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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향 가득한 테살로니키 골목길 산책
블라타돈 수도원과 시티 월, 그리고 테살로니키의 아름다운 도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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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소
Jan 11. 2025
테살로니키 둘째 날이다.
새소리 들으며 잠에서 깨는 것도 오랜만이다.
어제 오후 테살로니키 도심을 한참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고 몸도 무거운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강한 햇살이 우리를 밖으로 내몬다.
눈부신 햇살은 오늘도 여전하다.
우리는 지금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어져있는 테살로니키의 구시가지 높은 언덕에 묵고 있는데
독특한 형태의 건물도, 커다란 건물도 없는 특색 없는 집들의 무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숙소다.
골목 산책을 하기로 했다.
출근 시간 전이라 그런지 골목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골목 여기저기를 걸어보는데 그리스만의 특징이 느껴진다.
좁은 돌길과 성한 곳 없는 주택의 벽들은 우리가 그리스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로 그들만의 은어를 표현하고 있듯 여기저기 벽 공간에 잔뜩 그려놓았다.
집 주인은 이런 그라피티를 하도록 허락은 한 걸까? 아님, 그러려니 체념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은 보기 좋게 그려진 그라피티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의미 없는 낙서처럼 보이는 그라피티다.
하지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그라피티가 한편으로는 좁고 삭막한 골목에 눈요기라도 할 수 있는 생기를 불어 넣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벽화마을과는 사뭇 다른 감성이다.
그라피티로 지저분하게 보일 수 있는 이 좁은 골목들을 5월의 봄꽃들이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런데 꽃에서 나는 진한 향기는 덤이다.
꽃향기 맡으며 좁은 골목길을 걷는 기분이 묘하다.
골목엔 특히 재스민 향이 가득한데 재스민 향이 이렇게 좋은지 처음 알았다.
집 마당 여기저기에는 재스민이 만발해 벽들까지도 하얗게 핀 재스민에 덮일 정도로 무성하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를 처음 들어설 때에도 좋은 향이 집안 전체에 퍼져있어 향수를 뿌려놓았나 했는데 알고보니 그 향은 재스민이었던 것이다.
집 담장마다 재스민 외에도 이름 모를 넝쿨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계절에 맞게 만발하게 피어 자칫 황폐하고 삭막할 수 있는 주택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골목을 오르다 가끔씩 멈추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테살로니키의 도시 풍경도 정말 아름답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골목 이곳저곳을 다니던 중 잠시 길을 헤매기도 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구글지도가 없다면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지도를 보며 걸어도 갈래길이 많아 가끔은 멈춰서 확인을 하며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점점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는지 이 좁은 골목길에서 우리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이 있다.
매일 이 골목길을 출퇴근해야 하는 이들의 운전에 위험도 느끼지만 놀랍기도 하다.
심지어는 높고 좁은 이 골목길에 마을버스가 다니는데
마을버스 기사님은 운전 실력이 뛰어나야 할 것 같다.
마을버스가 지나갈 때는 멀리서 기다렸다가 한 대씩 오가야 했는데 이런 일상이 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통과한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식사 후 수도원
(Vlatadon Monastery)
과 성벽(city wall)을 가기로 했다.
노을을 보고 싶은 마음에 어제 방문하려 했지만 너무 피곤했던 탓에 결국 오늘 아침으로 미룬 것이다.
이 수도원에서는 테살로니키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테살로니키의 view point로도 알려진 곳이다.
수도원까지는 우리 숙소에서 20여분 더 올라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멋진 집들이 나타나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데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더니 놀랍게도 이 높은 곳에 넓은 공터와 널찍하게 지어진 전망 좋은 근사한 집들이 있다.
저택들은 더 높은 곳에 짓고 사나 보다. ㅎㅎㅎ
드디어 블라타돈 수도원(Vlatadon Monastery)에 도착했다
이 수도원은 수세기에 걸쳐 몇 차례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시대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수도원이라고 한다.
블라타돈 수도원은 도로테오스(Dorotheos)와 마르코스 블라티스(Markos Vlatis) 두 형제 수도사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이 수도원의 이름은 그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오스만 제국 당시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 위해 수도원까지 걸어가곤 했던 터키 장교 Tsaous Bei의 이름을 따서 Tsaous Monastery라고 불렸다고 하던데 얼마나 멋있었길래 높은 곳에 있는 수도원을 오갔을까?
수도원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정갈하게 꾸며진 정원과 테살로니키의 전경이 한눈에 쫙 펼쳐지는데 그림이 따로 없다.
경치를 보기 위해 터키 장교가 오르내렸다던 이 수도원에서 보는 테살로니키의 경치는 압권이었다.
땅에는 하얀 건물들과 푸른 바다. 그리고 하늘엔 파란 하늘.
내 눈에 보이는 삼위일체다.
수도원에서 바라본 테살로니키 전경
다행히 수도원 내부도 구경할 수 있었다.
14세기에 그려진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지진 복원 작업 중에 공개된 것으로
탁월한 솜씨를 자랑하고 있는데 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비록 지금은 프레스코화에 많은 흠집도 있고 색도 바랬지만 무얼 나타내려 했는지 아직도 선명했다.
무엇보다 14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지금 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과 감동이었다.
수도원 뒤편으로 가니 종이 있다.
남편이 설명하기를 과거에는 종을 울리기 위해 끈을 이용해 당겼지만 요즘은 종마다 모터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변했다며 이를 보여주기 위해 옛 시설과 지금의 시설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흥미롭다.
이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종이 울렸으면 했
는데 우리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수도원에서 멋진 경치와 함께 한참을 머물다 나왔다.
수도원 옆에는 테살로니키 시티월(성벽, City wall)이 둘러져 있었다.
테살로니키 구시가지 Ano Poli위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city wall은
4세기 후반에 건설되었을 때부터 요새화된 성벽으로 현재의 성벽은 초기 비잔틴 시대(갈레리우스,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진, 전쟁 그리고 세월의 흐름으로 19세기 후반까지 계속 복원된 이 성벽은 바다방향으로 4km에 걸쳐 테살로니키를 둘러싸고 있었다.
시티월(City wall)
그런데 테살로니키의 성벽은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과는 다르게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4줄의 벽돌띠와 교대로 배치된 돌벽이 독특한데 이런 양식이 4~5세기에 로마혼합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성벽이라고 한다.
무슨 이유로 이런 디자인을 사용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벽돌과 돌의 장점을 이용해 성벽을 지었다고 생각하니 무척 그들의 지혜가 뛰어났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하지만 전쟁과 지진 그리고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이 성벽은 많이 파괴되어 계속 복원 중이라고 한다.
고대 성벽 앞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이 참 평화롭고 여유롭다.
고대 성벽의 성문을 통해 매일 출퇴근하고 이 성벽을 매일 산책하는 기분은 어떨까?
이곳에 사는 현지인들에게 매일 마주하는 이 성벽과 성문은 단지 일상생활을 위한 아치형의 건물에 불과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조금 더 고대의 소중한 유적과 유물에 관심과 애정으로 오래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방문했던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수도 아테네와는 무척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히 그리스의 항구도시로만 알고 방문했던 우리의 준비가 무색할 정도로 테살로니키의 느낌은 신선하고 강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백색 건물들이 병풍 두르듯 푸른 에게해를 껴안고 있는 아름다운 테살로니키,
재스민 향 가득한 좁은 골목길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 글은 2024년 5월 그리스 여행 중 기록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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