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네츠(Monínec) 와 세들레츠-프르지체(Sedlec-Prčice)
한 달간 체코 남부 보헤미아지방의 시골 마을 '이스테브니체'에 머물고 있는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약 10km를 걸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다행히도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가 트레일 코스 안에 있어 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멋진 트레일 코스를 만난다.
나는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지만 그림 같은 시골 마을에 머물고 있는 이상 짧은 기간이나마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아름답고 멋진 봄 풍경을 더 접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남편은 걷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곳에서는 일찍 일어나 함께 걷고 있다.
굳이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주변 모두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보헤미아 지방이라 지도에 나와있는 트레일 코스 어떤 곳을 걸어도 아름다운 봄 경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장소, 숙소에서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Moninec Resort'로 가보기로 했다.
Moninec Resorts는 겨울에는 스키 강습과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만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한 훈련 장소로 트랙이 잘 만들어져 있어 가족들은 물론 경험이 많은 라이더들도 이곳에서 연습을 하는 곳이다.
산의 높은 곳까지 오르는 도로 양쪽에는 곧고 높게 솟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우거진 숲에 낸 조그만 길을 통과하다 보니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이 모두 하늘을 가려 대낮인데도 주변이 어둡고 오가는 차 없는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려니 약간은 무섭기도 하다.
짐승이라도 튀어나올 듯 한 분위기다.
군데군데 벌목을 해서 높이 쌓아놓은 흔적들도 보인다.
어둡고 한적한 숲 속 도로를 10여분 운전했을까.
드디어 내리막 끝에 다다르니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나타나고 조그마한 규모인데도 골프장이 있어 현지인들이 골프를 즐기고 있다.
대부분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골프를 하는데 여유 있어 보여 내 마음도 편해진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중장년 아니 요즘은 젊은이들이 많이 하는 골프가 이곳에서는 나이가 많은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특히 한국은 골프장을 대부분 산을 깎아 만드니 쉽지 않고 이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대도 많지만 이곳은 주변이 초원이니 평지에 골프장을 만드는 일은 한국에 비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넓은 땅이 많지만 골프장은 한국보다 많지 않다.
현재 체코에는 18홀 골프장이 약 80여 개 있는 반면 한국에는 18홀 골프장이 500여 곳이 넘는다고 하니 골프를 배우는 인구도, 골프장의 개수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한국이 많다.
골프장 이용요금도 체코의 경우 평일에는 60,000~70,000원 정도인걸 감안하면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한 편이다.
좁은 땅에서 비싼 가격으로 골프를 하는 한국과 비교가 되니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다.
사실 우리 부부도 십여 년 전까지 열심히 골프를 치러 다녔지만 이제는 다른 취미를 찾았다.
넓은 곳에서 평지와 구릉 사이를 오가며 즐기는 이들의 골프가 왠지 훨씬 더 여유 있고 편해 보인다.
골프장을 지나 다시 골목을 한참 올라가 마침내 'Moninec Resort' 스키 리조트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많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이곳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체코의 공휴일에는 젊은 이들은 물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그리고 동호회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는 걸 볼 수 있다.
워낙 도보 및 자전거를 위한 트레일이 잘 되어 있기도 하지만 몸을 힘들게 움직여 운동하는 취미를 선호하는 느낌도 든다.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동호회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체코의 시골 봄 풍경을 보고 싶어서 트레일 길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겨울이면 리프트를 이용해 정상까지 올라가지만 지금은 길을 따라 걸어 정상까지 올라간다. 스키어들은 정상에서 마을까지 스키를 타고 눈 위를 내려가지만 지금은 하얀 눈 대신 노란 민들레로 화려하다.
트레일 표시를 따라 어렵지 않게 산 정상까지 올라왔다.
과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체코의 봄 풍경은 멋지다.
체코 보헤미아 남부의 아름다운 평원과 집들, 호수들이 한눈에 보여 가슴이 확 트인다.
군데군데 모여있는 아름다운 집들, 주변의 푸른 초원과 호수... 게다가 파란 하늘이 어울리면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매일 보는 빼어난 경치지만 질리지 않고 볼수록 감탄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조형물이 아니라서,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라 그럴 것이다.
오로지 '자연'만이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다.
자연에 매혹된 채 한참을 쉬다가 내려와 세들레츠-프르치체(Sedlec-Prčice)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광장에 도착했는데 광장 주변이 적막하다.
시골 마을의 한적함은 어딜 가나 공통이다.
조금 전 스키장 정상에서 본 붉은색으로 덮여있던 초원이 궁금해 마을로 내려와 찾아다닌 끝에 드디어 만났다. 알고 보니 그건 '붉은 토끼풀'이 가득 덮인 초원이었다.
이렇게 넓게 펼쳐져 있는 붉은 토끼풀을 보는게 처음이라 무척 신기했다.
붉은 토끼풀을 이렇게나 많이 심는 이유는 이 식물이 유럽에서 소, 양, 염소 등의 초식 가축 사료로 널리 사용되기도 하고 붉은 토끼풀은 뿌리에 박테리아와 공생하여 대기 중 질소를 뿌리를 통해 토양에 공급해 화학 비료 없이도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어 친환경 농업에 유용해 심는 거라고 한다.
낯선 이곳에서 접하는 자연과 사람들 모두 우리에겐 새롭고 흥미롭다.
마치 눈앞에 펼쳐져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토끼풀의 바다를 보며, 바람에 살랑거리는 붉은 물결 속을 걷는 느낌이다.
이 순간, 나는 자연이 내게 들려주는 조용한 시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시의 마지막 행엔 이렇게 적혀 있는 듯하다.
"이 풍경은 너의 마음을 닮았다.
.... "
오늘은 체코의 봄 풍경을 진하게 만난 날이었다.
이 글은 2025년 5월 체코 보헤미아 지역을 여행하며 쓴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