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어슴푸레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마치 산처럼 보이는 아니, 성처럼도 보이는 실루엣은 나를 벌써 끝없는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해 질 녘 즈음 도착해 만난 그림과 같은 실체는 드넓은 바다에 홀로 자리한 채 주변을 감도는 신성한 기운과 함께 신비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해 저물고 있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성처럼 보이는 정체는 바로 중세에 지어진 웅장한 수도원 '몽생 미셸 수도원(Abbaye du Mont-Saint-Michel)'이다.
'바다의 보석'이라고도 불린다는 수도원이다.
아~~
감탄과 함께 감동이 훅~ 하고 밀려온다. 여지없이 그 뒤에 이어 나타나는 현상은 흐르는 눈물이다.
주체할 수 없다.
이 수도원 외관의 실루엣을 보는 순간 성스러움과 경외감이 느껴지고 동시에 내 몸 안에서는 전율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오고 있었다.
이런걸 뭐라 표현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이 순간의 경이로움을 느끼기만 할 뿐....
아직은 인간의 이성적인 논리를 더 신뢰하고 논리에 더 의지하는 나에게도 이 순간만큼은 절대자를 통한 신앙과 믿음 그리고 종교적 체험과 성스러움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은 저녁 8시를 막 넘긴 시간이다.
루앙을 떠나 이곳 몽생 미셸까지는 약 1시간 남짓 걸린 듯싶다.
늦은 저녁시간에 접어들었는데도 이곳은 이제야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몽생 미셸은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Bretagne)와 노르망디(Normandy) 경계에 위치해 있는 마을 이름이지만 보통 수도원을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이 몽통브였던 이곳은 사제 오베르가 대천사 미카엘로부터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아 지어진 수도원이었고 그 이후 이 곳의 이름이 몽생 미셸 수도원이 되었던 것이다. 노르망디의 공 리처드 1세가 본격적으로 996년에 짓기 시작했으며 13세기경에는 종탑 꼭대기에 미카엘 상을 모실 성당을 짓고 수도원 맨 위 첨탑엔 미카엘 상을 세워놓았다.
이 수도원은 백년전쟁 중에는 요새로, 나폴레옹 1세 때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하필 이 망망 바다의 섬에 수도원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그 당시에는 이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중세 기독교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몽생 미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몽생 미셸을 방문하고 난 후 그는 이곳에 대해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시설은 물론 지저분하고 죄수로 가득한 곳이라며 이곳을 신랄하게 비난을 했었다.
성스러운 성당을 감옥으로 지정한 프랑스 정부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아마 그 당시에는 이곳이 감옥으로 사용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 몽생 미셸은 그 당시 위고에게도 큰 감명을 준 것은 분명하다.
아이러니하게 그는 비난을 하면서도 사막에서는 피라미드를 떠올린다면 바다에선 이 몽생 미셸을 떠올리라고 했다니 말이다.
다행히 이제는 감옥이 아닌 본래의 역할이었던 숭고한 수도원으로 자리 잡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의 명성과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멀리서 보기에도 외관이 웅장하고 견고해서 수도원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성이 우뚝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
몽생 미셸까지 걸어들어가는 다리와 몽생 미셸
몽생미셸 수도원을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
수도원까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하지만 다리가 없었던 과거에는 순례자들이 썰물 때에만 드나들어야만 했고 위치상으로도 이곳은 마실물과 음식들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안에 있던 사제들은 평균 나이가 30세 전후였다니 얼마나 힘든 고행의 길을 걷고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심지어는 순례자들이 밀물을 만나 침수로 목숨을 잃어도 단지 신의 뜻이라고 믿었고 다행히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행복해했다고 하니 몽생 미셸 수도원을 향한 순례자들의 신에 대한 믿음과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은 육지와 수도원을 잇는 다리가 생겨 밀물과 썰물에 관계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마을버스는 밤 12시가 넘어서도 이곳을 왕래한다고 한다.
지금은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내가 서 있는 수도원 주변에서도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이 완전히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어둠과 함께 밀려드는 바닷물은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그 무언가가 점점 마치 몽생 미셸을 집어삼키려는 듯 보여 두려움도 생긴다.
몽생 미셸 주변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모습
수도원으로 가는 골목길 Grand Rue
이곳 몽생 미셸에는 현재 약 30여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의 많은 사람이 수도원에 있는 사제 들일 것이다.
바닥엔 반질반질한 돌들이 박혀 있고 골목은 유난히 폭이 좁다.
골목 양쪽으로 들어선 가게들은 개성있고 독특한 모양으로 된 간판들로 여행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그 당시 글을 몰랐던 사람들을 위해 간판들을 이렇게 개성 있고 독특한 모양으로 표현했나 싶다.
어둡고 좁은 골목 그리고 스산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간판 탓인지 이 골목의 분위기는 유난히도 중세스럽다.
골목에 자리 잡은 가게들은 대부분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들이며 우체국도 보인다.
