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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공원도 파리답다.

프랑스 북서부 여행 19 : 쏘 공원과 뱅센느 숲을 방문하다.

by 담소

우리는 여행지의 숙소를 정할 때에는 주변에 가까운 공원이 있는 곳을 찾아 선택을 한다.

이른 아침,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는 일은 우리의 여행에서 가장 힐링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며 소진된 기운을 충전시켜 주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파리에 온 이상 크고 아름다운 공원이 많기로 유명한 파리의 공원들을 방문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이번 여행 목록 중 중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오늘은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어김없이 새벽에 눈을 떴다.

날이 흐리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다.

우리는 서둘러 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파리 남부 지역 앙또니(Antony)에 있는 쏘 공원(Parc de Sceaux)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Antony church, district hall, street

지하철을 타고 쏘(Sceaux) 공원 역에 내렸다.

Sceaux 지역은 파리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깨끗하고 거리가 매우 잘 정돈되어 있으며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지역이다.

주택가들 사이에 있는 공원 주변은 매우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휴일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도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 잠시 걷자 공원 입구가 나온다.

쏘 공원(Parc de Sceaux)은 1922년 전 까지는 개인의 사유지였다.

이후 매물로 나온 이곳을 쏘(Sceaux)의 시장이 일반인들에게 공원을 공개하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지금은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되었다.

1987년에는 미국의 유명 가수 마돈나가 이 공원에서 최초로 공연을 했는데 그때 무려 1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드디어 공원에 입장하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크기에 압도당하고 예술적으로 정돈된 조경 솜씨에 입이 벌어진다.

규칙과 질서들의 향연이라고 할까?

게다가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었던가?

밖에서 볼 때는 공원의 크기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숨겨진 보물 장소를 발견한 듯 눈이 확 트인다.

그런데 이 넓은 공원에서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주변의 나무들이 맑은 물에 비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멋진 운하에 넋을 잃는다.

무려 1km가 되는 운하이다.

마치 초록색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한 잔디 그리고 자를 대고 자른 듯한 절묘하게 깎인 나무들...

자연적 생태공원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정성 들여 가꾼 인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프랑스가 자랑하는 그들의 독특한 양식의 조경이지 싶어 그들의 공원 운영에 감탄이 나왔다.



사람 없는 한적한 이 공원에서 거위만이 우리를 반긴다.

숙소에서 가지고 온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하려 하는데 나눠 먹자며 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온다.

오히려 거위라도 있어 반갑다.

쏘 공원에서 거위와 함께 아침식사를...

이곳은 원래 루이 14세의 총리였던 콜베르(Jean Baptist Colbert)의 소유지였으며 베르사유 궁전과 파리의 튈르리 정원을 설계했던 앙드레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정원의 디자인을 맡았다.

그러고 보니 베르사유 궁전과 튈르리 정원의 기하학적인 모양의 정원이 이 쏘 공원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귀여운 모양으로 둥글고 말쑥하게 깎인 나무들과 한치의 오차 없는 반듯한 라인들...

지극히 계획적인 디자인...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공원을 '작은 베르사유'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공원 안에 있는 커다란 성이 멀리서 봐도 꽤 웅장하다.

1597년 이곳에 성을 건설했고, 루이 14세 당시 총리였던 콜베르가 영토를 사들여 성을 확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의 몰락이 현실화되면서 이 성이 '국민의 재산 (Bien National)'으로 지정이 되어 몰수되었고 내부의 장식품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판매되기도 했다니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지금은 조각품들이 없지만 공원을 채웠던 조각품들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이 성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파리의 룩상부르크 공원과 튈르리 정원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미리 공부하고 갔더라면 룩상부르크 공원(Le Jardin du Luxembourg)과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을 방문했을 때 조각상들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오는 건데 그랬다. ㅠㅠ

현재 이 성에는 ‘일 드 프랑스 박물관 Musée de l’Île-de-France’이 들어서 있는데 파리의 미술 학교의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른 아침 방문이라 성 내부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외관만 둘러보고 와야 했다.



쏘 공원은 벚꽃이 만개하는 4월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5월, 아쉽게도 벚꽃이 다 지고 없다.

사실 쏘 공원의 벚꽃은 오래전 프랑스에 정착했던 일본인들이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벚꽃 나무들을 심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초록으로 물들여진 공원이지만 한 달 전만 해도 온통 핑크와 살구색으로 도배가 되었을 땐 얼마나 환하고 아름다웠을까 싶다.

