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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의 남과 여

프랑스 북서부 여행 15 : 도빌, 옹플뢰르, 에트르타를 방문하다.

by 담소

도빌(Deauville)로 가는 길!

도빌에 도착하기 전 캉(caen)에 있는 카르푸(Carrefour)에 들러 점심식사를 위해 샌드위치와 시드르(cidre) 그리고 빵을 조금 사기로 했다.

어느 나라를 방문하던 시장과 마트를 들러 구경하고 물건을 사는 일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롭고 재밌는 일 중 하나다. 한국에 있는 똑같은 물건도 왜 낯선 곳에서 보면 더 사고 싶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가는 곳마다 쇼핑 욕구를 제지하느라 힘이 들었다.



도빌(Deauville)에 도착했다.

도빌은 북부 노르망디 칼바도스(Calvados) 주에 있으며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고급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아니 바로 옆 나라 영국의 부유층도 휴가철엔 도빌에 와서 즐기고 간다고 한다.

휴가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마와 승마를 즐기며 사교를 하고 화려한 요트들로 바다가 수놓아지는 도시가 도빌이다.

하지만 지금은 휴가철이 아니라 조용하다.

도시는 썰렁했지만 아담하고 목조식 건물들이 풍기는 특유의 전원적인 분위기와 따뜻함으로 편안함이 전해진다.


도빌의 목조 건물

사실 도빌은 처음부터 이렇게 고급 휴양도시로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살기가 매우 열악한 마을이었으나 옆 동네 트루빌의 해안이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함께 이득을 보기 시작한 게 도빌이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끝 무렵부터 발전을 하기 시작하는데, 연합군들의 포상 휴가를 이곳으로 오면서부터 휴양지로 알려지고 많은 즐길거리가 생겨난 것이다.

유명한 디자이너 샤넬이 샤넬 부띠크를 연 최초의 도시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국제 행사가 열리면서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매년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1957년부터 시작된 도빌 미국 영화제가 열릴 때면 미국의 최고 스타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도빌에 오는데 그때마다 많은 팬들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보려고 도빌로 몰려들고 있다.

이렇듯 행사와 휴가철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이 해변이 지금은 적막감만 가득하다.

도빌의 모래사장

카메라 렌즈에 조차 담아질 수 없을 정도의 광활한 모래사장 때문인지 더 썰렁하고 한적하다.

통행을 할 수 없도록 금지된 오래된 목조 다리는 운치가 있지만 사람들 통행이 없는 탓에 더 쓸쓸함만 느끼게 한다.


도빌 해변에서 눈에 뜨이는 시설물은 레 플랑쉬(Le Planches, 나무로 된 길)와 해변 쉼터들이다.

레 플랑쉬를 걸으며 유명했던 감독들과 배우들의 이름이 쓰인 팻말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매력적인 마이클 더글러스(Michael Douglas) 그리고 나이 팔십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존경을 받고 있는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의 이름이 적힌 팻말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다.ㅎㅎ

지금은 이 많은 숙소들이 모두 굳게 닫혀있지만 휴가철엔 이곳을 예약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일렬로 지어져 있는 넓지 않은 좁은 쉼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며 지낼 걸 생각하면 지금처럼 사람 없는 이 광활한 도빌 해변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모래사장을 걷다 보니 배도 고프고 점심 생각이 난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도빌로 오는 길에 카르푸에 들러 사온 샌드위치.

도빌의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를 떠올린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바다와 해변이 배경이 되었던 영화.

독특한 영상과 편집, 그리고 매우 단조롭지만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보사노바풍의 신비로운 멜로디가 어우러져 오래 기억하고 있는 영화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남녀의 먹먹한 사랑, 그리고 서로에 대한 절실한 마음과 애를 태우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소위 밀당이라고 할까? 밀려오고 밀려 나가는 저 파도의 움직임처럼 말이다.

영화 ost의 독특한 선율 배경처럼 도빌의 바다는 여전히 잔잔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닷가이자 낭만적인 장소인 건 분명하다.

영화 남과 여


도빌의 비치에서 휴식을 취한 후 옹플뢰르(Honfleur)로 향했다.

