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9일째, 발레 공연을 보고 교회음악을 감상하다.
2023년 4월 30일 일요일, 맑다가 흐려짐
오전 11시에 발레 '돈키호테(Don Quijote)' 공연이 있어 헝가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Hungarian State Opera House)에 가기로 했다.
공연 장소가 숙소에서 가까워 전차로 한 번에 쉽게 갈 줄 알고 여유를 부리고 있던 차, 며칠 전 교황이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이후로 교통 시스템이 변경된 사실을 출발 30분 전에 알았던 우리는 버스와 전철을 부리나케 갈아타면서 오페라 하우스까지 열심히 달려야 했다.
다행히 공연 시작 5분을 앞두고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했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오페라 하우스 정문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과연 바로크 양식과 네오 르네상스가 교묘하게 어울린 외관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가히 부다페스트의 명물답다.
대칭적인 파사드가 유독 돋보이고 양쪽에는 헝가리 국가를 작곡한 'Ferenc Erkel'과 유명한 헝가리 작곡가인 'Franz Liszt'의 동상이 보인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는데 고상함과 우아함이 풍기는 홀이 우리를 반긴다.
레드 카펫을 펼쳐놓은 중앙의 넓고 확 트인 계단은 마치 우아한 여인들의 자태를 마음껏 뽐내보라는 듯 양쪽으로 뻗어있다.
하긴 과거에는 오페라를 보러 오는 건 사교 중 하나로 간주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근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전혀 사교도 아닌, 우아한 자태를 보이기에도 거리가 아주 멀다. ㅠㅠㅠ
직원을 따라 예약한 좌석으로 들어가는데 오페라 홀 내부가 무척 아름답고 포근하다.
밀라노의 La Scala와 파리의 Palais Garnier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음향을 자랑하는 홀이라고 한다.
언뜻 보기엔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홀과 비슷하지만 2층 양편에도 발코니석을 만들어 독립된 곳에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조금은 달랐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마음을 매우 아늑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바닥의 카펫도 앉는 좌석도 드리워진 무대 커튼도 그리고 발코니 홀의 색상마저도 모두 붉다.
크진 않지만 전형적인 유럽 풍의 형식의 연주홀이고 발코니석도 우아한 구조로 고풍스럽고 고급진 홀이었다.
몇 년 전 파리에서 방문한 '오페라 가르니에'보다는 홀의 규모와 화려함 그리고 압도당할 만큼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나름 우아한 품격을 보이고 있는 홀이었다.
무려 3톤의 샹들리에와 그리스 신화를 묘사한 천장의 프레스코화가 더욱 홀의 고급짐을 더해주고 있었다.
홀에는 빈자리가 없이 가득 찼고 정확하게 11시가 되자 오케스트라는 '돈키호테 서곡(overture)'을 연주한다.
하프와 4개의 팀파니까지 동원된 풀 스케일의 2관 편성의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부다페스트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직접 연주하는 돈키호테 서곡의 첫 음을 듣자마자 전율이 느껴진다.
나는 연주회장 오면 이 첫 순간이 가장 설렌다.
아울러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 실력이 대단함도 저절로 느껴진다.
드디어 서곡이 끝나자 막이 올라가며 본격적으로 발레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 배경은 스페인, 이국적인 무대 배경도 무척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으며 무용수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의 색상과 디자인도 무척 화려하다.
1막에서는 돈키호테가 타고 다녔던 로시난테가 직접 무대에 등장해 깜짝 놀라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무용수들의 고난도의 기술이 나올 때마다 사람의 몸으로 어떻게 저런 표현과 동작이 가능한지 감탄이 나온다.
남, 녀의 군무도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정확하고 아름다운 동작으로 표현을 하고 여자 발레무용수의 아름다운 몸매와 뛰어난 표현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스페인 풍의 화려한 의상들과 몸짓 등 관객들의 요구에 맞는 화려한 볼거리가 쉼 없이 선보였다.
특히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2 인무(파드되, pas de deux)의 춤은 나의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했다.
남자 발레리노의 춤은 힘과 기교가 조화를 잘 이루어져 순간 마치 르네상스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졌다.
모든 관객들이 박수를 쳐주고 호응을 꽤나 잘해준다.
이렇게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의 경이로움 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3막이 다 끝나도록 주인공 '돈키호테'를 동작하는 발레리노는 춤을 추지 않고 주로 마임을 하거나 걸어 다니는 걸로 공연을 마친다.
