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어서 펜을 잡았다기보다는 마음속의 상태를 잘 정리해 보려고 몰입할 거리를 찾다 보니 그것이 쓰기로 이어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주, 종종 펜을 잡게 되었다.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내가 시도해 본 것 또한 그 가짓수가 여럿이었는데 명상센터 찾아가서 명상하기, 격렬하게 걷기, 먹기, 마시기 등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예전부터 책 읽기나 쓰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가끔 마음 한 켠으로는 관심을 가지고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보다 좀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 일상 속 일들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미뤄두고 다시 꺼내면 또 덮어두기를 반복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감정들이 상승과 하락을 표시할 때 즉, 즐거운 일, 기념할 만한 일이 있을 때 혼자 또는 누군가와 맥주 한 잔, 와인을 마시면서 즐거움을 더 크게 느꼈다면 기분이 침체되는 일이 있거나 마음이 우울해지는 하락의 감정이 찾아와도 맥주나 와인을 마시면서 그 감정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을, 내 감정을 펜을 잡고 머리로 복기하며 순서를 나열하고 보니 다른 도움이 없어도 즐거움을 좀 더 길게 느낄 수 있고, 우울함도 스스로 정돈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조금씩 느낌이 없는 듯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스프링 노트 한 권을 다 채워보겠다는 계획으로 새 노트와 펜을 준비하고 10장을 채 못쓰는 노트가 수두룩해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뭐든 써야만 내가 진정되고 평온해진다는 내 감정의 메커니즘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즉 나에게 있어서 쓰기는 추울 때, 아플 때, 피곤할 때, 휴식이 필요할 때 찾게 되는 이불속 포근함과도 다름없는 치유고 아늑함이다.
한 때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작가들의 세련되고 간결한 문체를 흉내 내어 보려고 했지만 쓰면서 몰입하고 나의 감정에 좀 더 충실하고자 한다면 흉내내기보다는 마음속 감정을 끄집어내어서 적절한 언어로 잘 변환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설픈 흉내내기는 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가고 나에게 좀 더 충실해질 수 있는 쓰기는 알코올이 주는 환각 보다도, 먹어서 해소시켜 주는 배부름 보다도 훨씬 정적이지만 내가 느끼는 효과는 긴 여운과 함께 몰입을 이어갈 수 있다.
원하건대 활자를 읽고, 느끼고, 쓸 수 있는 시력과 지적능력만큼은 가장 나중에 퇴화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기분이 울적한 오늘, 카카오 스토리를 열어 보다가 2년전 썼던 스토리를 다시 다듬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