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1주일간의 삶이 남았다면 나는 생 말로(Saint-Malo)에서 나의 인생을 보낼 것이다."
-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어제 늦은 밤 우리 부부가 몽생 미셸을 출발해 생 말로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을 막 넘긴 시각이었다.
아무리 여행이라지만 오후에 루앙을 방문하고 난 후 연달아 저녁 무렵 몽생 미셸을 방문한 터라 낯선 나라의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조금씩 피곤함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일어날 시간이 되면 언제 피곤함이 있었냐는 듯 금세 몸이 가벼워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서 궁금했던 사실들에 대한 확인과 직접 보는 반가움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경이로움과 자연과 인간의 합작물로 빚어진 보석 같은 창조물을 보며 감동을 받아 그런 것 같다.
생 말로 숙소 주변 풍경
오늘도 네댓 시간의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몸과 마음이 가볍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주변을 보니 우리가 이런 마을, 이런 주택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새롭다.
주택 주변엔 나무와 풀들이 많아 집이 마치 수풀 가운데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돌담과 나무들이 개인의 소유지를 구분 짓고 그 안에서는 제 각각 다양한 나무들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아마도 오월이 지나고 유월이 되면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로 가득할 것만 같은 아늑한 정원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 시간에 내가 느끼는 생 말로 5월의 아침은 조금은 싸늘하고 주위는 고요하다.
모처럼(?) 남편이 내려준 따뜻한 커피에 몸이 녹는다.
다시 새로운 기분과 기운으로 생 말로의 구시가지를 향해 출발했다.
생 말로(Saint-Malo)는 켈트(Celts)족의 일파인 갈리아인(Gauls)들이 살았던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한 도시이다.
과거 ‘바다 옆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아르모니카(Armonica)'라는 이름으로도 불린 이곳은 푸른 들판과 안개 낀 바다, 조용하고 한가한 마을 그리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항구와 섬들,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다.
생 말로는 6세기 이곳에 수도원을 지었던 수도사의 이름을 따서 '생 말로(Saint Malo)'라는 마을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생 말로 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프랑스에도, 브르타뉴에도 속하지 않은 '생 말로 인'이라며 자치 독립 공화국을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브르타뉴 인들은 자체적인 왕국을 세우고 켈트인으로서 주변의 프랑스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지녔으며 프랑크 왕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긴 하였으나 한때 독립국으로 존재하며 프랑스 왕실과 별개로 지위가 유지된 지역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와 협상해 프랑스에서 브르타뉴를 분리 독립시키자는 말도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내가 생 말로를 오고 싶어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중학교 시절, 학생들 단체로 극장에 가서 보았던 " 라스트 콘서트" 영화 장면들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몇 번 이나 보았던 영화였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과 함께 연인이 바닷가를 걷고 있는 장면...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도, 남 녀 주인공의 겨울(?) 해변의 산책 장면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남녀가 걸어가던 쓸쓸하고 적막한 해변의 풍경이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야 그 장소에 가게 되었다. 40여 년 전 사춘기 소녀였던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설레고 있는 아름다운 바닷가를 말이다.
영화 The Last Concert, Stella'의 한 장면'
생말로 해변으로 가는 길, 우리는 중간에 가던 길을 멈추고 아름다운 고성 앞에서 차를 잠시 멈춰야 했다.
이 성은 '솔리도르 타워(Solidor Tower)'라고 불리는 성으로 1369년에서 1382년 사이에 브르타뉴 공작 존 5세(Jean IV)에 의해 지어진 타워이다.
솔리도르 타워와 주변 풍경
수세기를 걸쳐 오는 동안 이 탑은 군사적인 관심을 잃고 감옥이 되었다가 지금은 케이프 혼(Cape Horn)을 탐험하는 브르타뉴 선원들을 기념하는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잠시 들러보고 싶어 가까이 가 보았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타워 주변을 돌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지만 기미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타워를 관람하는 대신 앞 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
생말로 해변 근처 마을
돌담벼락 키작은 꽃들이 자라고 있는 바닷가 마을의 아침 산책은 고요하다.
