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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어촌 휴가에 대한 소고[小考]

by 담소

우리가 이 마을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비가 온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여니 아주 조용하게 예쁜 비가 내리고 있다.

가뜩이나 조용한 마을인데 더 차분하다.



남편은 책을 읽는다며 거실에 있고 나는 따뜻한 커피와 어제 산 그리스 전통 과자를 들고 밖으로 나와 마당 테이블에 앉았다.

한국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이런 분위기를 마음껏 누려보고 싶기도 했고 빗소리 들으며 커피와 간식으로 오전 시간의 차분함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도 컸다.

어제 산 그리스의 다디단 간식은 바클라바(baclaba), 푸스카키아(Fouskakia), 로우코우마데스(Loukoumades) 등 가게 주인이 하나하나 이름을 말해 주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쌉싸름한 커피와 먹으니 그만이다.

내 입안에 즐거움을 주는 달콤한 간식이다.

그리스인의 노인들은 커피를 아침에 한 잔 마시고 낮잠 후에 두 잔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골 마을의 카페에는 젊은이보다는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그리스에서 커피와 낮잠은 둘 다 지중해의 장수 비결로 알려져 있다니 나도 이 참에 커피와 낮잠을 늘려볼까 싶다. ㅎㅎㅎ


어닝(awning)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참 좋다.

비가 오는 날은 굳이 음악을 틀어놓지 않아도 빗소리가 음악을 대신하는 날이다.

대문만 열면 바다가 바로 앞인데 오늘은 대문까지도 멀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을 때리며 현관 앞 정원 테이블에 앉아 내리는 비와 종일 함께 해도 좋을 듯하다.


그런데 앞마당 건너편 집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비 오는 날 청소를 하고 계신다.

날 보자 손을 한번 흔들더니 이내 우산도 없이 비옷도 입지 않은 채 물을 뿌리며 계단을 청소하신다.

그런데 이어 앞마당에 물을 주신다.

비 오는 날 앞마당에 왜 물을 주는 계실까?

한참을 지켜봤지만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무슨 일이지??



한참을 앉아있다 보니 벌써 점심때가 되어간다.

점심 식사는 토마토 페이소스를 이용해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어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스파게티 소스를 이용하곤 했는데 이곳에는 없으니 직접 소스를 만들어야 한다.

토마토 페이소스에 버터와 우유를 넣고 설탕과 후추로 간을 하고 돼지고기와 버섯과 피망, 당근, 양파 토마토를 소스와 함께 볶아 스파게티에 올리면 되겠지?

창피한 이야기지만 32년 차 주부인데 음식은 아직 젬병이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덕에 오늘도 국적 없는 나만의 레시피로 요리를 했다. ㅎㅎㅎ

냉장고에는 이미 사다 넣은 리즐링와인도 기다리고 있다.




오후가 되니 내리던 비는 멎었지만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이 근처 해변들과 view point 몇 군데가 있어 가보기로 했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도 문만 열면 바로 비치가 보이지만 아름다운 그리스 비치를 만나고 싶어 차로 외출해 보기로 했다.

오래전 방문했던 크레타 섬의 '발로스비치(Balos beach)'를 또 만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오분 정도 갔을까?

이름도 긴 'Loutra Agias Paraskevis beach'에 도착했다.

아주 자그마한 비치인데 양 옆을 방파제가 막고 있어 아늑하고 파도도 잔잔한 비치다.

작은 카페들과 레스토랑(Taverna)들로 둘러싸인 작은 반원형의 모래 해변이다.

바다 바로 옆 산책로에는 작은 교회와 보트 정박지가 있어 주변 풍경도 아름다운 비치였다.

저녁에 일몰을 보기에 아름다운 전망일 것 같다.

주말엔 따뜻해진다는 예보가 있으니 이 해변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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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주변을 산책하고 우리는 이어서 'St. George pebble beach'에 갔다.

도로가 끊겨 차를 중간에 세우고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걸어가는 길도 편하지는 않다.

약 10여분 걸었을까?

마침내 도착한 비치는 아는 사람들만이 올 수 있을 만큼 숨겨진 해변 같았다.

적막한 바다 풍경이 무척 외롭게 느껴진다.

화창한 맑은 날씨에 조그마한 자갈들이 많은 아담한 비치에 꼭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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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George pebble beach


St, George pebble beach에서 약 15분 걸었을까?

우리는 'Ani beach'를 만났다.

해변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딱 맞는 해변인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우리의 답답한 마음 아랑곳 하지 않고 파도만 춤추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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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 beach



마지막으로 Assia's bay를 들렀다.

다행히 이 해변까지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차로 어렵지 않게 올 수 있었다.

이곳은 오늘 들렀던 비치들에 비해 꽤 넓었고 선베드까지 준비되어 있는 걸 보니 이름이 알려진 해변인 듯싶다.

해변을 산책하거나 이 날씨에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부부만큼이나 바다 수영을 좋아하는 분인 것 같다.

아름답고 조용한 해변들을 둘러볼 때마다 바다에 들어가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잔뜩 구름 낀 하늘과 거센 바닷바람이 우리를 막는다.

좀 더 기다리라고... ㅠㅠㅠ

IMG_20240516_160859.jpg Assia's bay




숙소로 돌아 오늘 길에 observation point "pavilion"이라는 곳에 갔다.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구름이 잔뜩 낀 오늘은 무리다.

흐린 날이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에게해가 장관이다.

언덕에서 내일 우리가 방문할 온천이 보여 우리 옆에 있던 관광객에게 저 온천을 가본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 봤는데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물도 깨끗하지 않고 샤워시설도 너무 오래되고 유황 냄새가 강해 열흘 동안이나 머리에 배여 고생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실 내일은 유황온천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던 우리는 이미 다녀온 사람의 얘기를 듣고 나니 갈 마음이 선뜻 나서지 않는다.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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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런 날씨가 계속된다면 비치 방문만 열심히 하고 정작 수영은 못한 채 떠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날씨가 따뜻해져야 할 텐데....

날씨는 우리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을까?




이 글은 2024년 5월 그리스 여행 중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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