몽상가였던 돈키호테를 몸짓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관심을 가지고 공연을 왔는데 오늘 발레 공연의 주제가 이발사인 바질(Basil)과 여관집 딸이었던 키트리(Kitri)의 사랑과 결혼을 주제로 한 내용이라 그런지 돈키호테는 그림자처럼 연기했나 보다.
하긴 돈키호테 발레 공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화려한 몸짓이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은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삶에서도 표정이든, 소리든, 몸짓이든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사랑'이니까 말이다.
3막까지 이어진 공연에 두 번의 intermission 있다 보니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되어 오후 2시가 다 될 즈음 끝이 났다.
무용수들의 화려한 기교와 개성 넘치는 화려한 공연을 보고 나니 무척 만족스럽다.
마음은 풍요로운데 내 배는 빈곤하다.
가까운 버거킹에 들어가 간단히 햄버거로 점심식사를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잠시 쉬고 난 후 Kispest지역에 있는 Budapest Munka's saint Josef templom으로 향했다.
저녁 7시에 열리는 교회음악 연주회가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바꿔 탈 수 있어 전혀 힘들지 않다.
도착해 보니 오래되고 멋진 주택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많은 나무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마치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는 듯 보여 편안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나무들 사이에 들어선 집들이 마치 별장처럼 느껴지고 가끔씩 자동차들만 오가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기분이 평온해지는 마을이다.
부다페스트 내에 이렇게 조용하고 숲으로 덮인 한적한 마을이 있는 게 놀랍다.
이런 마을 안, 자그마한 성당(Bodapest Munka's saint Josef templom)에서 무료 연주회가 있다기에 우리는 전차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
네오 로마네스크양식으로 된 소박하고 아름다운 외관을 갖고 있는 성당이다.
20분 전에 도착해 들어가니 공연 전 예배를 보는 중이었다.
내부를 둘러보니 무척 아름답고 온화한 성당이란 걸 첫눈에 알 수 있었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기품과 우아함이 풍겨오는 성당이었다.
갑자기 파이프 오르간이 성당 안에 퍼지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다.
성당 내부의 울림도 꽤 괜찮다.
이런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예배를 보는 이 마을 주민들이 무척 부럽다.
예배가 끝나고 7시가 되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늘 공연되는 음악은 모두 종교음악들로 합주곡 1곡과 솔로들이 나와 독창을 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4명 모두 하는 중창, 그리고 바흐 칸타타, 헨델 기악곡 등으로 공연 시간은 약 1시간 20분 정도였다.
성악가들(소프라노, 콘트라테너, 테너, 베이스)이 나와 독창과 중창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소프라노의 날카롭고 가냘픈 목소리는 마치 천상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부다페스트 바로크 오케스트라' 소속의 단원들(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오보에, 소프라토리코더, 알토리코더 그리고 오르간)의 15명 연주가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실내악을 듣고 있노라니 무척 경건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맨 앞자리에 앉아 관람을 한 덕에 마치 나를 위한 연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밤, 아름답고 자그마한 마을의 성당에서 이런 멋진 공연을 보고 있다는 순간이 내겐 너무 행복했다.
비록 유명한 음악가가 아니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아니었지만 조그마한 마을 성당에서 감상했던 훌륭한 음악은 나에게 비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연주회를 보고 나오니 봄밤에 내리는 보슬비가 분위기를 더 차분하게 만들지만 내리는 비 아랑곳없이 나의 마음은 무척 행복하고 뿌듯하다.
마을 자그마한 성당에서도 훌륭한 연주회를 공연할 정도의 예술 문화가 성숙한 곳이 헝가리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런데 헝가리에서는 마을의 성당에서 공연을 자주 한다고들 하니 더 놀랍다.
헝가리는 음악 인프라가 단단히 구축되어 있는 나라이고 또 음악의 전통과 역사가 깊음은 물론 음악에 무척 관심을 쏟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공항 이름이 '프란트 리스트(Franz List) 공항'이고 길거리 이름도 음악가 Bela Bartok, Josef Joheim, Erkel의 이름으로 된 거리가 있고 부다페스트에서만도 거의 매일 공연이 이루어지고 연주홀도 많다고 한다.
예술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조금 전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단체의 공연을 관람한 것도 아니고 근사하고 화려한 연주홀에서 음악을 감상한 것도 아닌데 공연을 보고 나온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행복했다.
이런 것이 바로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마력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는 내 눈과 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며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
*** 관람한 발레 공연과 음악 콘서트 동영상 일부를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