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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Jun 22. 2023

다뉴브 강을 건너 하루 동안 두 나라에 머물다.

부다페스트 10일째, 에스테르곰 대성당과  다뉴브 강변 저녁 산책

2023년 5월 1일 월요일, 맑음


오늘은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교외로 나가는 날이다.

슬로바키아(Slovakia)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을 '에스테르곰(Esztergom)'을 방문하기로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으로 전철에서 내린 후 교외로 나가는 기차를 약 55분 정도 타고 가야 한다.

에스테르곰(Esztergom) 마을은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헝가리 최초 설립자 이슈트반 1세가 태어난 곳이자 1000년에 즉위한 곳이다. 또한 헝가리 최초의 대주교관구가 된 곳으로 여전히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고 있다.

특히 언덕에 있는 대성당(Ezstergom Basilica)은 헝가리에서 가장 큰 교회이며 교회 박물관에는 미술작품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관광객들은 이 마을에 도착하면 다뉴브 강 건너 슬로바키아와 연결하는 다리(Marie Valerie Bridge)를 구경하거나 직접 건너가 보면서 하루 사이에 두 나라를 다녀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여행 중이지만 유달리 오늘은 봄날 소풍, 나들이를 떠나는 기분이다.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니 그런 기분이 더 짙게 드나 보다.

기차 창 밖은 그림 같은 전원풍경을 선물한다.

연두와 초록이 섞여 물든 나무들과 낮은 언덕들, 그리고 나무들 사이사이 숨어 있는 붉은색 지붕들...

가끔씩 넓게 펼쳐진 초원들과 여유를 즐기는 말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 시골 풍경


에스테르곰까지 가는 동안 10여 개의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푸른 초원에서 말을 키우고 있는 목장이 보이고 오토바이 경주를 위해 언덕에 길을 만들어 놓고 오토바이 운전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또 금방이라도 기차에서 내려걸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만큼 마을 입구 가로수길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마을과 붉은색 지붕이 옹기종기 어우러져 그림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마을 등 부다페스트 외곽의 시골 특색을 모두 보는 것 같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기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 구경도 재밌다.

마을 사람들끼리 안부를 물으며 기차 안에서 서로 술잔을 건네는 할아버지..

부모가 자녀와 함께 바이크 복장을 한 채 자전거 한 대씩을 들고 기차를 타는 가족...

우리 앞 좌석엔 아이와 함께 남편을 만나러 에스테르 곰에 가는 모녀가 있고...

옆 좌석엔 다정한 커플이 눈을 맞추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보이고...

부다페스트 기차 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낭만이 있는 듯하다.

기차 내 좌석들이 대부분 서로를 보며 앉는 자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ㅎㅎㅎ




마침내 에스테르곰에 도착했다.

에스테르곰 기차역


마을의 첫인상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우리와 함께 기차에서 내린 방문객들은 대부분 대성당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걷다가 슬로바키아(Slovakia)와 국경을 연결하는 다리(Marie Valerie Bridge)를 먼저 들러보기 위해 대열에서 나와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한적하고 자그마한 시골마을에 다뉴브 강은 넓게 흐른다. 

다뉴브 강이 펼쳐진 마을 풍경과 정취가 아름답고 매우 서정적이다. 

그림을 잘 그렸다면 바로 이젤을 펴고 스케치를 했을 텐데 능력이 안되니 안타까울 뿐이다.

마을 사이를 흐르는 다뉴브 강


20여분 걸었을까?

'마리 발레리 다리(Marie Valerie Bridge)'가 보인다.

다리의 이름은 프란츠 요제프( Franz Joself 1세)와 엘리자베스(Elizabeth) 사이의 네 번째 자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 발레리(Marie Valerie) 대공비(1868-1924)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헝가리와의 화해를 추진하던 과정에서 태어난 아이였기 때문에 "헝가리인 아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마리 발레리(Marie Valerie)와 Marie Valerie Bridge

이 다리는 헝가리의 에스테르곰과 슬로바키아의 슈트로보를 연결하는 다리로 길이는 약 500m이다.

헝가리의 에스테르곰 쪽에서 다리를 건너가다 보면 다리 중간 지점에 붉은색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분기점으로 슬로바키아의 땅이 되는 것이다.

신기했다. 서로 다른 두 나라를 다리 하나를 경계로 두고 마음 놓고 오가는 두 나라가 부럽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남과 북은 철통 같은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서로 오가는 걸 금지하고 있는데 반해 유럽의 나라들은 오고 가는 것에 개의치 않으니 얼마나 자유롭고 편리한지...


마리 발레리 브리지를 건너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를 넘나들다

오래전 슬로베니아를 여행했을 때에도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이탈리아로 넘어가 이탈리아 시골 마을을 자전거로 산책했던 적이 있는데...

그곳은 터널만 지나면 쉽게 이탈리아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 순간이 그때는 얼마나 스릴 있고 흥미로웠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두 나라를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유럽의 현실과는 반대로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물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한 민족인데도 그 어느 누구도 통행을 할 수 없는 막힌 땅이 되어버렸으니....




다리를 건너 슬로바키아의 '슈트로보(Sturovo)' 마을에 도착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을 텐데 다리를 오가는 관광객들로 마을이 북적거린다.

다리를 건너자 우리를 반기는 곳은 다양한 색들의 봄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는 작고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슈트로보 시청 앞 공원

마을 안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오자 커다란 광장이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들어서있고 사람들이 외부 테이블에서 한가롭게 식사를 한다. 

근데 이 마을은 식사 후 디저트로 모두 아이스크림을 먹나 보다.

