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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는 파리로, 퇴근은 루앙으로!

프랑스 북서부 여행 12 : 루앙 Rouen을 방문하다.

by 담소



우리는 어제부터 파리를 벗어나 시골 마을을 방문하며 시골 도로를 다니고 있다.

파리가 온갖 화려한 유물로 거만하게 뽐내고 있다면 프랑스다운 풍경과 문화는 시골 마을에서 그 본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의 시골 여행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값지다.



루앙(Rouen)으로 향하는 시골길, 어제 보았던 유채꽃밭이 오늘도 끝없이 펼쳐져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마치 샛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관(壯觀)'은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일 거다.

근데... 프랑스 사람들이 카놀라유 섭취를 많이 하나?

하지만 알고 보니 식용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공업용으로 사용하는데 특히 바이오디젤의 연료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 녹색환경. 환경정화 차원에서 유채를 사용하고 있구나.. 역시 환경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인 건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연구를 하고 있을까?


아마 여행을 끝내고 귀국을 해서도 끝없이 이어진 노란색의 유채밭 사이를 하염없이 운전했던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다.





노르망디 지역(붉은 표시)

어제부터 우리는 지베르니 마을을 시작으로 노르망디(Normandie) 지역을 여행하고 있다.

원래 노르만족의 본거지였던 노르망디(Normandie)는 노르만족의 롤로(Rollo)가 파리를 공략했고 그 결과 노르망디라는 지역을 선사받게 되어 공국이 되었다. 이후 롤로의 후예인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를 정복함과 동시에 노르만 왕조 시대를 열어 노르망디의 강인함을 과시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왕보다 더 많은 프랑스 땅을 가진 영국 왕이 생긴 이후 그때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되어야 했다.

약 100년이 넘는 백년전쟁을 통해 영웅 잔다르크가 등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는 영국과 공모하여 프랑스를 구한 17세의 어린 소녀를 화형 시켰다.

어찌 이렇게 되어야 했는지..




오늘의 방문 도시 루앙(Rouen)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중심지이자 파리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센 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무려 20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많은 사연이 담겨진 곳임엔 틀림이 없다.

이 도시는 아담한 시골 마을이 아닌 약 50만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성당이 많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루앙을 '성당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루앙(Rouen)은 지역적 위치로 인해 분쟁의 중심지가 된 도시였던 터라 안타깝게도 루앙의 도심 내부에 있는 성당을 포함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오늘 방문했던 루앙 대성당도 뒤쪽 한편에서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루앙에서는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성당들과 역사가 담긴 구시가지의 고풍스러운 옛 거리가 주로 볼거리지만 나는 보바르의 부인이 먼저 떠올랐다.

루앙은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의 저자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고향이었고 그 이유에서인지 그는 이 도시 루앙을 소설 보바리 부인에서 자주 언급했었다. 그래서 루앙의 거리를 걸으며 엠마를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겐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의 엠마는 루앙의 극장에 갔다가 레옹을 만나 또다시 쾌락에 빠지고 남편에게는 루앙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고 핑계를 대며 몰래 다른 남자와 사랑을 한 그녀....

무분별하고 겁 없던 그녀의 위험한 사랑 행각이 떠오른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허상에 사로잡힌 속물근성을 지닌 엠마에 대해 같은 여자로서 거리감이 생기고 그녀를 비난하는 마음도 생겼던 건 사실이었다.

엠마에 대해 비난과 냉정한 시선을 보내고 엠마 주변인들의 이기적인 욕망, 그리고 결국 그녀가 자살을 선택하게 될 때까지의 과정을 읽어가며 엠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그녀의 어리석음에 실망을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30여 년이 훌쩍 지나 지금의 내가 느끼는 엠마에 대한 감정은 조금은 다르다.

고뇌하는 엠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서일까?

이해를 하면서도 안타깝고 불쌍한 엠마....




우리는 루앙 구시가지에 도착해 성당 근처에 주차를 하고 2~3시간 정도 돌아다니기로 했다.

다행히도 루앙은 명소들이 한 곳에 몰려있는 덕에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장 먼저 구시가지에 있는 루앙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ouen)을 만났다. 이 성당은 4세기부터 이 자리에 있는 성당이라고 한다.