5월의 프랑스 시골길 운전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마치 숲 속을 운전하는 기분을 들게 하는 시골길은 간간히 따스한 햇빛과 함께 내 마음까지 초록으로 물들여 시골길 소박한 정서에 흠뻑 빠지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골길을 약 30~40분 운전하고 나면 더 아름다운 마을 옹플뢰르가 나온다.

옹플뢰르 역시 노르망디 지방 칼바도스(Calvados) 주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칼바도스는 이미 우리에게 술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노르망디의 칼바도스 지방에서 재배되는 사과를 주재료로 만든 브랜디가 바로 칼바도스이다.

눈에 보이는 빵집 어디에 들어가도 사과로 만든 파이가 있듯 이 지방에는 사과로 만든 음료를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또한 노르망디에서는 포도 경작이 어려워 대신 사과를 많이 재배를 했고 이를 발효시켜 만든 음료인 시드르가 유명하고 정말 맛있다.

우리가 캉(Caen)을 지날 때에는 카르푸(Carrefour)에 들러 자그마치 한 병의 양이 3리터나 되는 시드르(cider)를 샀으니 말이다. ㅎㅎ

한국에 와서 지내면서도 프랑스에서 저렴하게 사 마시던 시드르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옹플뢰르(Honfleur)는 항구도시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항구로서의 중요성을 르아브르에 빼앗겼지만 말이다.

나는 항구도시를 떠올릴 때면 조금은 투박하고 남성적인 인상이 먼저 스친다.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가 스멀스멀 코에 다가오고 어부들의 고깃배가 늘어서 있는 조금은 분주한 분위기를 연상시키곤 했지만 오늘 방문한 옹플뢰르는 내가 갖고 있는 항구도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통 주택이 보존되고 있는 고풍스러운 마을이었으며 특히 항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빈티지한 목조건물들로 항구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아담한 마을이며 지극히 여성적인 분위기의 마을이라는 생각이다.

방금 전에 들렀던 도빌과는 가까이 있는 마을지만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도빌이 부자들의 사교 도시, 성숙한 남녀의 사랑처라면 옹플뢰르는 자그마한 항구도시의 소박함을 지니고 있는 소녀와 같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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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플뢰르 마을 거리와 광장


바닷물을 끼고 빙 둘러있는 주변은 고깃배 대신 멋진 요트들이 있고 알록달록 다양한 색들로 차양을 친 카페들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있다.

높지 않은 갈색톤의 목조주택은 고풍스러움을 자아내고 카페엔 여행객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여유 있고 편안한 모습으로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이런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여성스럽고 소담스러운 마을을 방문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남편은 무덤덤하다. 그저 옆에서 장단만 맞춰준다.

이 마을이 남편 취향과는 거리가 있나 보다.ㅎㅎ



11세기에 세워진 옹플뢰르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 동안 번갈아가며 여러 번 점령당했지만 예술가들과 작가들의 사랑을 받는 휴양지가 되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에릭 사티(Éric Alfred Leslie Satie)'의 고향이기도 하다.

에릭 사티

잠시 항구 주변에 걸터앉아 거리와 주변의 분위기를 느껴본다. 아담하지만 매우 운치 있는 항구다.

운치를 느끼며 앉아 있는데 에릭 사티의 ' 짐노페디(Gymnopedie)'의 선율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진다.

멜로디가 옹플뢰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짐노페디'란 그리스 말로 '벌거벗은 소년'이란 뜻인데 축제에서 벌거벗은 소년들이 춤을 추는 몽환적인 장면을 의미하고 있다.

신비스럽기도 하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 곡은 맑고 화려한 날이 아닌 흐리고 어두운 날 그리고 내 기분이 조금은 우울한 날에 자주 듣곤 했던 곡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박하고 아늑한 항구에 앉아서 그 멜로디를 떠올리고 있다.ㅎㅎㅎ

음악은 장소에 따라 저절로 동화되나 보다.

무척 멜랑콜리하던 선율이 오늘은 부드럽고 평화스럽기만 하니 말이다.



한가롭고 조용한 마을 골목을 걷고 있는데 외관이 아름다운 성당이 보인다.

생 카트린(Saint Catherine church) 성당이다.

마을 골목에는 목조로 된 건물들이 대부분인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 바로 생 카트린 성당이었다.

