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녀가 타오를 때 체코의 시골 마을엔 봄이 찾아온다.

추위와 어둠을 태우고 봄을 맞는 마녀 굽기 축제의 밤

by 담소

우리는 2025년 4월과 5월에 걸쳐 한 달간 체코의 보헤미아 시골 마을에 머물고 있다.

마을에 붙여진 마녀 태우기 행사 안내 포스터

4월 30일이 되면 체코의 마을 대부분에서는 '마녀 태우기(Pálení čarodějnic)'라는 행사를 한다.

우리가 묵고 있는 마을의 이스테브니체 광장에서도 헝겊으로 만든 마녀 인형을 들것에 태우고 사람들과 함께 이 마을 언덕에 있는 교회로 가서 화형식을 하는 행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도 낯선 행사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해가 저물 무렵, 마을 광장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두 함께 마녀 인형을 태운 들것을 끌고 언덕 위의 오래된 교회로 향한다.

이미 그곳엔 마녀를 기다리는 모닥불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장작더미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리고 모여든 주민들의 저마다 손에는 맥주잔이나 음식 한 접시가 들려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불꽃이 피어오르기 전의 설렘, 바람에 실려 오는 장작 냄새.
‘Seks’라는 이름의 지역 단체와 그 가족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모여 나누는 웃음과 따뜻한 대화 속에 밤은 천천히 깊어간다.

낯선 동양인들이 작은 시골 마을 축제에 나타나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우리에게 머문다.

예전 같았으면 당황스러운 마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웃으며 다가와 "어서 오세요"라고 말해준다.

낯섦을 낯설지 않게 만들어준 이들의 환대에 마음 한편이 모닥불처럼 따뜻해진다.

IMG_20250430_194141.jpg
IMG_20250430_202804.jpg
IMG_20250430_194209.jpg
IMG_20250430_194644.jpg


우리도 교회 마당 한쪽에 차려진 가게에서 맥주와 소시지를 사가지고 모닥불 곁으로 가서 불에 구워보기로 했다.

다행히 소시지를 구울 수 있도록 끝이 뾰족한 막대기를 많이 준비해 놓은 덕에 우리도 소시지를 끼워 장작불에 구워보았다.

맛있게 잘 구워진다.

주민들도 모닥불 주변에 모여 나무에 끼운 소시지를 불에 구우며 재밌게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주민들은 이런 행사를 이용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 대화를 하는 시간에 더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며 그리고 어디에서 묵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그들에게 한국에서 왔으며 한 달 동안 머물 예정이라고 하니 놀라워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라고 격려를 해준다.

나는 마녀 태우기 행사에 매년 참석하는지 묻자 이 행사는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기분 좋은 행사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축제를 한다고 한다.

덧붙여 마녀 사냥의 이름을 빌어 나쁜 것들을 물리치고 좋은 것들이 오라는 의미로 벌이는 행사라고 설명하면서 체코에서 마녀는 자연의 악한 기운, 겨울, 질병 등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여겨져 해마다 이런 악운을 몰아내고 봄을 환영하는 의미로 마녀 태우기 행사를 한다고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체코 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이 전통을 시대착오적이라며 비판하며 중단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이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아마도 이들은 과거의 부정적인 면을 없애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역사적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오래된 문화를 보존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과거로부터 이미 그들은 단절되어 있었고 과거 중세의 무고한 여성들이 희생당한 잔혹한 마녀 사냥이 아니라 지금은 이들의 삶에 긍정의 기운을 가져다주길 바라는 행사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도 이런 전통이 있는지 갑자기 묻는 바람에 문득 정월 대보름에 하는 '쥐불놀이'가 떠올라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었더니 신기해한다.

모두 불을 이용해 유해한 것들을 없애는 데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교회 언덕 모닥불 앞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보는데 오늘따라 정말 장관이다.

매일 숙소에서 보는 노을도 볼 때마다 감탄하며 보는데 이렇게 높은 언덕에서 지는 노을을 보니 더 아름답고 왠지 더 화려하다.

IMG_20250430_200429.jpg
IMG_20250430_203647.jpg

붉게 타오르는 장작불이 장작 뒤편으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꽤 잘 어울린다.

보면 볼수록 장관이다.

이런 화려한 노을을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어 마냥 넋 놓고 쳐다본다.


그런데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 한 곳 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교회 주변에서도 마을 구석구석에서도 또 다른 장작더미에 불이 활활 타오른다.

마을 여기저기서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 불을 피우고 있다.

끼리끼리 어울려 불을 피우고 서로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좋은 시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을이 타오르는 연기로 뿌옇게 보이는 것 같다.

굴뚝 연기인지 장작에서 타오르는 연기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다.

IMG_20250430_203424.jpg 마을에 자욱한 연기


어둠이 서서히 내려와 우리는 마을 주민들에게 고맙고 반가웠다는 인사를 건네며 헤어졌다.
비록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어색함과 낯섦은 쉽게 사라지고 금세 그들과 어울려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따뜻한 환대로 우리를 대해준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밀려든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삶에도 나쁜 기운은 사라지고 좋은 일들만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려왔다.

오늘 밤하늘의 북두칠성이 더욱 또렷하게 빛날 것만 같다.




이 글은 2025년 봄,

체코 여행 중 기록한 글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요한 숲, 따뜻한 불꽃 : 시골 별장에서 만난 평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