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노소스 궁에 가다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을 마주했던 나의 첫 느낌은 내가 상상했던 궁전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매우 넓지만 정돈되지 않은, 조금은 삭막해 보이는 인상을 접한 후 궁전이라고 명명된 곳은 화려할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과거 책으로 읽었던 "크노소스 궁전"의 이미지와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황량한 느낌이 먼저 다가왔다.
광활한 땅에 군데 군데 발굴되어진 유적지들과 유물들 그리고 그룹으로 온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 여기 저기에서 간간히 보일 뿐 근사한 건축물이라던가 조형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긴 기원전 1700년 전의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기란 불가능함이 당연하다. 다만 과거의 흔적들 만이 조금씩 잔재하면서 방문객들에게 상상과 유추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미노타우르스라는 반인반수의 괴물이 살았다는 그 전설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여기로 이끄는 걸까?
이 곳은 크레타의 부유했던 상인이 발굴하기 시작했고 뒤 이어 영국의 에반스가 본격적으로 발굴을 했다고 하는데 아쉬운 점은 발굴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사용한 탓에 역사적 가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여전히 크노소스 궁전은 유네스코로 등재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정성과 신뢰성(authenticity)이 줄어들어들었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모든 유적지와 유물들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전부 제시된 건 아니었고 때론 그리스어로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정확한 내용을 알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순간 여러 나라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크노소스 궁전에 대해 그리스 정부가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 않는걸까? 라는 다소 의구심과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원전 1700~기원전 1400에 지어진 이 궁은 반인반수 괴물인 미노타우르스에게 나이 어린 소년 소녀를 제물로 바쳐야 했는데 그 때 미노스왕은 괴물을 미궁(라비린토스)에 가두고자 이 궁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테네 왕의 아들 테세우스는 괴물 미노타우르스에게 자발적으로 공물이 되었고 이때 미노스의 딸인 아리아드네의 덕으로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하고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궁이다. 하지만 이 궁엔 미궁은 없다. 대신 유명한 벽화들과 넓은 옛 터. 기름, 양모, 포도주, 곡물을 저장했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항아리들과 도자기, 그리고 좁게 만들어진 미로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좁은 방들은 이카루스의 신화처럼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장소임엔 틀링이 없었다.
이 곳 방문을 통해 화려한 크노소스 궁과 신화의 전설들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크노소스 궁은 나의 호기심 가득했던 상상의 날개를 접게 만들었다.
차라리 날래를 달고 내 상상속에서만 훨훨 날아다니니는 게 더 좋았을까.
역시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다른가 보다.
그리스 오기 전에 읽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크노소스 궁전"을 읽으며 책 속에서 펼쳤던 내 상상의 날개가 더 화려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