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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Apr 12. 2023

행복을 행복이라고 느끼기까지.

"행복"


그 기본 요소는 물질의 풍족함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일단은 넉넉한 금전과 물질이 뒷받침돼야 마음의 행복이 지속 가능하다는 내가 정의한 단순한 논리에 대해 확신이 컸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금전이나 물질이 받쳐주는 여유를 아주 깡그리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3년 전, 직장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에서 검사 도중 의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자궁에 자리한 근종을 두고 비대해진 크기와 위치가 안 좋아서 자칫 자궁 자체를 적출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하루빨리 근종 적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한테 수술을 받던지 상급병원으로 갈 거면 진료의뢰서를 써 줄 테니 빨리 움직이라고 덧붙였다.


부랴부랴 대학병원에 수술 일정을 잡았는데 한 달 조금 넘게 대기해야 했고, 막상 수술 전 날 입원을 하고 보니 부인과에서 흔한 수술이긴 하나 그 절차는 간단치 않음을 설명 듣고 나니 꽤 겁이 나기도 했었다.


수술 전, 수술 후 내가 머무르게 될 5인 입원실을 배정받았다. 나를 제외한 4개의 침대는 이미 여자 환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나와 남편이 짐가방을 들고 쭈뼛쭈뼛 들어서자 '어디가 아파서 온 걸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먼저 계셨던 네 명의 환자들은 암수술받은 지 며칠 안 됐거나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이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수술은 경한 수준이었지만 그들은 '아픈 사람 맞아?'싶을 정도로 밝았다. 반면 우울함으로 점철된 내 마음은 고스란히 얼굴 표정으로 나와 그들의 단순한 질문에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내보이며 철벽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입원 당일 내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지?'를 되뇌며 침대 커튼으로 나를 가려두었다.


수술 당일. 수술 대기실에서 나와 함께 나란히 누워있는 여섯 명의 환자가 있었다. 의사는 한 명씩 호명하고는 각자 생년월일과 어떤 수술을 할 것인지를 답하게 했다. 모두가 암수술을 받을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부끄럽고, 죄송하고, 후회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멈춰지질 않고 흘러내렸다.


수술 후 3일 정도의 회복 기간을 가지고 퇴원했는데 병원 로비를 나서면서 느낀 뜨거운 여름 햇살이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초록잎 가득한 나무도, 태양이 주는 더위도, 그것을 느끼는 그 순간순간들도 전부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이것이 행복이구나."하고 나는 말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행복을 느끼는데 필요했던 것은 금전도 물질도 아닌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몸과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한겨울, 한여름이 아니면 버스 한 두 정거장 정도는 걸어서 다니려고 한다. 걷다 보면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때로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도 반갑게 느껴진다. 가끔 일부러 10여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가까이에 위치한 커피점에 잠시 앉아 커피 한 잔 올려놓고 멍 때리기를 즐긴다. 퇴근길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주는 몽환적 느낌의 가로수 길을 걷는 것도 즐겁다. 햇살 좋은 날 장미공원을 산책하며 오가는 사람구경, 강아지 구경, 장미구경, 초록초록한 나무 구경 하면서 마음을 데우는 것도 좋다.


이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나의 행복을 만들어 주고 그것을 내가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느낄 줄 아는 내 몸과 마음이다.


사무실 앞 은행나무길, 이곳을 거닐고 있으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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