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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06. 2023

소박한 밥상

오늘, 5월 5일 어린이날.

남편은 출근한다.

오늘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 내일은 저녁에 출근하고 모레 아침에 퇴근할 예정이다.


공공재를 다루는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주말, 공휴일에 대한 구분 없이 365일 [주간-야간-비번] 이렇게 순환하면서 교대근무를 해왔다. 올해로 26년째 근속이고, 별 탈이 없다면 정년까지는 6년이 남아있다.




초중고 학창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지만) 가정조사라는 것을 할 때,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조사도 있었는데 그때 난 항상 마지막 즈음에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것은 "실업자", "자유업(=무직)"이었다는......


"아버지 실업자인 사람 손 들어."


눈 감고 진행했던 가정조사였지만 알고 보면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반친구들은 실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누가 엄마가 없고, 누가 아빠가 없으며 누구 집에 피아노가 있고, 전화기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누구의 아버지가 의사고, 누구의 아버지가 실업자인지 가정조사가 끝나면 드러내고 싶은 또는 숨기고 싶은 어린 한 사람의 가정사가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가정조사 시기만 되면 조마조마했던 그 시절. 웃프기도 하지만 그때 어린 나의 소망 중 하나는 이다음에 커서 [회사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소망을 지금에 와서 의역해보면 이렇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급여소득자와 결혼해서 아이의 학교에서 가정조사 할 때 내 아이가 자신 있게 손 들 수 있게 하겠다. 그리고 나처럼 긴장하게 하지 않겠다.]


내가 기억하는 친정아버지께서 시도했던 업은 양계장을 운영하셨다는 것(실패), 당구장을 운영하셨다는 것(실패), 그리고 우리 삼 남매가 모두 스무 살을 넘겼을 무렵 아파트 경비를 잠깐 하셨다는 .


양계장은 내가 학교 입학하기 전이었고, 당구장은 내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짧은 기간, 경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였으니 공교롭게도 가정 조사 시기와 맞물리지 못한 탓에 항상 "아버지 실업자인 사람 손 들어."에 내 손이 올라갔다.




"여보, 내일 아침에 채소김밥이랑 나물반찬 괜찮아요?"

"모처럼 3일 연휴잖아요. 자기는 푹 자둬요. 내가 알아서 먹고 갈게요."


어젯밤, 다음 날 아침 메뉴로 고민을 하다가 매번 같은 것을 해주기가 미안해서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알아서 먹고 가겠단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있었던 덕분인지 나는 꼬박꼬박 아침식사를 했고, 고향을 떠나 부산에 터 잡은 남편은 혼자 살면서 끼니를 제때에 챙겨 먹지 않고 한꺼번에 몰아서 먹는 모습을 보였다. 극명한 차이를 보인 식사 패턴은 결혼하면서 서서히 나 위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남편은 야간근무를 마친 날의 아침 식사를 제외하고는 과식을 경계하면서 세끼를 잘 챙겨 먹는다.


아들 k를 낳고 산후조리하던 3개월,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휴식이 필요했던 날들을 제외하고는 남편의 식사 챙김을 건너뛰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건 내가 대단한 양처의 성품을 지녀서가 아니다. 남편의 식사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 번째, 최대한 가공이 덜 된 음식을 먹었으면 하는 바람.

두 번째, 그로 인해 건강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

세 번째, 밤낮 구분 없이 일하느라 고단한 남편에게 표시하는 고마움.


모름지기 밥상은 음식의 가짓수나 양이 푸짐하고, 맛깔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좀 고단해도 식탁 위를 풍성하게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은 물론이고 퇴근 후 저녁에도 부치고, 끓이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것저것 차려내었다. 내 몸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다는 결과를 생각하면서 그러한 내 욕심에 "정성"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은 주방에서 식사준비하는 나에게 "간단하게 해서 먹읍시다." 하고 말을 건넸다. 순간 욱! 했지만 남편에게 눈길 한 번 흘기고는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간단하게 해서 먹자는 남편의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름의 정성을 쏟고 나서 지쳐 흐리멍덩한 상태로 식사하는 내 모습을 남편은 부담스러워했던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차라리 라면을 끓여서 김치 곁들여 먹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전날 설거지 해 두었던 그릇을 정리하고 나서 김밥 한 줄을 말았다. 재료라고 해 봐야 조린 우엉, 아보카도, 오이, 단무지가 전부인 채소김밥이다. 거기에다 당근 샐러드, 남해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죽순 나물을 차렸다.


짜증이 날만도 한데 지금껏 불평 없이 묵묵히 근무를 이어가는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 남편은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고마움의 표시를 기름지고 풍성한 식탁이 아닌 간소하지만 정갈한 음식이 놓인 소박한 밥상으로 표시해 본다.


간소하지만 부족하지 않다. 한 끼로 충분하다.


퇴근 후...... 


햇살 좋은 어느 주말 점심, 교자상 펴서 베란다에서 먹었다.




*5월 5일에 쓰고, 5월 6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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