길을 걷다 보니 블로그에서도 유명한 레스토랑, 1800년대부터 손님들을 받았고 지금은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유명한 오믈렛 가게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비수기였고 우리가 도착한 시각이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이미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성수기에는 이 좁은 골목이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고 하던데 지금은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이 오히려 없다.
비수기 여행의 단점이자 장점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성수기를 피해서 봄가을에 여행을 즐긴다.
골목을 걷다 마주친 호텔은 겉모습만으로도 많이 낡아 보이는 호텔이지만 무척이나 고풍스럽다.
오늘 숙소가 예약이 안된 상태라면 하루쯤은 이런 곳에서 묵어보고도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생말로(saint malo)에서 묵을 숙소가 예약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아쉬운 마음으로 지나쳐야 했다.
꼭 언젠가 다시 와서 하루쯤 머물다 가고 싶은 숙소로 기억에 남겨 두어야 겠다.
가능하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 그 시절의 향기에 흠뻑 취해 하루쯤은 온전히 살아보고도 싶다.
몽생 미셸 수도원은 해 질 녘이 하이라이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역시 맞는 말이다.
서서히 주변이 어두워지고 물이 차오르며 수도원에 한두 곳씩 불이 들어오는 광경이란....
엄숙하고 고풍스러운 수도원에 또 다른 신비함과 신성함을 자아낸다.
몽생미셸의 꼭대기에 위치한 수도원..
골목을 한참 걸어 올라가니 드디어 몽셸 수도원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높은 곳에 수도원을 짓는 이유가 신을 우러러보는 마음을 더 갖게 하기 위해서라는 어느 건축가의 말을 들은적이 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입구에 다다르니 수도원 내부를 들어가는 입구는 닫혀있다.
마침 사제 한분이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신다. 순간 나도 함께 뒤따라 올라가 잠깐이라도 수도원 내부를 볼 수 없겠냐고 여쭤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포기해야 했다.
수도원 내부의 조용한 밤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우리는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는 한적한 성벽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그나마 적었던 관광객들도 다 사라졌는지 주위엔 우리 부부뿐이다.
허허벌판이던 곳에 서서히 바닷물이 들어오니 바람도 제법 차가워진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도원 경지 내에는 라 메르베유라는 높지 않은 수도원 건물과 과거에 사용되었던 군사 건물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 수도원이 요새로 사용된 적도 있다고 했으니 아마 그 당시엔 내가 걷고 있는 이 성곽을 돌며 적의 동향을 파악하고 다녔겠구나 싶다.
지금 느끼는 한적한 분위기와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운치가 아닌 불안감과 두려움 그리고 목숨의 위험을 느끼면서 말이다.
이따금씩 불이 들어와 있는 가로등 탓일까?
우리의 수도원 성곽 산책길에 운치를 더해준다.
가로등을 보니 몇 년 전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노인분이 거리에 있는 가스등 모두를 하나하나 직접 불을 붙이고 다니는 광경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물어보니 불을 켜고 다니는 노인은 자그레브의 시청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추운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불을 붙이고 다닌다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여행이란 이렇게 순간순간 옛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보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몽생 미셸 수도원의 가로등은 가스등이 아니다. 가스등이었더라면 수도원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을 텐데...ㅠㅠ
수도원 주변의 라 메르베유와 군사용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들. 그리고 성곽
습한 기운과 함께 주변이 깜깜한 암흑으로 변해간다.
우리가 몽생 미셸에서 나오는 순간에도 바닷물은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만조가 되면 섬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여 완전히 고립되는 몽생미셸!
멀리 성당의 첨탑엔 미카엘 상이 반짝이고 있다.
오로지 신의 절대적인 능력과 종교의 경이로움에 의존하는 이들의 삶을 보게되니 다시 내 마음이 묵직해져옴을 느낀다.
아까 만났던 사제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나오는 듯 수도원의 방문을 잠그고 있던데....
오늘 일과를 마친 수도원의 사제들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저 몽생 미셸은 잡히지 않을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이중 설계"를 떠올려 본다.
몽생 미셸 수도원이 배경이었던 이 소설에서는 종교는 물론 역사와 철학이 골고루 다뤄지고 있어서 읽는 내내 흥미가 있었지만 날 소설 속에 더욱 빠져들게 한건 몽셀 미셸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끔찍하고 잔인한 살인사건이었다.
소설의 특성상 책 내용의 역사적, 사회적인 내용들이 사실로 확인될 수 없지만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저 수도원에 끔찍한 살인 사실이 있었다는 소설 내용 자체만으로도 몽생 미셸은 나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몽생 미셸을 떠나 나오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지금 저 수도원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깜깜한 밤에 그윽한 불빛을 발하고 있는 저 몽생 미셸은 1000년 전의 역사와 문화가 존재하는 중세를 간직한 신비함과 더불어 음산함까지 풍기는 묘하고 으스스한 성채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