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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Chartres)! 중세에 첨단을 입히다.

프랑스 북서부 여행 16 : 샤르트르 마을의 빛 축제를 경험하다

by 담소

프랑스 서쪽 끝에 위치한 노르망디의 여행을 마친 우리 부부는 이제부터 파리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파리로 돌아가는 여행길 첫 번째 방문지가 '샤르트르(Chartres)'이다.

우리가 이 도시를 저녁에 방문한 이유는 밤이 되면 마을 이곳저곳에서 아름답고 찬란한 불빛이 수놓아지는 샤르트르의 화려한 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는 밤 12시가 다 되어 가도록 밤늦게까지 마을 여기저기 불빛 쇼( lumieres)를 찾아다녔더니 나중엔 몸이 많이 지치기도 했다.



샤르트르(Chartres)는 프랑스 외르에루아르(Eure-et-Loir)주의 주도로 센 강의 지류인 외르(Eure) 강에 접하고 있으며 '샤르트르'라는 지명은 로마제국 시대의 갈리아 족 중 카르누테스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은 ‘서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샤르트르 성당’이 있어 더 유명해진 마을이다. 이 대성당만을 보러 이곳까지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는 저녁 6시가 다 될 즈음 샤르트르에 도착했다.


샤르트르 마을 골목과 대성당


샤르트르가 지방의 주도(主都)라고 하는데 마을이 참 아담하다.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불빛 쇼가 시작되기 전 서둘러 마을 골목을 돌아보니 이곳은 아직도 중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중세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거리의 품격을 높여주는 건물들이 이질감을 주지 않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샤르트르의 건물은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프랑스풍의 건물들이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이 전형성이 나에게 편안하게 다가온다.

번잡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건물 하나하나가 고급스러운 느낌은 물론 중후한 멋까지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고풍스런 분위기의 매혹적인 마을이다.


샤르트르를 가로질러 흐르는 외르강과 골목

특히 도심을 따라 주택들 사이로 운치 있는 외르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어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니 한층 더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기억될 것 같다.




가는 곳곳 매력이 흘러 내 마음을 훔친 중세 분위기의 마을 산책을 즐긴 후 우리는 이 마을 샤르트르를 대표하는 '샤르트르 대성당(Cathédrale Notre Dame de Chartres)'으로 향했다.

역시 샤르트르의 상징답다.

한눈에 보아도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파사드, 양 쪽의 높이 솟은 뾰족한 첨탑, 그리고 성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저 섬세한 장식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지닌 성당인데 며칠 전 보았던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샤르트르 노르트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 Dame de Chartres)의 왕의 문 입구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오른쪽)


샤르트르 대성당은 1145년에 건축된 성당인데 1194년 대화재로 성당 서쪽 부분이 소실되면서 1194년부터 1220년까지 30년에 걸쳐서 재건축되었다.

서로 다른 양식의 탑이 양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여느 성당과는 다른 독특함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과 고딕 양식의 탑이 서로 어울려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픈 염원을 담아 높이 세운 고딕 첨탑이 무척 아름답다.

인간이 시각적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은 인간의 정신적 표현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에 고개를 다시 끄덕이며 두 탑을 보고 있는데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 좀 더 화려하게 장식된 왼쪽 탑에 눈길이 더 간다.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높이 오르려 했는지 첨탑의 끝을 보기도 어렵다.


샤르트르 주변에는 높은 건물과 산이 없어 그런지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선 대성당의 첨탑은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샤르트르를 대표하는 건축물답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샤르트르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 성당의 백미인 장미 창을 볼 수 없었다.

'푸른 성모 또는 프랑스의 장미 창'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무려 5m나 된다고 한다.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장미 창을 보면서 샤르트르에서도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원했었는데.....

성당의 내부를 직접 볼 수 없어서 정말 아쉬웠다



성당의 광장을 둘러보니 광장 주변의 건물들에서 하나둘씩 실내등이 켜지며 저녁시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불빛 쇼가 시작되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대성당 광장 주변에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레스토랑 내부는 만원이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저녁 여덟시에 시작되는 불빛 쇼를 보기 위해 서둘러 식사를 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도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워낙 바쁜 시간이라 그런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웨이터에게 우리의 바쁜 사정을 이야기하니 요구를 선뜻 받아들여주는 웨이터가 고맙다.

하지만 하필 저녁 메뉴로 코스 요리를 선택한 바람에 웨이터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마음은 바쁜 데 음식은 왜 그리 맛있었는지...

마지막에 나온 앙증맞게 생긴 디저트도 남김없이 모두 먹었다.

심지어는 디저트로 제공되는 차(tea)의 종류가 수십 가지나 된다.

이 모든 걸 어떻게 선택해서 마시라는 건지...ㅎㅎ

결국 이러는 바람에 마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관람차를 놓쳤지만 말이다.

