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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길 끝에 도착한 골루바츠(Golubac)

세르비아의 시골마을 '골루바츠'에 가다.

by 담소

며칠 전 중국 주석이 베오그라드를 방문한 이유에서인지 도로 양쪽에는 세르비아와 중국의 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온 거리에 펄럭인다.

대한민국의 국기가 걸려있더라면 기분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세르비아의 시골마을, '골루바츠(Golubac)'로 가는 길,

베오그라드 중심가를 벗어나 골루바츠를 향해 가는데 가는 길이 무척 좁을뿐더러 마을들을 자주 통과해야 해서 운전하기가 쉽진 않다.

게다가 먹구름 짙게 채워진 하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쏟아지는 장대비를 그대로 맞으며 정비되지 않은 국도를 몇십 분 운전 했는데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다행히 멀리 파란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놓인다.


마침내 파란 하늘이 펼쳐진 곳으로 들어와 주변 풍경을 보며 운전을 하니 띄엄띄엄 지어진 농가들과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와 말, 그리고 양 떼들...

지금 달리는 시골길은 며칠 전 보았던 루마니아의 시골풍경과 흡사하다.

한마디로 참 평화로운 풍경이다.

스크린샷 2024-12-05 224946.png 골루바츠로 가는 도로

1시간 정도 달렸을까.

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빠른 속도로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지나간다.

우린 얼마 안 가 결국 운전을 멈추어야 했는데 논두렁이에 커다란 트럭과 승용차가 부딪혀 뒤집혀 있다.

큰 사고였던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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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분 정도 기다리니 서서히 길이 뚫린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다시 도로 앞쪽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많은 차들이 움직이지 않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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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로 길게 늘어선 차들

하필 목적지 골루바츠로 가는 도로가 공사 중이라 한쪽 차선은 이용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양쪽 방향에서 오가는 차들이 차선 하나를 이용해 번갈아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도를 다시 보니 우리가 가야 할 골루바츠로 가는 대부분의 도로들이 공사로 인해 통제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길을 찾아 운전을 하는데 내비게이션은 산속 농지가 많은 비포장 도로로 우리를 안내한다.

길이 울퉁불퉁한 데다가 도로들도 긴 풀들로 덮여 있는 걸 보니 이 길로는 차들이 다니지 않은 것 같은데 도로 사정을 잘 모르는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대로 운전할 수밖에...

길이 좁고 깊이 파인 웅덩이들이 많아 때때로 내가 차에서 내려 남편의 운전을 안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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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황당한 길에서 운전하려니 과연 이 길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당황스럽기도 두렵기도 했다.

지금껏 여행 중 많은 나라에서 차를 빌려 운전을 많이 했지만 이런 상황을 처음 겪게 되니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은 이 길에는 우리만 운전을 하고 있다(?). ㅠㅠㅠ

현지인들은 이 길이 아닌 다른 도로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결국 약 30여 분간 산속 비포장길에서 운전하느라 고생을 한 후에도 또 몇 차례 어려운 길을 만나 애를 먹고 나서야 제대로 된 도로를 만났다.

그 기쁨이란....ㅎㅎㅎ

스크린샷 2024-12-05 170557.png 어렵게 만난 시원하게 확 트인 도로

세르비아에 도착해 어려움을 몇 차례 겪고 나니 많은 관광객들이 이 나라를 방문하기까지에는 좀 더 시간과 준비가 필요함을 또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힘든 시간을 겪고 나자 허기가 느껴져 우리는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없는 샌드위치와 티라미수로 간단히 배를 채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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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골루바츠(Golubac)에 도착했다.

골루바츠는 다뉴브 강 오른쪽에 위치해 있으며 루마니아 국경과도 접하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넓게 펼쳐진 다뉴브 강(Danube River)을 보니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주변이 초록으로 둘러싸인 길은 마음을 릴랙스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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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강 건너 루마니아

'골루바츠'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여러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터키 사령관의 구애를 거부한 아름다운 공주 '골루바나(Golubana)'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이야기로, 공주 '골루바나'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따서 요새의 명칭을 '골루바츠(Golubac)'라고 붙였다고 하는 전설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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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골루바츠를 방문한 이유는 아름다운 '골루바츠 요새(Golubac Fortress)'를 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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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루바츠 마을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는데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게 골루바츠 요새였고 이 요새는 다뉴브 강을 앞에 둔 중세의 중요한 요새였다.

이 요새는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요새 내에 9개의 거대한 탑들이 성벽으로 서로 연결되어 육지와 강, 양방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도록 배치되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즉, 수로와 육로의 공격과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세웠던 중세 성이었던 것이다.

다뉴브 강을 바라보며 멋지게 서 있는 요새는 그 어느 요새보다 고풍스러우며 당당함이 느껴진다.

이 요새를 보기 위해 우리는 장시간 힘들게 운전을 하며 온 것이다.


골루바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넓은 다뉴브 강이 마을까지 이어 흐르고 멀리서 보이는 골루바츠 요새는 나를 벌써 흥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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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골루바츠 요새

1335년 헝가리 군대의 요새로 처음 언급된 요새지만 훨씬 이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도나우강 한 편에 고고한 자태로 서있는 요새, 적을 방어하고 공격하기 위해 이 넓은 도나우 강 한편에 자리 잡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많은 세월의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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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깎아지른 절벽들과 물살이 빠른 다뉴브강 협곡의 이점을 이용해 14-15세기 헝가리와 오스만, 그리고 세르비아가 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헝가리와의 전쟁, 그리고 오스만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이용했지만 결국은 모두 안타까운 결말을 맞아야 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요새는 1930년대에 요새를 통과하는 지방 도로가 건설되면서 요새의 두 문이 모두 손상되어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했지만 문화재 보호를 위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다행히 그의 자태가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듯, 요새는 여기저기 허물어지고 파괴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유엔(UN)과 오스트리아의 지원으로 지금도 계속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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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두 개로 되어있는데 가장 높은 가드 타워가 있는 내부요새(가장 먼저 만들어진 오래된 요새)와 외부요새(궁전을 보호하는 탑)로 되어 있다.

