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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진 강줄기 앞에서 사라져 버린 말들, Máj 전망대

블타바강과 함께 몸도 마음도 쉬어간 산책

by 담소

늘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보헤미아의 북쪽 지방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트레일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전망대에 올라가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퍼진 5월의 맑고 따스한 날, 숙소에서 약 50여분 정도 떨어진 체코 프라하 근처의 Máj 전망대(Vyhlídka Máj)에 가기로 했다.

출발 전, 우리는 블로그에서 ‘체코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는 이 전망대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사진 속에 담긴 풍경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고, 실제로 그 절경을 눈으로 마주하고 싶어 마음이 설렜다.

체코의 숨은 보석 같은 명소로 알려진 이 전망대에 올라가 자연이 만들어낸 이 장엄한 곡선의 미학, 그리고 그 위에서 느껴질 청량한 공기와 고요함을 기대하며 우리는 길을 나섰다.




텔레틴(Teletín) 마을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걸으니 어렵지 않게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좁은 면적의 전망대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한 남자가 드론으로 이 멋진 경치를 담고 있다.

사진으로 찍는 것보다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보면 얼마나 더 실감 나고 아름다울까 싶다.

전망대까지는 어렵지 않게 올라왔지만 제대로 된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바위를 딛고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전망대에는 안전 난간이나 인공 구조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이 위험하고 어려워 조금 망설여졌지만 이런 장관을 또 언제 볼까 싶어 용기를 내어 내려가 보기로 했다.

절경을 놓칠 수 없었던 나는 남편의 손을 잡으며 조심조심 완벽한 위치까지 내려갔다.


드디어 사진으로 보던 그 절경을 맞이했다.

마이 전망대에서 본 풍경


가파른 절벽 끝자락에 선 나는, 마치 자연이 만든 자그마한 무대 위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블타바 강이 굽이치는 말굽 모양의 절경은 자연이 만든 거대한 곡선 앞에 서 있는 듯한 감동이었다.

절벽 아래로 굽어보며 느끼는 현기증 섞인 경외감이 함께 몰려온다.

블타바 강(Vltava River)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말없이 흐르고 깊게 파인 협곡을 따라, 마치 누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그려낸 거대한 말굽처럼, 블타바 강은 그 형태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답고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 낸 걸까?

신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또 다른 자연의 선물을 나는 보고 있다.


강물은 잔잔히 흐르고, 그 둘레를 감싸고 있는 숲은 봄 햇살을 받아 다양한 초록의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람은 나뭇잎 사이로 조용히 스치고, 그 적막한 평화로움 속에서 자연은 그저, 자연답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이 일었다.

눈앞의 광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어떤 압도적인 고요함 때문이었다.

마치 세상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한 정적이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블타바강은 정말 고요하고 깊다.

마치 흑진주의 목걸이로 사람의 목을 감싸고 있는 장관 앞에서 오랜 시간 조용히 흐르며 이 지형을 만들어낸 강과,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숲을 마주하니 나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은 늘 바쁘고 복잡하지만, Máj 전망대에 서 있는 그 찰나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은 한 줄로 흐르지만, 자연의 시간은 지금 보이는 말굽처럼 휘어진 곡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그 곡선 안에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삶의 여백과 고요함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슬라피 댐 건설 이전에는 Svatojánské proudy(성 요한의 급류)로 알려진 빠른 물살로 유명했으나 댐 건설로 인해 현재는 물살이 잔잔해 평화롭고 조용한 자연경관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높이 60m, 길이 260m가 되는 이 댐은 프라하의 홍수 방지를 위한 역할은 물론 식수 및 생활용수의 공급은 물론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자연에 둘러싼 수변에서 휴식을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에게 최고의 장소를 마련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지형이 깎여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한참을 머물러도 자리에서 벗어나기 싫었지만 몇 군데의 전망 포인트가 있어 또 그곳으로 향했다.

약 5분 정도 산길을 내려가면 나타나는데 높이는 점점 낮아져 메인 전망대의 느낌처럼 짜릿함은 줄지만 그래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절경은 변함이 없었다.

보헤미아 지방의 아름다운 절경은 끝이 없나 보다.


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점심식사를 한 후 전망대를 감싼 주변 숲 트레일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그 지점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는데 다행히 평지로 된 숲길이라 걷는 데는 편안했고 걷는 내내 블타바강을 보며 걸을 수 있어 경치도 무척 아름다웠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소나무와 이끼가 깔린 숲 길,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폭신한 흙길을 걷다 보면 도시의 소음 대신 나무들의 속삭임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한적한 트레일을 따라가다 보면 바위를 뚫어 놓은 터널도 두 개를 지나야 했고 숲 속에 놀고 있는 도마뱀들을 보는 재미에 트레일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주변의 다양한 꽃들과 나무들은 덤이다.

강 주변 숲 사이에 많은 별장들이 자주 보이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별장들이다.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오는 집들이다.

체코 대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시골에 별장들을 두고 대도시에서 생활하며 겪는 스트레스와 힘듦을 주말이나 휴가 때 이곳에 와서 풀고 간다고 한다.

예닉(Jenik)의 부모님도 프라하에 살고 계시지만 주말과 휴가에는 베히녜 마을 근처 숲 속에 멋진 별장에서 멋진 힐링을 하고 계신다.

이들이 자연에서 누리는 힐링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 아닐까 싶다.



오늘 밤에도 우리는 정원에 나와 예닉과 함께 많은 얘기를 하며 와인 두병을 비웠다.

아름다운 풍경 속 피부에 와닿는 서늘한 바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좋은 사람들...

문득 하늘을 보니 달빛에 가려 별이 희미한데 초승달이었던 달이 상현달을 지나 어느새 보름달이 되어간다.

우리는 보름달이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아 ~ 슬프다.



이 글은 2025년 5월 체코 보헤미아 지방을 여행하며 기록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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