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 내일은 저녁에 출근하고 모레 아침에 퇴근할 예정이다.
공공재를 다루는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주말, 공휴일에 대한 구분 없이 365일 [주간-야간-비번] 이렇게 순환하면서 교대근무를 해왔다. 올해로 26년째 근속이고, 별 탈이 없다면 정년까지는 6년이 남아있다.
초중고 학창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지만)가정조사라는것을 할 때,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조사도 있었는데 그때 난 항상 마지막 즈음에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것은 "실업자", "자유업(=무직)"이었다는......
"아버지 실업자인 사람 손 들어."
눈 감고 진행했던 가정조사였지만 알고 보면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반친구들은 실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누가 엄마가 없고, 누가 아빠가 없으며 누구 집에 피아노가 있고, 전화기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누구의 아버지가 의사고, 누구의 아버지가 실업자인지 가정조사가 끝나면 드러내고 싶은 또는 숨기고 싶은 어린 한 사람의 가정사가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가정조사 시기만 되면 조마조마했던 그 시절. 웃프기도 하지만 그때 어린 나의 소망 중 하나는 이다음에 커서 [회사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소망을 지금에 와서 의역해보면 이렇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급여소득자와 결혼해서 아이의 학교에서 가정조사 할 때 내 아이가 자신 있게 손 들 수 있게 하겠다. 그리고 나처럼 긴장하게 하지 않겠다.]
내가 기억하는 친정아버지께서 시도했던 업은 양계장을 운영하셨다는 것(실패), 당구장을 운영하셨다는 것(실패), 그리고 우리 삼 남매가 모두 스무 살을 넘겼을 무렵 아파트 경비를 잠깐 하셨다는 것.
양계장은 내가 학교 입학하기 전이었고, 당구장은 내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짧은 기간, 경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였으니 공교롭게도 가정 조사 시기와 맞물리지 못한 탓에 항상 "아버지 실업자인 사람 손 들어."에 내 손이 올라갔다.
"여보, 내일 아침에 채소김밥이랑 나물반찬 괜찮아요?"
"모처럼 3일 연휴잖아요. 자기는 푹 자둬요. 내가 알아서 먹고 갈게요."
어젯밤, 다음 날 아침 메뉴로 고민을 하다가 매번 같은 것을 해주기가 미안해서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알아서 먹고 가겠단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있었던 덕분인지 나는 꼬박꼬박 아침식사를 했고, 고향을 떠나 부산에 터 잡은 남편은 혼자 살면서 끼니를 제때에 챙겨 먹지 않고 한꺼번에 몰아서 먹는 모습을 보였다. 극명한 차이를 보인 식사 패턴은 결혼하면서 서서히 나 위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남편은 야간근무를 마친 날의 아침 식사를 제외하고는 과식을 경계하면서 세끼를 잘 챙겨 먹는다.
아들 k를 낳고 산후조리하던 3개월,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휴식이 필요했던 날들을 제외하고는 남편의 식사 챙김을 건너뛰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건 내가 대단한 양처의 성품을 지녀서가 아니다. 남편의 식사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 번째, 최대한 가공이 덜 된 음식을 먹었으면 하는 바람.
두 번째, 그로 인해 건강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
세 번째, 밤낮 구분 없이 일하느라 고단한 남편에게 표시하는 고마움.
모름지기 밥상은 음식의 가짓수나 양이 푸짐하고, 맛깔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좀 고단해도 식탁 위를 풍성하게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은 물론이고 퇴근 후 저녁에도 부치고, 끓이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것저것 차려내었다. 내 몸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다는 결과를 생각하면서 그러한 내 욕심에 "정성"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은 주방에서 식사준비하는 나에게 "간단하게 해서 먹읍시다." 하고 말을 건넸다. 순간 욱! 했지만 남편에게 눈길 한 번 흘기고는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간단하게 해서 먹자는 남편의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름의 정성을 쏟고 나서 지쳐 흐리멍덩한 상태로 식사하는 내 모습을 남편은 부담스러워했던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차라리 라면을 끓여서 김치 곁들여 먹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전날 설거지 해 두었던 그릇을 정리하고 나서 김밥 한 줄을 말았다. 재료라고 해 봐야 조린 우엉, 아보카도, 오이, 단무지가 전부인 채소김밥이다. 거기에다 당근 샐러드, 남해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죽순 나물을 차렸다.
짜증이 날만도 한데 지금껏 불평 없이 묵묵히 근무를 이어가는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 남편은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고마움의 표시를 기름지고 풍성한 식탁이 아닌 간소하지만 정갈한 음식이 놓인 소박한 밥상으로 표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