오스만시대에 건설된 캐논타워가 맨 앞에 위치해 있다.

타워(tower)만 해도 무료 9개가 있는 거대한 성이었으니 그 당시의 규모가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9개의 탑 중 이름이 붙여진 건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hat tower와 가장 앞쪽에 있는 오스만 시대의 canon tower이다.

요새 입구는 서쪽에 있는데 물이 가득 찬 해자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로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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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 tower 와 Canon Tower

아쉽게도 복원 중인 탑 들이 많아 성의 일부만 관람할 수 있 있었다.

요새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철문(iron gate)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진 않지만 막상 요새 내부로 들어가니 무척 웅장하다.

내부에서는 이 요새의 복원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이 소개되고 있었고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진행되고 있었다.

요새에서 발굴된 프레스코화(saint George, SaintDemetrius, saint Nestor 등)와 당시 사용했던 무기 그리고 이 요새에 머물렀던 왕들의 업적 등 구체적인 인물들과 전시물들이 공개되고 있어 관람하는 내내 흥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중 세르비아의 통치차로 널리 알려진 스테판 라자레비츠(Stefan Lazarevic(1377-1427))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기사단의 기사였던 인물로 세르비아의 어려운 상황에 나라를 안정시키고 군사력을 강화했으며 예술을 후원했고, 번역가로 그리고 시인으로 활동했다고 적혀있다.

기사이자 정치가, 예술가, 시인...

특히 그가 지은 시 '사랑에 대한 찬사'는 지금도 전해진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지도자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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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화 Stefan Lazarevic와 그 당시 무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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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관람을 마치고 나온 나는 다뉴브 강 주변 풍경과 어울려 강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요새의 아름다움에 또 한 번 도취되고 말았다.

한참을 쳐다봐도 싫증 나지 않을 고고한 자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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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와 주인이 과일과 맛난 간식을 준비해 놓은 걸 보니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기분이 아주 좋다.

아담한 집에 딸린 자그마한 발코니(?)에 나가보니 마을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한 마을의 말끔한 정경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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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고 난 후 다뉴브 강변을 걸어 보기로 했다.

맑은 날씨, 청량한 바람이지만 5월의 강바람은 옷깃을 자꾸 여미게 한다.

하지만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 강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길은 정비가 잘 되어있어 걷는 내내 기분이 좋다.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한낮의 시골 마을 풍경은 여지없이 조용하고 차분하다.

말끔하게 단장된 호텔 한 개와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자그마한 슈퍼들이 두서너 개 있는데 가게 문들이 많이 닫혀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마을 골루바츠는 이른 아침에 활기가 돋는 움직이는 마을이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아침과 낮까지 문을 열고 내가 즐겨찾는 베이커리도 아침 6시에 열고 오후가 되면 문을 닫아 지금은 굳게 문이 닫혀있다.

오후에 활기를 띄는 한국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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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골루바츠 풍경

다음 날 아침, 발코니에 나가 거리 풍경을 보니 마을 아침 분위기가 분주하다.

거리에는 많은 자동차들이 다니고 조용하던 마을에 사람들도 갑자기 많아져 북적거린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조그만 마을이 새벽부터 분주하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djerdap협곡을 보기 위해 서둘러 나갔다.

다뉴브 강 협곡의 입구에 있는 골루바츠 요새는 좁아지는 협곡의 입구에서 오가는 배를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다뉴브 강을 따라 약 40분 정도 운전하는데 아침의 드라이브 길이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오가는 차들도 많지 않아 드라이브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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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로에 튀어 나온 절벽의 바위는 보기에도 매우 낮아 보이고 도로를 향해 많이 튀어나와 있어 큰 버스나 트럭이 이 구간을 지나갈 때에는 조심해서 지나가야 할 것 같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만 같다.

강 절벽에는 군데군데 커다란 동굴이 보였는데 과거에 저 동굴에서 사람들이 거주를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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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 달렸을까, 넓었던 다뉴브 강이 차츰 좁아지고 드디어 최고로 좁아지는 협곡을 만났다.

몇 년 전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협곡을 지나갈 때는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를 느꼈는데 넓은 다뉴브강의 폭이 급격히 좁아진 강에서 과거에 이 협곡에서 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일을 생각하니 신비함에 앞서 마음에 불편함이 먼저 느껴진다.

도로 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잠시 쉬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눈과 사진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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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과 주변 풍경


골루바츠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떠나기로 했다.

마을 뒤로 흐르는 다뉴브 강변을 걷고나서 베이커리에 들러 빵과 커피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유명한 베이커리라 그런지 아침에 나온 빵이 벌써 많이 사라지고 없다.

남아있는 빵 중에서 몇 개를 골라 골루바츠 요새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니 답답한 실내에서 먹는 점심보다 훨씬 낫다.

멀리서 보이는 골루바츠 요새도 여전히 멋지다.

하지만 이제는 멋진 요새도, 아름다운 다뉴브와도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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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르비아의 마지막 여행지 니시(Nis)로 간다.



*** 이 글은 2024년 5월 여행 중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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