꾸밈이 없고 단순하지만 외관이 독특한 아름다운 성당이다.

이 성당은 프랑스에서 목조로 된 가장 큰 종교 건축물로 배 두 개를 뒤집어 놓은 독특한 모양이다.

옹플뢰르가 항구도시인 탓에 배를 뒤집어 놓은 형태로 표현한 걸까?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ㅎㅎ

생 카트린 교회. 우측그림은 모네의 '생 카트린 '

특이한 점은 예배당과 종탑이 서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번개가 칠 때를 대비해 높이가 더 높은 종탑에 번개를 맞더라도 예배당은 보호해야 한다는 그들의 현명함이다. 참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다.


작고 조용한 마을 한편에 멋진 성당이 있다는 게 흥미로워 내부에 들어가 보았더니 자그맣고 아기자기한 소품장식들과 소박한 샹들리에로 실내를 밝히고 있다. 뒤쪽 벽엔 파이프 오르간도 보인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나무로 만든 배가 뒤집혀 있는 듯 보이는데 차가운 대리석 천장보다는 훨씬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 마음도 차분해진다.


생 카트린 교회 내부


문득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골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과 지인들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으며 환한 미소로 걸어 나오는 신랑 신부의 모습.

번잡함 대신 단순함이, 흥미로움 대신 성스러움이, 형식적인 치레가 아닌 진지하고 진심으로 치러지는 그런 결혼식이 그립다.

결혼을 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는 지금도 이런 결혼식 장면만 보면 설렌다.

우리의 리마인드 웨딩도 이런 곳에서??? ㅎㅎ

sticker sticker



조용하고 아늑한 마을 옹플뢰르를 떠나 에트르타(Etretat)로 출발했다.

이곳은 루팡의 소설 '기암성'의 배경이 되는 곳이며 모파상이 소설을 쓰곤 했던 마을이라고 한다.

우리는 마을 한쪽에 주차를 어렵게 하고 해변의 전망대를 향해 올랐다.

멀게만 보이던 전망대는 생각보다 오르기 쉬웠고 막상 올라가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멀다고 포기했으면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바다색, 잔잔하게 출렁이는 파도, 그리고 마치 거대한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넣은 채 묵묵히 서있는 듯 보이는 코끼리 모양의 바위..

에트르타는 운무가 많은 지역이라 순식간에 주변을 덮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날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눈이 부시도록 청명한 날씨로 우리를 반겼고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 그리고 파릇한 잔디까지 어울려 마치 한 폭의 수채와 같은 광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에트르타의 절벽(모네)

이런 자연의 기묘하고 신비한 솜씨에 많은 예술가들이 반했나 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이 광경을 인간의 솜씨로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자연과 인간의 솜씨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오늘 나에게 선물하는 에트르타의 손대지 않은 장관은 어떤 그림과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화가들이 에트르타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켰지만 나는 그중에서 모네가 그린 에트르타가 떠오른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니 바람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저절로 몸이 날아갈 듯~~~

절벽엔 안전장치도 없는데.... 아찔하다.

되레 남편은 가슴이 뻥 뚫린다며 매우 좋아한다.


방금 전에 다녀왔던 옹플뢰르 마을의 인상을 여성스러움에 비유한다면 에트르타는 남성적인 마을이라는 느낌이 든다.

강한 바람과 드넓은 바다 그리고 우뚝 서있는 저 코끼리 모양의 바위들까지 모두 다부지고 굳건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방문한 도시들마다 특색이 강하다.

도빌에서는 영화 '남과 여'를 떠올리며 낭만적인 바다를 산책했고 옹플뢰르에서는 아늑하고 포근한 항구와 골목길을 산책하며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렸으며 에트르타에서는 거친 바람과 푸른 바다 그리고 거대한 코끼리 바위를 보며 건장한 남성의 분위기를 느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노르망디의 마을들마다 독특하게도 남성과 여성의 분위기를 물씬 느낀 색다른 여행이었다.


오후 4시, 이제 에트르타를 떠나 오늘 최종 목적지 샤르트르(Chartres)로 향해야 한다.

늦은 오후 시간에 출발하는 이유는 샤르트르의 밤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마을 전체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수놓아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빛의 도시가 된다.

샤르트르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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