 뿌듯하고 그렇다. 여기에 엄마의 욕심을 좀 덧붙이자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수험생이니 만큼 학업에 조금 더 매진해서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무난히 진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 정도다. 


 친정과 시댁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친정의 경우 좀 급하고, 예민하고, 불안함이 많다면 시댁은 편안하고, 동글동글하고, 무난함이 지배적이다. 맞지 않을 것 같은 환경에서 살아온 나와 남편은 서로의 노력 덕분인지 큰 트러블 없이 20년을 가까이 잘 살아오고 있고, 진짜 다행인 건 아들이 친가(시댁)의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부분에서는 시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남편을 잘 키워 주셨고, 그 기질을 아들이 잘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아서...... 모순이지만 내 성격을 바꾸고 싶진 않고, 아들이 내 성격을 닮아 가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아들에게 종종 했던 말이 있다. "K, 넌 여자 친구 없니?"(없는 거 알고도 묻는 거야.), "여자 친구 생기면 엄마 아빠한테 꼭 소개해 줘."(고등학교 때까진 없을 거니까 졸업하고 생기면 소개해 줘), "여자 친구 생기면 엄마가 잘하는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해 줄테니까 데리고 와."(드라마에서 본 게 있어서 따라 해 보는 말이야.)등의 쿨하고, 세련된 엄마 코스프레를 하면서 말이다. 한 번도 아들의 이성교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난 왜 그리 가볍게 말했을까. 그러면서도 '우리 아들은 언제쯤 애틋함을 느끼는 교제를 하게 될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언제쯤은 20살을 넘어서는 시기부터임을 나 스스로 공식을 정해놓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왔다. 


 며칠 전 주말 오후(사달이 난 날). 남편은 야간근무로 오후 출근을 하고, 나는 주방에서 밑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아들이 방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고 "어머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좀 앉으십시오."하고 말했다. 원래 버전으로 풀어보자면, "엄마, 나 할 말 있어. 잠시만."인데, 격식체를 써 가며 의자에 앉힐 때는 농담인 듯 시작을 해도 마음은 살짝 긴장된다. 거두절미하고 "저 여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수요일 제 생일에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가 어렵겠습니다." 하고 통보하는 게 아닌가.


"아......" 

한 박자 쉬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지막이 나온 나의 말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훅(hook)이 들어온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여러 계산을 굴리며 질문 명세를 나열했는데, 어떻게 알게 된 친구인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인지, 어디 사는지, 문과반인지 이과반인지, 걔네 부모님도 알고 계시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부끄럽지만) 공부는 잘하는지...... 그러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을 기억해 내고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꾹꾹 누른 채 "아들, 축하한다. 우리 아들 다 컸네." "그 친구 부모님은 걱정을 많이 하실지도 모르니까 부모님들 걱정 안 하시게 또 각자의 학업에 방해되지 않게 서로 지킬 건 지켜줘야 해. 예쁘게 만나."하고 말을 건넸다. 기특한 건 둘이서 각자의 부모님께 말씀드리자고 약속했다는 점이고, 또 솔직하게 말해 준 K가 고마웠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기특함과 고마움은 잠시였고 헛헛함과 묘한 속상함으로 자꾸만 채워지는 게 아닌가. 아들은 전달을 끝내고 이미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나 혼자서 식탁 의자에 앉아 멍하니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자한 척 말했지만 내 속에서 요동치는 언어들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부분은 성적이리라. 어중간한 성적으로 더 밀어붙여도 시원찮을 판에 이성교제라니......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짜증이 나서 만들고 있던 밑반찬을 그대로 버리고 싶었다. 주기 싫었으니까.


 가까운 선배들에게 말했더니 우선 아이를 다그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선 잘했다고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이내 "어쩌니, 고2학년인데......" 하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위로하는 게 아닌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전교 1등을 놓쳐 본 적 없는 남학생이 같은 학교 여학생과 교제를 시작한 걸 남학생 엄마가 알고는 자기 아들 일과를 하나에서 열까지 감시하고, 여학생을 아주 혼냈다는 내용. 아들을 유학 보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는 내용. 그때는 "그 엄마 웃기네. 남의 집 귀한 딸을 왜 혼내? 자기 자식 단속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그리고 애들 이성교제가 무슨 대단한 일이야?" 하며 비아냥 거렸는데 지금은 내 입을 때리고 싶다. 물론 그 엄마의 걱정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아들을 믿는다고 나를 믿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아들 생일엔 항상 아침에는 조금의 미역국과 작은 케이크로 저녁엔 아침보다 좀 더 푸짐하게 여유 있게 식사를 했는데 올해 아들 생일엔 아침 파티만 조촐하게 했다. 저녁엔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했단다. 폰케이스를 생일 선물로 받았는지 다음 날 아침 휴대폰은 귀여운 캐릭터가 새겨진 폰케이스로 장착되어 있었고 바탕화면은 둘이서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좋은가 보다. 그런 K의 모습이 흐뭇하고 귀엽다가도  "K는 중상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네요."하고 전해주신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하면 한숨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어중간한 저 성적으로 가고자 하는 학과는 어려울 텐데. 그럴 땐 내가 나를 위로한다. "저러다 누구 한 명이 먼저 바이바이 하자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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