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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Jun 05. 2022

탈린, 중세의 진한 향기에 취하다

Tallinn의 올드 시티를 방문하다.

헬싱키에서 배를 타면 에스토니아(Estonia)의 수도 탈린(Tallinn)에 도착한다.

오후 6시를 넘겨 탈린 항구에 도착을 했지만 해는 중천이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에 병합된 나라였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자주권을 회복한 나라로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Republic of Estonia)이다. 


그리고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수도 이름  '탈린'!

첫 번째 의미는 '덴마크인의 도시'란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겨울 도시'라는 의미이다.

사실 탈린은 덴마크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던 이유로 '덴마크인의 도시'란 뜻이 생겨났을 듯싶다. 하지만 에스토니아 국민들 대부분은 탈린의 의미를 '겨울 도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 같다..ㅎㅎ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 후 우리는 탈린의 구시가지를 관광하기로 했다.  

구시가지의 밤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탈린이다. 

환한 대낮에는 느낄 수 없는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 그리고 중세의 고풍스러운 밤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먼저 구시가지로 향했다. 

구시가지는 크게 톰페아(Toompea) 언덕이 있는 서쪽 지대와 라에코야 광장과 올레비스테 교회가 위치한 동쪽의 낮은 지대로 나누어진다. 

올드 시티의 밤 풍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톰페아 언덕을 향해 걸었다


툼페아로 오르는 길


서서히 어두워오는 탈린의 올드시티...

좁은 골목에서 독특한 모양을 한 가로등의 불이 하나둘씩 켜진다.

골목길을 걷는다.

돌길이다. 지극히 중세적인 느낌이다.

날이 저물며 켜지는 가로등의 누런 불빛이 올드타운의 골목을 더 고즈넉하고 고풍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간간히 곳곳에는 중세의 복장을 한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사람 없는 좁고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는데 마치 시간이 과거로 흐른 듯한 착각에 내가 마치 중세의 아낙네가 되어 밤길을 걷고 있는 듯싶다.  

이런 분위기와 느낌을 언제 느껴 볼 수 있을까?


고풍스러운 중세의 짙은 향기가 배어있는 어두운 골목이 나를 옛날로 돌아가게 했다면 젊은이들의 활기가 묻어있는 탈린의 광장에서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맥주 한잔 마시고 싶은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나를 감싼다.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출처- 에스토니아 관광청)

골목에서 나오면 시원스럽게 트인 광장(Raekoja Plats, Town Hall Square) 이 나타난다. 

중세 이래로 한자(Hansa) 마을의 중심지이자 시장이었던 곳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광장이 크다고 할 순 없지만 겨울이 되면 이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데 아마도 그 유래는 블랙헤드 형제단이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이곳에 세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해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다.

상상만으로도 한겨울 크리스마스의 아늑하고 포근한 광장이 그려진다.


광장을 둘러싼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도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야외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나처럼 한번쯤 중세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나누고 있는 걸까?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아님 여행의 피곤함, 흥분,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까?

다행히 모두의 얼굴 표정에서 미소가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 비슷한 모습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무거운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지금의 이 모든 순간이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레스토랑 '올데한자(Olde Hansa)'를 지나친다.

olde Hansa 밤풍경과 달콤한 아몬드

올데한자는 중세의 부유한 상인의 집이었다.

지금은 레스토랑이 되어 이곳에서 제공되는 모든 요리는 15세기 조리법과 방법을 사용하여 조리되고 홀에는 중세의 음악이 연주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중세의 식당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식당으로 탈린에서 이름난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저녁 식사를 하고 온 터라 대신 레스토랑 바로 앞 마차에서 팔고 있는 탈린의 명물 아몬드(sweet almonds)에 관심이 간다.

게다가 여주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과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우릴 보더니 선뜻 먹어보라고 한 움큼 집어준다.

얼떨결에 받아 든 아몬드는 처음 보는 맛인데 꽤 맛나다.

두 봉지를 사 들고 에스토니아의 전통옷을 입은 아가씨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물으니 선뜻 응해준다. 

웃음을 잃지 않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탈린 여인의 미소가 아름답다.

계피맛과 달콤한 꿀이 조합된 견과류의 맛과 여인의 아름다운 미소는 잊지 못할 것 같다.

간식을 정신없이 먹으며 이 골목 저 골목 밤길을 다니다가 잠시 나오는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지만 그것도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쌉싸름한 추억이리라....




과거 영주나 귀족들이 살았던 툼페아(Toompea) 언덕을 올라갔다..  

툼페아라는 뜻은 최고봉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름으로 16세기에 만들어진 요새이다.  


우리는 언덕에 있는 '단네브로(Dannebrog)'라는 독특한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찾아 들어간 카페 '단네브로'의 뜻은 덴마크의 국기 이름을 의미하기도 하고 덴마크 훈장의 이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덴마크의 많은 영향을 받은 도시였던 터라 카페 이름에 '단네브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의 에스토니아 상황은 덴마크의 지배와는 연관이 없는 데도 여전히 '탈린'이란 도시명과 '단네브로'라는 이름을 카페에 사용하고 있으니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생각에 조금은 의아함이 들지만 '이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그들의 쿨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독특한 이름과 더불어 카페의 외관을 보니 카페의 내부도 마치 성 안에 있는 것처럼 고풍스럽고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카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평범하지 않다.

주변이 으스스한 입구 앞에서 중세 복장을 입고 있는 동상이 먼저 우리를 맞는다. 

오래된 돌로 둘러싸여진 컴컴한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벽에 붙은 굵은 사슬을 의지하며 윗 층으로 간신히 올라가야 했다.