또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들은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

화려하고 탐스런 벚꽃들이 피어있을 공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벚꽃 핀 쏘 공원

언젠가 다시 한번 화려한 쏘 공원을 꼭 방문하리라...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아름답고 평온한 공원에서 매일마다 아침 운동과 산책을 할 수 있는 파리지앵이 너무나 부럽다.

부러움과 아쉬움을 남기고 우린 공원에서 나와야 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 우리의 방문지는 뱅센느 숲(Bois de Vincennes)이다.

마지막 장소이기에 여유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숲을 걸어보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의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여행 중 우리가 경험하고 느꼈던 많은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싶은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뱅센느 숲(Bois de Vincennes)은 파리 동쪽에 있는 파리에서 가장 큰 숲이자 공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공원은 파리 면적의 1/10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공원의 반이 나무로 뒤덮여 있어 공원이라고 불리기보다는 보통 '뱅센느 숲'으로 불리고 있다.


공원을 향하는 중간에 우리는 거리의 벼룩시장을 구경하느라 버스에서 두 번이나 내렸다.

벼룩시장에 들러 물건을 구경하며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는 꽤 재밌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살았을 때에도 주말이 되면 동네의 가라지 세일이나 야드 세일(Garage Sale, Yard sale)을 방문하여 구경하고 물건을 사는 일이 일상에서의 즐거움이었다.

그때 산 그릇들과 찻잔, 그리고 소품들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용하면서 그때의 추억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파리의 벼룩시장은 도로에 열려 제법 규모도 크고 다양하다.

주인이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가지고 온 바게트와 맛있게 보이는 땅콩을 주전부리 거리로 샀다.

역시 꿀이 발라져 구워진 땅콩인데 맛나다.

땅콩 맛이 별 거랴 하지만 난 기억에 남는 견과류가 있다.

오래전 방문했던 에스토니아 탈린 구시가지의 길거리에서 사 먹었던 아몬드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는데 커피(?)와 계피맛이 첨가된 달콤한 맛이었다.

자꾸 손이가는 주전부리를 먹으며 구시가지의 밤거리를 한참이나 돌아다니던 그때의 추억도 덩달아 아름답다.

무엇으로 이런 맛을 내는지 묻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그런데 오늘 맛본 땅콩도 왠지 그때의 맛이 느껴져 새롭다.

항상 느끼지만 먹거리를 살 때와 옛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이 난 참 행복하다.

여행의 묘미이다.



벼룩시장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라기 보다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으면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가정에서 사용했거나 오래 간직하고 있던 독특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팔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주인의 집 내부와 분위기도 조금은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기르던 예쁜 화초와 꽃들도 많이 가지고 나왔다.

꽃을 좋아하는 파리지앵들이 한 다발씩 꽃들을 사 간다.

예술의 도시 파리답게 그림을 파는 곳도 많고 오래된 옷들과 골동품이 된 장신구들도 늘어놓고 팔고 있다.

한쪽에서는 아프리카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이상야릇한 탈들, 독특한 인형 등 소품들도 많이 늘어놓았는데 제법 부피와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들도 있다.

이런 물건들을 누가 사 갈까? 하는 의구심 드는 물건도 참 많다.

한국의 벼룩시장과 비교해 볼 때 물건을 사고파는 그들의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재밌는 벼룩시장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46번 버스로 뱅센느 숲(Bois de Vincennes)을 향했다.

이 숲은 우리가 파리 도착 후 이튿날 방문했던 숙소 근처의 볼로뉴 숲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그 크기는 런던 하이드 파크의 4배, 뉴욕 센트럴 파크의 3배에 이르는 크기라고 하니 어마어마 한 크기이다. 1900년 하계 올림픽 경기들이 대부분 이 뱅센느 숲에서 열렸고 안타깝게도 매혹적인 여성 스파이 '마타 하리'가 이곳에서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 숲은 왕가의 사냥터였고, 프랑스혁명 후에는 군대의 훈련장과 퍼레이드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Haussmann)은 이곳을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변모시켰다.

