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 다녀와 만찬을 즐기다.
어제부터 우리는 그리스의 네아 스키오니 마을에 머물고 있다.
오늘부터 서둘러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여덟 시다.
여행 중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잔 적이 없는데 마음가짐 하나 달라졌다고 이렇게나 몸이 금세 적응을 하다니 놀랍다.
사실, 여행의 방법과 목적은 누구나 다르고 정답이 없기에 여행에 최대의 만족을 누리면 그만이다.
우리 부부의 여행은 꽤나 계획적이고 그 계획에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우리는 여행 출발 육 개월 전에 비행기표 구매와 숙소 예약을 모두 끝내고 방문할 여행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그 나라의 언어도 공부를 한다.
또한 여행지에서 또한 하루하루의 계획을 미리 세워놓고 계획에 따라 여행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오던 우리 여행이 네아 스키오니 마을에 도착하는 날부터 변해야 했다.
한마디로 무계획이다.
더불어 여행 중 낯선 곳에서 '느리게 사는 삶'의 맛을 어쩔 수 없이(?) 체험하게 된 것이다.
여행 중 느리게 사는 삶(슬로 라이프)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전혀 서두름 없이 아침을 챙겨 먹고 여유 있게 커피까지 마신다.
이렇게 한가하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는 서두를 일도 없을뿐더러 바쁘게 움직이는 행동마저도 이 마을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싶다.
화창한 햇살에 이끌려 정원으로 나가 본다. 서늘한 바람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함께 다가오니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맑아진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정원에는 레몬 나무 외에 포도나무도 있는데 가을에는 탐스럽게 열린 맛난 포도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레몬을 따서 요리에 쓰라고 했던 주인의 말에 레몬 몇 개를 따 어제 사 온 생선에 뿌리고 레몬간장을 만들어 칼라마리와 먹기로 했다
포도나무도 보이고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도 있는 아기자기한 정원이 마음에 든다.
땅이 없는 삭막한 아파트에 사는 한국의 우리 집과는 무척 비교가 된다.
잠시 집 밖으로 나가 항구 주변과 마실을 다녀보기로 했다.
마을의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골목길에는 아침 열 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가게들의 문이 닫혀있고 오가는 사람들도 없어 심심하다.
우리 마을 바로 옆 마을까지 걸어가 보는데 이곳 역시 조용하긴 마찬가지다.ㅎㅎㅎ
이 마을 사람들의 하루 시작은 아무래도 점심때는 지나야 하나보다.
우리도 적응을 해야 하나?
한적한 이 골목길에는 사람의 북적함이 아닌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가 열린 나무들로 넘쳐나고 재스민이 담장을 타고 흐르니 내가 본 골목길 중에 가장 화려한 골목길이다.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 재스민 향기와 꽃 향기로 가득하다.
아침 산책길에 향기가 가득하니 몸과 마음에 향이 밴다.
한마디로 5월의 네아 스키오니 마을은 꽃들의 천국이었다.
어제 호스트가 얘기해 준 마을 '카산드레이아(Kassándreia)'의 재래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주로 끼니를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기에 큰 시장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사 와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 중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는 일은 우리에게 무척 흥미로운 일이라 비록 갈 일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히 재래시장을 방문했을 것이다.
Kassándreia까지는 차로 약 25분 정도의 거리였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오가는 차도 뜸한 이 거리는 그리스 조용한 시골길 그 자체다.
하지만 어제처럼 도로 양 옆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우리를 반겨주니 지루할 틈이 없고 눈앞에 펼쳐진 바닷가를 보며 운전하는 이 길은 한 폭의 멋진 드라이브 길이다.
하얗게 핀 재스민과 유채, 그리고 화려하지만 이름 모를 꽃들이 우리가 운전하는 내내 도로 양쪽에서 춤을 추고 있다.
즐겁고 행복한 시장 나들이다.
카산드레이아에 도착하니 장 서는 날답게 제법 사람들도 많고 오가는 차들도 많아 주차할 장소를 한참 찾아 헤매야 했다.
우리가 머무는 한적한 네아 스키오니 마을과는 전혀 다른 마을이다.
한적한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장 서는 날에 맞춰 큰 마을로 놀러 나와 서로 반갑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겹다.
사람들이 그리웠는지 카페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시장의 규모가 제법 크고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입구에 들어서니 싱싱하고 다양한 과일과 야채,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용품들이 많고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옷가게들이 모여있다. 그 옷가게들을 통과하면 생선가게들이 있다.
제철 과일로 체리와 살구, 그리고 딸기도 많고 토마토, 수박도 있다.