올라와보니 역시 넓은 장소가 아닌 한 두 사람 정도 지나다닐 수 있는 난간에 2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역시 독특하다.

하지만 웨이터가 건네 준 메뉴에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일반적인 drink류와 food들이 적혀있다.

내가 무얼 기대했던 거지?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ㅎㅎ


탈린과 노을

 우리는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와인을 주문하고 톰페아 언덕 카페에서 보이는 거리와 구시가지를 관망했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우리의 마음을 홀리는 탈린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이 도시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수백 년이 된 이곳을 에스토니아 인들은 과거 그대로 방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성을 쏟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이토록 온전하게 보존된 아름다운 중세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곳곳에 위치한 위엄 있고 고풍스러운 성과 성벽을 사이에 두고 골목의 돌길을 걷는 시간은 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올드시티의 저녁 산책은 결코 잊히지 않을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우리는 다시 탈린의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어젯밤에는 신비롭고 고혹적인 올드타운의 밤 풍경을 만났다면 오늘은 환한 햇빛 아래 깨끗하고 선명한 올드 타운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젯밤에 와 본 곳이라 그런지 역시 길이 익숙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딴판이다.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우며 그리고 신비롭기까지 했던 밤 분위기는 사라지고 대신 광장과 골목엔 시골 장터 같은 활기와 번잡한 느낌마저도 든다. 

낮과 밤이 이렇게 다를 수가....



카타리나 골목((Katariina Kaik)에 들어섰다.

카타리나 골목은 탈린 구도시의 거리 중 가장 중세적인 골목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며 낭만이 가득한 골목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탈린이 이처럼 과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탈린의 안개 때문이라고 한다.

탈린을 향해 폭격을 하려 했으나 안개 때문에 도무지 목표물을 정확히 찾을 수 없었던 탓에 다행히도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다고 하니 안개를 고마워해야 하나보다. 

예전엔 카타리나 수도회로 가는 길목이었지만 수도회는 사라지고 길 양옆엔 조그마한 수공예품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카타리나 골목

13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많은 골목 그 자체로도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고 있었다.

조그마한 가게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어젯밤에는 닫혀있던 성벽으로 들어가 걸어보기로 했다.

올드타운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성벽이기도 하고 제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3유로를 내고 입장했는데 약 500~600미터의 성벽을 오고 가면서 올드타운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성벽도 아름답지만 내려다 보이는 올드 타운의 모습도 참 아름답다. 

수많은 성탑이 도시 곳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마치 도시 탈린이 성탑들의 숲처럼도 보인다.

올라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다.

 

성벽에서 내려다 본 골목과 성벽 산책


광장으로 나와 둘러보니 무려 한쪽에 600여 년이 된 약국(Raeaptekk)이 아직도 있다.  


약국 앞에서

1422년에 문을 연 이 약국은 10대째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이 약국에서는 유니콘 뿔로 만든 파우더를 정력제로 팔기 위해 유니콘을 모두 잡아들였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더 이상 유니콘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대와 장소 구분 없이 정력제는 인기가 있었나 보다.ㅎㅎ

지금은 일반 약들도 보이지만 이름 모를 민간요법으로 만들어진 약들도 많이 보인다. 심지어는 그네들의 비밀스러운 비법으로 만든 화장품처럼 생긴 것들도 눈에 보인다.

혹시 이런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면 젊어질 수 있을까? 혹시 마음을 치료해주는 약도 있을까?  

이런 비밀스러운 약들을 아직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다.

광장카페에서 맥주를 기다리며..

우리는 광장에 있는 카페에 들러 이곳의 전통 맥주인 ‘허니 비어’를 한잔 했다.

목으로 들어가는 처음 맛이 부드럽고 달콤하다. 내 취향이다.ㅎㅎ

잠시 테이블에 앉아 광장 주변을 둘러보니 광장이 아담하고 정감이 간다. 

과거 유럽에서 없어서는 안 되었던 중요한 광장!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활동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견도 나누고 축제도 함께 즐겼던 곳.

심지어 동네에서 유일한 작은 분수나 우물을 이곳에 만들어 놓고 물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마을 사람들은 가야 했던 곳... 광장!

이렇듯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찾아야 했으며 그래서 사람과 사람들을 이어주었던 광장!

하지만 혁명과 전쟁이 시작되는 장소가 되기도 했고 무시무시한 단두대가 설치되어 목숨을 빼앗는 단상이 되기도 했던 곳...

바로 그런 곳이 광장이었다.  

광장! 너는 구구하고 유원한 역사를 담고있는 곳이었구나....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맥주를 마시니 취기가 온다. 하지만 기분 좋은 알딸딸함이다. 



서서히 자리를 떠 이젠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Kohtuotsa 전망대에 오르기로 했다.

과거 2차 세계대전 중에도 늘 자욱했던 안개도 이번 우리의 탈린 여행을 방해하지 않았다.

날씨가 화창한 탓에 구시가지의 붉은 지붕과 우뚝 솟은 첨탑뿐만 아니라 고층 건물에 대한 훌륭한 전망이 선명하고 깨끗하다.

마음도 탁 트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탈린


헬싱키에서 2시간 남짓 걸린 거리가 나에겐 마치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온 도시에 와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국경만 넘은 게 아니라 시간과 시대를 거슬러 중세인이 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시대의 대부분이 암흑으로 점철된 중세가 남기고 간 자취들을 다행히도 탈린은 소중하게 다루어 빛으로 변화시켜 놓았던 것이다.

성과 성벽, 골목 그리고 분위기까지...

그런 것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 탈린은 나를 잠시나마 중세에 머물도록 했다. 

탈린이 나에게 주는 이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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