'도시'라고 하기보다 '마을'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너무도 앙증맞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마을엔 독특한 모양으로 지어진 주택들과 나무들로 이국적인 풍경을 풍겼고 주변엔 가지각색의 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 자신들의 색과 모양을 뽐내고 있다.
바닷가에는 이 곳이 휴양지임을 말해주듯 멋진 요트들이 줄지어 있다.
켈트족의 후예들이 번성시킨 도시, 용감한 갈리아인들이 거주하면서 해적행위를 했지만 프랑스 정부도 이들을 어쩔 수 없이 용인해주었던 곳이 생 말로이다.
프랑스인은 물론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한번 방문을 한 후엔 바로 사랑에 빠져버린다는 도시가 바로 생 말로라고 들었다.
생 말로 바닷가에 다다르자 낯선 이들은 거부라도 하겠다는 듯, 육중하고 견고한 성(생 뱅상 Saint Vincent)이 굳게 버티고 서있다.
성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요새화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생 말로의 구시가지는 난공불락의 마을이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12세기부터 축조가 된 이 성은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그런지 어느 다른 성벽보다 매우 단단히 지은 것처럼 보인다. 다행히도 도시를 둘러싼 성벽과 요새는 크게 훼손됨 없이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었다.
마치 성벽 안에는 신비스럽고 소중한 보물이라도 묻혀있는 듯붉고 단단하게 지어진 견고한 성이 무척이나 인상 깊다.
바다 옆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지리학적 불리한 위치로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탓일까?
이 영국해협을 건너면 바로 영국 땅인데 요새와 성벽을 보니 생말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생 말로 사람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생말로 사람들은 '나는 프랑스인이 아닌 생말로 인이다.'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고 다닌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도, 브르타뉴 사람도 아니고 오직 생-말로 사람이다(Ni Francais ni Breton, mais Malouin suis)"라고 말이다.
생 말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성곽을 따라 걸어야 한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 구시가지를 한 바퀴 돌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한적한 생말로의 성곽을 걷기 시작했다.
관광객 아닌 갈매기들이 성벽 위에 앉아 바다를 관망하고 있다. 마치 요새를 지키는 주인처럼 말이다.
생 말로의 성곽
상쾌한 아침 바람과 시원한 바다 바람이 함께 몰려온다.
성벽 위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으려니 탁 트인 시야에 넓고 푸른 바다. 그리고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몇 년 전 방문했던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성벽길을 걸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이 좀 더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면 오늘 걷는 생말로의 성벽은 다소 거칠고 강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해적들의 마을이었던 탓일까? 아님. 전쟁을 많이 겪고 힘든 여정의 흔적이 남아서일까?
Robert Surcouf의 동상
걷다 보니 해적 로버트 서코프(Robert Surcouf)의 동상을 만났다.
생 말로의 해적 행위들이 프랑스 정부에게는 이익을 안겨주었고 그 이유로 프랑스 정부에서는 이들의 행위를 눈감아 주었다고 하니 웃프다. 바로 그 주인공이 바로 로버트 서코프(Robert Surcouf)이다.
그런데 생말로 사람들은 그들의 선조가 해적이라는 말에 매우 불편해한다고 한다. 그들은 생말로를 지키는 '바다의 전사들'로 불리기를 원한다.
생 말로는 안개로 유명한 마을인데 오늘은 다행히 안개가 많지 않아 바다 멀리 떠있는 요트까지 보인다. 어떤 날은 한 치 앞도 분간이 안될 정도로 안개가 짙게 낀다던데 안개로 덮인 생 말로도 꽤나 운치 있을 것 같다.
바다에 떠있는 요트를 보니 언젠가 우리도 요트를 타고 멀리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아름다운 바다에서라면 한참 동안이라도 머물 수 있을 것만 같다.
성곽 산책을 마치고 해변을 걸어보기로 했다.
봉 수크르 해변(Plage de Bon Secours)이다.
라스트 콘서트의 배경이 되었던 생 말로 해변, 영화 주인공 스텔라(Stella)와 리처드(Richard)가 걷던 해변...
생 말로 해변
아침 바다는 잔잔하다.
조수 간만의 차가 제법 큰 바다라고 하는데 지금은 썰물이 되어 바다 수영장이 보이고 저 멀리 그랑 베 섬까지 걸어갈 수가 있다.