야채와 과일 가격은 모두 1kg를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는데 놀랍게도 체리의 가격이 1kg에 1.5유로다.
호박 1.3유로, 감자는 1유로, 사과도 1.2유로, 시금치도 1.3유로다.
당연히 한국의 야채, 과일 가격과 비교가 되는데 한국의 가격에 비해서 너무나 저렴해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국은 왜 이리 비싼 건지 모르겠다.
가격이 저렴해 양손이 무거울 정도로 많이 샀다.
어촌마을이라 싱싱한 생선도 많고 가격이 저렴할 것 같아 생선가게로 향했다.
참돔처럼 생긴 싱싱한 생선이 7유로, 칼라마리가 1kg에 12유로다.
우리는 저녁거리로 생선과 칼라마리를 샀는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생선 내장은 물론 비늘도 다 제거를 해주니 요리하기가 쉬울 것 같다.
모두가 싱싱한 생물이고 가격도 저렴해 저절로 배가 부르다.
숙소에 도착해 남편은 시장에서 사 온 칼라마리와 생선들을 씻어 정리하고 나는 깔라마리와 야채를 골고루 넣어 부침개를 만들어 훈제삼겹살을 곁들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부드럽고 쫄깃한 칼라마리는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점심 식사 후 정원 벤치로 나가 시장에서 사 온 체리와 커피를 두고 책을 읽으며 오후의 햇살을 즐긴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오후가 되면 바다로 나가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데 날씨가 수영을 할 만큼 따뜻하지 않다.
오늘 이곳의 낮 기온이 25도라고 예보되어 수영을 기대했는데 바람이 여전히 강하다.
괜스레 추운 날씨에 수영을 하고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라 생각되어 하루 이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계획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는 낯설고 마음 한편으로는 조바심도 생겼지만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길 바라는 건 우리의 희망에 불과하니 계획에 없던 다른 내용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할까 싶다.
밖에서 한참 동안 앉아 있으니 추위가 느껴져 안으로 들어와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늦은 오후, 마을길 산책에 나섰다.
다양한 꽃들이 담긴 화분을 전시해 놓은 주택의 담벼락들, 올리브 나무들과 다양한 꽃나무들을 심은 정원들, 익지 않은 푸른 열매가 달린 나무, 살구나무, 레몬 나무를 비롯해 포도나무, 그리고 부겐빌레아 꽃 등 집집마다 수많은 꽃나무들과 화분이 가득하다.
네아 스키오니 마을의 집집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정원 가득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동네가 마치 작은 식물원 같은 느낌도 든다.
특히 내 눈을 끄는 건 이 마을 어딜 둘러봐도 재스민이 많다는 것이다.
골목을 다닐 때마다 재스민향이 진동을 했는데 나는 재스민향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조용한 마을의 골목길을 진한 꽃향과 함께 걸으니 도파민이 저절로 생긴다.
이 향을 한국에도 가져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니 작은 마을에도 있을 건 다 갖추고 있다.
슈퍼마켓도 두 군데나 있고, 카페도 레스토랑도 정육점도 있다.
베이커리 가게도 눈에 띄어 그리스 전통 디저트를 몇 개 샀다.
생선가게도 있는데 내일부터 고기가 들어온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산책의 가장 큰 수확은 젤라토를 파는 가게의 발견이다.ㅎㅎㅎ
가게 앞 벤치에 앉아 할아버지 두 분이 젤라토를 드시며 담소를 나누는 두 분의 모습이 재밌다.
우리도 참지 못하고 젤라토를 사 먹었는데 맛도 있고 주인아주머니가 상냥해 기분이 좋다.
항구 주변에 오자 어제는 꿈적도 않고 있던 배 안에 선주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생선 가게 주인아저씨의 말대로 고기를 잡으러 갈 준비를 하나 보다.
오후가 되면 항구 앞에서 갓 잡은 싱싱한 고기를 살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내일은 싱싱한 생선을 살 수 있는 경험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저녁 식사로 재래시장에서 사 온 참돔을 오븐에 구워 먹었다.
오전에 소금으로 절여놓았더니 간이 딱 맞다.
오븐에 잘 구워진 생선과 함께 시금치 국을 끓이고 버섯볶음을 했다.
맥주도 곁들여야 완성이다. ㅎㅎㅎ
그런데 어느새 생선냄새를 맡았는지 고양이가 문 앞에 있다.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미안해도 어쩔 수 없다.
나름 훌륭한 만찬(?)을 단 둘이 오래 즐기며 적막한 어촌에서의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 글은 2024년 5월 그리스 여행을 하며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