내가 만난 루앙 대성당의 파사드는 압도적이었다.

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 부분을 한눈에 다 담기조차 어려운 거대한 성당이다.

더군다나 6개의 첨탑이 솟아있고 무려 151m의 높이로 하늘로 치솟아 있는 저 거대한 첨탑은 가히 나를 압도할만했다.

얼마나 인간이 하늘과 닿기를 원했으면 저리도 올렸을까 싶다.

게다가 대성당 전면을 뒤덮고 있는 장식과 조각들은 한 폭의 레이스 천을 펼쳐 놓은 듯 너무나 섬세하고 구체적이기까지 했으니 우아함도 빼놓지 않고 보여주는 성당이었다.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이 가능했던 이유는 루앙이 그 당시 노르망디의 수도였으며 부유한 도시라서 가능했겠다 싶다.


주변을 압도하고 있는 하얀 대리석의 루앙 대성당은 그 자체로 빛이었다.

하지만 이 성당에도 수난은 많았다. 과거 백년전쟁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화재 등으로 파손되어 지금도 계속 복원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루앙 대성당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루앙 대성당


실내로 들어가 보니 내부의 압도적 크기와 설계에 경외감이 저절로 생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유독 높아 보이는 천장과 활처럼 높고 길게 굽은 형상이 나로 하여금 두려움도 갖게 했다.

그때 마침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제단의 성스러움이 더해지는 순간 나는 저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장엄과 숭고. 그 자체다.


루앙 대성당에는 윌리엄 1세의 무덤이 있다.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몸이 사후 여러 곳으로 나뉘어 묻혔는데 머리는 프랑스 서부 샤루(Charroux) 수도원으로 보내졌고, 몸은 앙주(Anjou)에 있는 퐁트브로(Fontevraud)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심장은 노르망디 지역의 중심지 이곳 루앙 대성당의 품에 안겼다.

당시 귀족들은 유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자신이 다스리던 영지 곳곳으로 보냈는데 인기 있었던 왕의 시신이 본인의 영지에 있다는 자부심과 그로 인해 자신의 영지를 더 각인시키기 위해서였을 듯 싶다.

뜬금없이 우습게도 로빈 훗에 등장하던 윌리엄 1세가 오버랩된다. ㅎㅎ

어릴 때 책에서 읽었던 로빈 훗에서 윌리엄 1세는 사슴을 죽인 자의 눈을 멀게 하고 거세를 한 왕이었으니 그의 성품으로 보아 기사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능한 통치자 임에는 틀림이 없다.

윌리엄 1세와 로빈 훗 영화장면





루앙 대성당 연작 by Monet

루앙 대성당과 연관하여 화가 모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연작으로 '루앙 대성당'을 그렸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른 원하는 빛의 방향과 각도를 찾기 위해 대성당 맞은편 2층에 작업실을 얻어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모네는 대성당을 그리면서 얼마나 몰두해 있었는지 밤마다 대성당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다고도 한다.

한 작품마다 빛을 통해 변화되는 매력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내가 본 모네의 '루앙 대성당'은 심지어는 몽환적이기도 하다.

빛에 따라 보라색, 황금색, 갈색 색 등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색들로 표현되고 있는 모네의 그림.

모네만의 독특함으로 빛을 오묘하게 표현하는 그의 눈과 마음을 어떻게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모네가 루앙 대성당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고 칭송하기보다 오로지 빛의 흐름에 따라 대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더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숭배하고 우러러보는 대상인 루앙 대성당에 대한 종교적 가치는 뒤로하고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한낱 건물로 생각하고 그림의 대상으로 삼은 건 아니었을까?




루앙 대성당을 나와 잠시 걸으니 배 모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의 교회가 나타났다.

1979년에 세워진 잔다르크 교회(Église Sainte-Jeanne-d'Arc)이다.

남편은 배를 뒤집어 놓은 디자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교회의 모양이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불꽃같은 삶이 떠올라서였을까?