뭐 어떠랴! 든든히 배불리 먹은 기운과 튼튼한 두 다리가 있는데...ㅎㅎ



드디어 시간이 되자 대성당에서 불빛 쇼가 시작되었다.

주변은 깜깜해지고 대신 아름다운 배경 음악과 함께 뛰어난 영상미가 우리를 압도했다.

종교적인 이야기를 테마로 구성되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어떤 레이저 쇼나 루미나리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차원으로 독특한 감동을 주었다.

고풍스러운 도시에서 이렇게 화려하고 정교한 루미나리에를 볼 수 있다니... 하물며 무료다.

.


아!

나는 그저 침묵하며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나의 오감을 열어놓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훌륭한 영상미를 표현하는 기술에 감탄했고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감동했다.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색들을 입히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한 순간도 눈을 딴 곳에 돌릴 수 없을 정도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은 매번 다른 색들과 디자인으로 우리에게 선을 보였는데 무려 20분이 넘는 동안 꼼짝 않고 부동의 자세로 우리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나중에 일어날 땐 앉아있던 엉덩이가 아플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윽고 마지막 영상이 올라오며 함께 배경에 깔린 'Time to say goodbye' 노래는 나에게 또 눈물을 맛보게 했다.

노래 가사에서 나오는 '우연히 만난 당신이라는 빛을 제 마음에 담겠다'라는 표현처럼 나는 영원히 샤르트르의 이 불빛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게 될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진한 여운을 남긴 대성당 불빛 쇼에 매료되어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매우 힘들었지만 또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불빛 쇼를 보기 위해 부지런히 찾아 나서야 했다.


역시 샤르트르 대성당 가까이에 있는 샤르트르의 미술관에서도 화려한 불빛쇼는 펼쳐지고 있었다.

샤르트르 미술관에서의 불빛 쇼
샤르트르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루미나리에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불빛 쇼에 넋 놓고 바라보는데 끝도 없이 새로운 장면들이 선을 보인다. 이곳에서도 우리의 두 발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미련은 남지만 화려한 불빛 쇼를 뒤로한 채 새로운 불빛 쇼를 관람하기 위해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 찾아다니니 정말 마을 이곳저곳에서 화려한 불빛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외롭게(?), 쓸쓸히 화려한 쇼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었다.

어서 와서 화려하고 멋진 나를 보란 말도 없고 나를 보고 감동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 이 멋진 불빛들이 오히려 너무 외로울까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샤르트르에서는 이런 예술행위들이 매일 밤마다 이루어진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외르강에 서있는 건물의 벽
외르강의 돌다리

우리가 저녁 무렵 보았던 외르강의 돌다리에도 선명하게 채색이 되어 우리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데 외르강과 함께 자리한 주택의 벽에도 아름다운 그림과 색들이 뒤덮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낮에는 채소를 파는 시장광장에도 밤에는 초록과 붉은색으로 조명을 바꿔가며 어색함 없는 세련된 변신을 하고 있었다.

샤르트르 채소 시장



마을 성당의 창문에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아름답게 조명을 비추니 그야말로 성당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걸 본다. 성당이 이렇게나 아늑할 수 있나 싶다.

이런 성당에서라면 나의 고통과 어려움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들어가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마을의 성당뿐 아니라 카페나 극장 등 어딜 둘러봐도 온통 다양한 색들이 어우러져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다.

낮에는 한낱 차가운 돌들과 콘크리트로 된 벽들이 밤에는 따뜻한 색상들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변해 샤르트르의 밤을 낭만적이고 포근한 밤으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사실 밤이 되니 가끔씩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정신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추위는 어디로 갔는지 몸이 더워진다.

한 곳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남편과 함께 뛰어다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시간은 왜 그리 빨리 지나가던지......



이러다 보니 우리가 샤르트르를 떠나야 할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고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외롭게 아름다운 자태로 빛을 발하는 샤르트르의 불빛을 떼어놓고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불빛 쇼가 진행되는 장소마다 편안히 앉아 우리에게 보여주는 화려함과 우아함들을 빼놓지 않고 오래도록 모두 지켜보며 가슴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샤르트르는 파리에서 멀지 않다.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파리의 화려하고 세련된 불빛도 좋지만 이렇게 조용하고 깜깜한 마을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지는 불빛 쇼를 보는 것도 매우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우리에게 샤르트르는 낮과 밤이 다른 도시였다.

낮에는 중후하고 고풍스러웠던 샤르트르가 밤이 되면 자신의 몸 색깔을 바꿔 화려함과 세련미를 갖춘 색다른 분위기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마치 카멜레온이 된 듯 이 마을에 어둠이 오면 화려한 불빛과 색으로 마을을 바꿔놓는 오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샤르트르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채 엄숙함과 황홀함 사이를 오가며 새벽이 올 때까지 머물러야 했다.





아래 동영상을 함께 즐겨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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