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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Aug 15. 2022

아들의 요구사항

내가 알아서 한다고!!!

첫째, 내 방에서 핸드폰 보고 있을 때 이제 그만 봐라는 말 하지 마. 내가 알아서 조절할 수 있는데 듣기 싫어.

둘째, 아침에 나 학교 갈 때 엄마랑 엘리베이터 같이 타고 가기 싫으니까 "이제 내려가자."라는 말 하지 마.

셋째, 친구들하고 놀고 있을 때 언제 올 거냐고 묻는 전화 하지 마. 너무 부끄러워.


내가 언제까지 엄마 뜻대로 다 들어줘야 돼? 나 진짜 미치겠다고!!!!!!!!!!




쟤가 고등학생 맞나 싶을 정도로 놀기에 심취해 있는 아들에게 적당히 놀아라고 한 마디 했더니 몇 배마디로 돌려받았다. 아들 K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작심하고 나에게 퍼부었다. 미치겠다고 소리치며 펑펑 우는 게 아닌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우는 K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바라보고 조용히 그 방을 나왔어야 하는데, 현명하지 못한 이 엄마는 조목조목 답을 했다. 세 번째 요구사항부터.


"친구들하고 놀고 있을 때 엄마 전화받는 게 부끄러우면 귀가 시각을 미리 알려 줘. 알린 귀가 시각보다 늦어질 것 같으면 그전에 전화를 주고. 그럼 엄마도 전화할 일이 없어. 그리고 아침에 학교 갈 때 엄마랑 엘리베이터 같이 타는 게 싫은 줄 몰랐다. 엄마는 네가 작년 2학기 때 지각 벌점 문자가 연이어 몇 번이고 엄마에게 전송되는 게 신경 쓰였고, 그 대안으로 조금 늦었다 싶은 날에 엄마 출근길에 널 태워 줬어. 그때마다 네가 좋아했고. 그래서 같이 집을 나서는 게 싫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볼 여지가 없었어. 근데, 이제부터는 같이 안 갈게. 대신 너도 지각하지 마. '대망의 핸드폰...... 이건 어떻게든 반박해야겠는데......' 핸드폰은...... 알겠다. 네가 조절해라. 자유와 자율은 달라. 네 자율에 맡길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핸드폰에 대한 관여를 할 때는 너와의 약속을 깨는 게 아니라 엄마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단순히 핸드폰 그만 봐라가 아닌 다른 조치를 취할 수도 있어. 엄마 세 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약속 지킬게. 너도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할 거야."




거실로 나와 식탁의자에 앉았다.  이럴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다. 그사이 K는 가방을 둘러매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어딜 가냐고 물었는데,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번엔 내가 좀 세게, "어딜 가는지 묻잖아! 너 정말 왜 이러니?"하고 다그치니, 시선은 엘리베이터로 가 있고, 입으로만 "할머니한테 간다. 왜! 오늘 할머니 집에서 잘 거야!"하고 알린다. 아들하고 토닥거리다가도 반나절, 길어봐야 하루면 금세 풀렸는데 이번엔 좀 길어진다. 남편은 주말 근무를 들어가고 혼자 남겨진 집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두 명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3 아들을 둔 선배는 "나는 요사이 우리 애가 너무 예민하고 불안을 느껴서 진짜 걱정 많이 했거든. 근데, 입시도 중요하지만 내 새끼가 행복하지 않으면 대학이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 오늘은 다른 날보다 애가 잠도 잘 자고,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라서 오히려 더 좋다. 내가 본 K는 반듯하고, 밝고...... 참 괜찮은 애야. 걱정 안 해도 돼. 내 자식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게 아니야. 진짜 괜찮은 애더라. 속상해서 집을 나서도 할머니 집으로 가잖아. 얼마나 귀엽니. 지금 이 순간에 아이의 모습 지켜봐 주고 엄마라서 줄 수 있는 사랑과 편안함을 많이 주도록 해보자." 하고 말하는데,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먹먹했다.

대학생 아들 둘을 둔 선배와의 통화에서

선배... K가 평일에 핸드폰을 몇 시간 하는데?

나... 2시간 정도요?

선배... 아주 양호한데?

나... 아...

선배... 잘 때, 공부할 때는 밖에 둔다고? 대단하다. 특히, 남자애는 그러기가 쉽지 않아. 막 대들걸? 주말에 하는 게임도 토요일에는 눈 감아 줘라. 나도 몰랐는데, 게임 한 판 하려면 뭐, 매칭이니 대기니 하면서 시간 소요가 많은 가봐. 2시간은 정말 기본이래. 그리고 멤버가 있어서 마음대로 그만두고 나오지도 못하나 봐. 반나절은 그냥 놔줘라. 재미있게 해 버리게.




아직 나는 K가 유치원 다닐 때,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주었던 짧은 편지를 곱게 접어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업무 보면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끔 그 편지를 펼쳐 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 버리는 마법도 경험해 봤다. 편지를 전해 줄 때 아이가 수줍어하며 도망가던 모습, 편지를 주면서 안아주던 모습이 아직 너무 선하다. 뱃속에 품고 있을 땐 '건강하고 심성 바른 아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늘 기도했는데, 그 간절한 기도를 하늘이 아시고는 이미 내게 다 주셨음에도 나는 다 까먹고 더 달라고, 더 내놔라고 간절함도 없이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첫째, 둘째, 셋째 요구사항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분명 엄마라는 타이틀에 맞는 책임감으로 행했던 액션이었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였던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로서의 책임감이라기보다는 내 만족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친정이 가까우니 이럴 땐 좋다. 아이가 외가를 휴식처로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출산휴가를 끝내고 복직하면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께서 K를 정말 정성스럽게 봐주셔서 인지 "요즘 애"답지 않게 양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친정어머니께서 톡을 주신다. 오늘 K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구워 줄 예정이고, 할머니한테는 목소리가 밝다고. 다행이다. 엄마인 나한테만 퉁명스러운 거면.



"엄마 생각이 짧았어. 할머니 댁에서 푹 쉬고 와."

이렇게 말하려고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신 거절 등록을 했나 보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음성이 곧바로 나오는 게 아닌가.

이번엔 아들이 정말 세게 나온다. 빨리 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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