역시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은 파리와 시민들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으며 이를 충족시켜주려 많은 노력을 한 주요 인물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당시 정치적인 문제들로부터 시민들의 시선을 돌리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기획한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Jean-Charles Adolphe Alphand

이 뱅센느 숲을 조성할 때에도 역시 며칠 전 우리가 방문했던 볼로뉴 숲을 관여했던 기술자들이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정원을 디자인했던 Alphand는 뱅센느 공원을 조성하면서 그의 강한 의견을 피력했는데 "정원은 자연의 모방이 아닌, 형태와 색상 그리고 빛의 조합이 포함된 예술 작품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뱅센느 숲의 잔디밭, 나무 숲, 화단, 그리고 호수 등에서 그림 같은 풍경이 나오도록 지시했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뱅센느 숲 어딜 둘러봐도 매우 편안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 권력자들의 욕망을 담은 곳이 바로 정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예술가들에게는 그림의 소재가 되어 주었고 결국에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win-win인가? ㅎㅎ



뱅센느 숲을 산책하다 보니 커다란 호수가 많고 멋진 망루도 보인다.


보트들이 많이 정박되어 있는 걸 보니 빌려 탈 수도 있는지 호수 한가운데에서 가족이 여유롭게 타고 있다.

우리도 잠시 타보려고 했지만 보트의 주인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영업에는 관심이 없나 보다.

공원의 경관과 멋진 호수에 끌려 본인이 즐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뱅센느 호수를 가로지르며 배를 타보고 싶어 주인을 기다렸지만 우리의 마음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래도록 소식이 없다.

안타깝다. 계속 기다릴 수 없어 자리를 떴다.


한참 걷다 보니 공작들이 날개를 펼치고 우아하게 걷고 있다. 날 봐달란 듯이 말이다.

그 중의 백미는 하얀 공작이다.

태어나 처음 보게된 하얀 공작새...

'우아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자랑하며 날개를 활짝 펴고 심지어는 오만하게 걷는 저 움직임...

공작새도 파리답다!

이번 프랑스 여행의 끝무렵에 파리의 짙은 인상을 심어 주려나 보다.ㅎㅎ



공원 한쪽에선 '태국의 날'이라 하여 파리에 살고 있는 태국인들이 모여 잔치를 하고 있다.

함께 즐기는 모습이 참 정겹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같은 민족끼리 단합이 잘 된다고 하더니...

부스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음식을 구경하다가 파인애플을 샀다. 태국에서 먹는 진한 단 맛의 파인애플맛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달콤하다.

게다가 친절하게 맞아주는 그들의 환한 미소에 파인애플 맛이 더 달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하물며 우리는 이곳의 이방인인데..

기분이 좋고 흐뭇했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뱅센느 숲을 나와 공항으로 향하는 트램을 타고 가며 마지막 파리의 거리를 본다.

많은 날 들을 머물고 많은 장소를 방문했지만 떠날 때는 항상 아쉽다.


유럽에 가면 슬퍼진다고 했던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무슨 이유로 슬퍼진다고 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름답지만 내가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장소이기에, 자주 찾을 수 있도록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완전한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프랑스를 여행하며 아름다움의 극치를 경험했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마다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든 것들에 대해 아름다움의 비중을 더 배가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프랑스의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들렀던 유럽의 고풍스러운 성과 성당, 고택의 모습은 물론이려니와 거리의 모습, 심지어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 아름다웠다.

그래서 눈물이 자주 났다.

특히 오늘처럼 공원을 거닐며 느끼는 편안함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나의 힐러(healer)였다.

시각으로 주는 기쁨과 마음의 안정을 안겨주는 행복감, 한마디로 공짜 의사인셈이다.

놀랍게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심 없고 당연히 그러려니 했던 곳 그리고 심지어는 따분하고 심심한 곳으로 간주되던 곳이 지금은 나만의 의사가 된 것이다.

그 이유로 마음이 아플 때는 나는 지금도 공원으로 간다.


그래서 파리인들이 많이 부럽다.

고개만 돌리면 역사와 의미가 깊은, 아름답고 넓은 공원이 언제든지 찾아와 당신의 지친 마음과 몸을 기대라고 손 내밀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각박한 일상의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이런 곳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파리인들이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행복이 별 거랴 싶다.

오늘 하루 파리의 공원에서 자연과 머물렀던 마지막 하루는 참 평화로웠다. 행복했다.


예술의 중심은 프랑스 파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던 고갱의 말대로 진정한 아름다움은 파리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정작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번 프랑스 여행의 아름다운 흔적들이 내 마음에 계속 머물러 미소 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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