'그랑베 섬(Grand Be)',
나폴레옹을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를 사랑했던 프랑스 정치가이자 작가였던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이 묻힌 섬이다.
그는 물과 바람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이곳 그랑베 섬에 묻혀있다.
생 말로 바다 수영장
그랑 베 섬 앞에는 밀물 때 물이 몰려와 물을 채우고 썰물이 되면 수영장이 만들어지는 천연 해수풀장이 있다.
지금은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없어 물만 가득하지만 곧 날이 따뜻해지면 수영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겠지?
당장이라도 저곳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오늘처럼 쌀쌀한 날엔 무리다.ㅠㅠ
대신 바다엔 사람들이 카약을 즐기고 있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곳곳에 드러난 웅덩이들, 바위에 붙어있는 하얀 조개들, 고운 모래사장들을 걷다 보니 마치 낙원에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바닷물이 다시 밀려오기 전에 수영장을 나와야겠지?
낙원이 공포의 지옥이 되기 전에...
조금만 머뭇거리다간 사방으로 바다에 둘러싸여 몇 시간을 보내야 하는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셔널 요새(Fort National)와 해안 성벽
멀리 바위섬에 내셔널 요새(Fort National)가 보인다.
루이 14세와 보방(Vauban)이 생 말로 항을 보호하기 위해 1608년에 지은 것이다.
이곳은 등대가 있는 곳이기도 했으며 공개처형을 위한 교수대가 세워진 장소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군이 생 말로에 머무는 동안 죄수들과 인질들을 가둬 놓기도 했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부서지기도 했으나 다시 원상 복귀되었다고 한다.
지도상에는 요새 앞 모양이 마치 부채꼴처럼 생겼다 해서 부채 해변(Plage de l'Eventail)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은 썰물이 되어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해변과 풍경을 볼 수 있지만 밀물이 되어 가득 찬 바다를 볼 때에는 또 다른 분위기와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썰물과 밀물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바다가 될 것만 같다.
한참 동안 성벽과 해안을 산책하니 몸이 점점 추위를 느낀다.
우리는 먼저 성곽 안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기로 했다.
외관은 오래된 건물로 보여 들어왔는데 내부는 아주 세련된 장식으로 우릴 반긴다. 반전이다.
카페의 손님은 우리뿐이다.
누텔라가 얹힌 크레페와 시더(cidre), 그리고 커피를 주문했다.
역시 달콤하고 따뜻한 음식이 입으로 들어오니 몸과 마음이 릴랙스 해진다.
카페 안에서 내려다본 성 내부의 거리는 마치 미로처럼 좁은 골목이었고 집들과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하지만 이곳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거의 파괴가 되었다가 이후에 복원된 마을이라고 하니 많이 안타깝다.
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그럴까? 건물 대부분이 벽돌로 단단하게 지어져 있다.
어제 보았던 루앙 거리의 건물들은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었는데 ..
이 곳은 무채색의 벽돌 때문인지 조금은 삭막하기도 하다. ...지형의 영향 때문인가?
생 말로 성곽 안의 거리
하지만 거리 곳곳엔 무섭게 생긴 해적, 우스꽝스러운 해적 등 다양한 해적의 모습이 담긴 피겨(figure)들을 모아놓은 기념품 가게들이 많아 그나마 거리의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해적과 관련된 상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 걸 보니 이 도시가 과거 해적의 도시였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해적이 살았던 도시에서 낭만을 찾을수 있을까?
해적과 환상?
의미들이 동떨어진 낱말들같지만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 했던가?
그래서 남은 여생을 생 말로에서 보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자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도시, 생 말로가 되었나 보다.
많은 외침들로 인해 잦은 전투를 치렀으며 바다는 해적들의 본거지였고 또 2차 세계대전을 힘들게 겪은 도시, 생 말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힘들었던 역사를 기반으로 지금은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마을로 변해버린 것이다.
내게 있어 생 말로는 지극히 낭만적인 도시이면서 한편으론 극도로 현실적인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라스트 콘서트의 아름다운 선율을 자주 들으며 생 말로의 바닷가 해변을 상상하던 그 소녀는 이제 오십이 넘은 나이로 이곳에 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