벤치에 앉아 모두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광경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ㅎㅎㅎ

마을 분위기가 참 평화롭다.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


'에스테르곰 대성당'을 방문하기 위해 다시 다리를 향해 가는데 다뉴브 강 맞은편에 보이는 '에스테르곰 대성당' 외관 뒷모습이 정말 멋지다.

슬로바키아에서 본 에스테르곰 대성당
다뉴브 강 건너에 있는 에스테르곰 대성당


어느 블로그에서 읽었던 내용 중 대성당의 멋진 외관을 보려면 슬로바키아로 와서 봐야 한다는 글이 생각나는데 맞는 말이다.

다뉴브 강을 배경으로 서있는 자태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강이 아니라 평지에 세워졌다면 아름다움은 훨씬 덜했을 것 같다.


헝가리에서는 다뉴브강(헝가리어로 두너강)이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딜 가나 다뉴브강이 흘러 도시와 마을의 전경을 한층 더 예스럽고 멋지게 그리고 평화스러운 전원풍경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다뉴브강의 본류만 하더라도 유럽의 9개 나라를 지나가고 있다고 하니 다뉴브 강은 유럽의 젖줄이라는 말이  확실하다.

하물며 부다페스트는 도시의 중앙을 다뉴브강이 가로지르고 있어 이 강의 경관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걸 보면 헝가리에서 젖줄 그 이상 '보물'인 셈이다.



다시 다리를 건너 우리가 도착했던 헝가리 에스테르곰으로 간다.

에스테르곰 대성당을 가는 길이 무척 조용하고 아름답다.

골목길의 고택들은 개조되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는 길이 숲 속 길을 걷는 길처럼 초목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약 조용한 숲길을 20여분 걸었을까?

에스테르곰 대성당에 도착했지만 아뿔싸 대성당 내부는 공사 중이었다.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왔다.

내부의 대부분 시설이 뜯겨 있는 데다가 군데군데 철조망으로 막기도 하니 이동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미켈란 젤로가 그린 제단 정면의 '성모승천 그림'은 아직 떼어내지 않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수녀님 두 분 오셔서 기도를 하시고 계신다.

나도 잠시 기도를 한다.

공사 중인 성당 내부와 제단의 그림(성모 승천)


헝가리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Franz Lizst)는 이 성당의 웅장함을 표현하는 장엄미사곡까지 쓸 정도였다고 하니 헝가리에서 가장 큰 내부를 갖고 있는 성당에서 우아하고 성스러움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나의 기대는 물거품으로 사라진 채 본관을 나와야 했다. 

파노라마 관을 올라가려니 공사 중인 이유 때문인지 폐쇄되어 그마저 이용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때를 잘 못 맞추어 왔다.ㅠㅠㅠ


본관을 나오자 놀라운 전시물들이 있다.

대성당을 지은 Istvan의 오른손, Saint Thomas Becket 주교의 뼈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의 유골들을 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었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성당 정원을 산책하는데 아름다운 리코더 소리가 들려 다가가니 헝가리 전통 복장을 입은 남자가 구슬픈 멜로디의 선율을 리코더로 연주하고 있다. 오늘따라 더 처량하게 들린다.

성당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라테(Latte)로 기분을 달래며 에스테르곰 성당을 나왔다.

에스테르곰 역까지 다시 걸어가려니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무작정 탔고 돈을 지불하려 하자 그냥 타라며 친근하게 데려다주시는 버스 운전기사님 덕에 기분이 금세 밝아졌다.

돈을 지불하려 해도 막무가내시다. 친절하신 기사님이시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엘리자베스 브리지에서 기다리는데 아름답고 조그마한 성당(Budapest inner city mother church)이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 본다.

미사 중인데 성가를 부르는 소리에 갑자기 모든 게 먹먹해지고 눈물이 갑자기 쏟아진다.

무슨 이유에서? 어떤 눈물? 

도무지 모르겠다. 마음이 아리다.

 



부다페스트 숙소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간단히 한 후 우리는 부다페스트 밤 산책에 나섰다.

다행히 밤 시간인데 바람도 없고 밤공기마저 포근하니 밤 산책하기에 적당한 날씨다.


부다페스트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국회 의사당과 어부의 요새, 부다의 성, 그리고 멋진 다리 등 멋지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밤이 되면 불을 아름답게 켜 놓고 관광객들을 유혹을 한다.

오늘은 멀리까지 다녀와 조금은 힘들었지만 야경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까지 올라갔다.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멋진 야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자세를 취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도 그 틈에 끼어 사진을 찍어본다.

역시 밤에 보는 국회의사당은 멋지다. 어쩜 저렇게 멋지고 근사할까 싶다.

다뉴브 강에 비친 국회의사당도 거리에 우뚝 선 국회의사당도 어느 하나 뒤처짐이 없다.

주변 다른 건물들도 은은하게 빛을 내며 다뉴브 강과 함께 불빛을 흘려보내고 있다.

정말 몇 번을 봐도 고풍스러운 품격이 느껴지는 멋진 도시, 부다페스트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부다페스트의 거리는 의외로 조용하다. 

주택가도 조용하고 전차와 버스가 다니는 거리도 조용하고 차분하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평소보다 한 정거장 앞서 내려 밤 길을 조금 걷기로 했다.

좁은 도로에 가로등만 있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인데 걷는 길이 조용해 오히려 편안하다.

물론 바찌(Vaci)와 같은 번화가는 젊은 이들과 관광객들로 지금도 화려한 불빛과 함께 많은 인파로 북적거리겠지...

우린 이제 그런 밤거리가 부담이 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이 밤길이 더 좋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의 늦은 밤 거리


오늘이 부다페스트 여행 열흘째,

나는 여전히 부다페스트의 매력에 빠져있다.

눈에 뭐가 씌었나 보다. 그래서 이 밤도 부다페스트와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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