잔다르크의 교회



성당 한쪽에 있는 잔다르크의 동상과 화형당했던 자리에 세워진 십자가

잔다르크가 나무기둥에 묶여 화형 당한 자리 '뷔에 마르셰 광장( Place du Vieux-Marché )'에는 지금은 높은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잔 다르크의 화형은 그때 당시 시장에서 진행되었고 그녀의 재는 센 강에 뿌려졌다고 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를 위해 싸웠으나 무지한 정치인들의 마녀사냥으로 인해 아깝게 희생을 당한 어리고 약한 여성, 잔다르크(Jeanne d’Arc)!

아! 그녀가 희생된 날이 봄, 아마도 5월의 마지막 날인 듯싶다.


잔다르크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구하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처형된 후 종교재판을 다시 열어 마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1920년 그녀를 성녀로 시성(諡聖)하였으나 무슨 소용일까?

교회마저 그녀를 이단으로 여기고 마녀로 몰았으며 정치인조차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될까 봐 그녀를 매장시키기로 했으니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무지와 농간이 판을 치는 시대는 항상 존재하나 보다.

나도 모르게 격한 감정이 올라오고야 만다.


성당 옆 광장은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아늑한 공간이 있다.

잔디 주변엔 젊은 이들이 모여 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나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갑자기 흥겨운 분위기의 그들을 보니 잔다르크의 나이도 이때쯤이었을 텐데...라고 생각이 들자 마음이 시려온다.




루앙 구시가를 잠시 돌아다녔다. 어느 곳에 가든 골목을 산책하는 일은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이다.

15세기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반 목조로 된 가구와 상점들이 양옆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나름 분위기가 썩 괜찮다. 루앙 거리의 독특한 매력으로 느껴진다. 마치 독일 시골 마을 골목에 들어선 분위기다.

이런 양식을 독일에서 유행했던 '알자스(Alsace) 식'건축양식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알자스 지방에서 유행했던 건물 양식인데 반대 지역에 있는 이곳 루앙의 지역까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루앙의 구시가지 거리


이렇게 구시가지의 산책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이 분위기가 좋고 특히 루앙의 구시가지는 상점과 집들이 다양한 파스텔 계열로 단장되어 있는 느낌도 들어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루앙의 대시계(Gros-Horloge)
The Gros Horloge at Rouen, Normandy c.1832, by J.M.W. Turner

구시가 중간에 들어서면 유명한 시계탑이 있다.

고딕 양식의 종탑에 르네상스 양식이 합해진 이 천문 시계는 14세기 말에 제작된 이후 계속 15분마다 종을 울리고 있다.

다이얼은 지름이 2.5m 되나 되며 별이 빛나는 푸른 배경에 24개의 광선이 있는 황금빛 태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마치 시계의 중앙은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상징하는 듯 화려하다. 주변의 어두운 청색으로 인해 더 화려함이 부각되는 듯했다.

몇 년 전 프라하에서 보았던 천문 시계는 해골이 나타나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문이 열리면서 12사도들이 나오고 황금닭이 우는 재밌는 시계였다. 그 시계를 보며 나는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앙의 이 시계는 매우 단순하지만 단순함 속에 섬세하고 화려함이 있음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바늘이 하나이다. 시침만이 현재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오후 5시를 향해가는 듯 보인다.




루앙의 골목을 계속 걷다 보니 갑자기 빵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입에 살살 녹는 부드러운 빵과 그윽한 향의 커피가 거리를 뒤덮고 있다.

아~ 어쩌란 말인가.

결국 나는 남편의 손을 이끌고 파티세(patissier) 가게에 들어가 색깔도 고운 마카롱 한 상자를 사고야 말았다.

어찌나 먹음직스럽고 예쁘던지...

더 많이 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참느라 혼났다. ㅠㅠ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일은 파리에서 사는 건 루앙에서!"

루앙은 다양한 재미와 즐길거리를 두루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 루앙에서 두 여인 엠마와 잔다르크를 만났다.

이런...

엠마와 잔다르크를 비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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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삶과 죽음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지만 문학과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인물들로 내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여인들임은 분명하다.


도시의 많은 종탑에서 동시에 울리는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었던 도시.

보바리 부인, 엠마를 만나게 했던 문학의 도시.

모네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가 매료된 예술의 도시.

아름답고 우아한 도시 이면에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있는 도시.


나에게 오래 남을 루앙의 잔상은 성녀 잔다르크의 희생이 녹아 있는 도시일 것만 같다.

고통스럽고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 루앙이었지만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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