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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마지막 안식처, 오베르 수르 우아즈

프랑스 북서부 여행 10 : 오베르 수르 우아즈

by 담소

오늘부터는 파리 시내를 떠나 우리가 방문하고 싶어 했던 마을들, 노르망디 지역까지 가 볼 예정이다.

며칠 동안 번잡했던 대도시 파리를 관광했으니 이제는 파리를 떠나 아름답고 한적한 마을들을 찾아 낭만을 느껴보고 더불어 봄기운을 벗 삼아 힐링도 하고 싶었다.

대중교통으로는 멀리까지 이동하기가 불편할 것 같아 파리에서 차를 빌려 이용하기로 했다.

파리에서 머문 동안에는 지하철과 시내버스, 그리고 공용자전거가 주로 우리의 이동 수단이었다면 오늘부터는 렌터카가 우리의 이동수단이다.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는 파리 포르트 마이요(Porte Maillot) 역 근처에 있는 렌터카 회사(Hertz)에서 차를 빌려 출발 예정인데 렌터카 회사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큰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 계단을 몇 번 오르내리락 해서야 찾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차를 인수받고 나서도 파리 시내의 복잡한 아침 출근 시간에 낯설고 익숙지 않은 차를 몰고 외곽까지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로에는 파리의 차들이 모두 나와있는 듯했고 교통 신호등 체계가 우리와는 많이 달랐으며 중간중간에도 출구들은 왜 그리 많은지...

경적소리도 이곳저곳에서 울려 정신이 없다.

낯선 차에 대한 매뉴얼을 익힐 틈도 없이 바로 운전을 해야 했으니 남편도 나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보며 열심히 운전하지만 역시 우리의 운전이 답답했는지 뒤에 따라오는 차가 경적을 울린다.

설상가상으로 지하 터널에 들어서자 우리의 내비게이션은 멈추고 말았다.

지하의 터널에 들어왔는데 터널 내에도 왜 이리 출구가 많은지...

언제 어떤 출구로 나가야 할지 몰라 우리는 일단 내키는 대로 나갔지만 아뿔싸!

우리가 나가야 했던 출구를 지나친 후에야 나왔다. 그 결과 약 30~40분을 더 운전해야 했다.

하지만 어떠랴...

약속 장소에 시간을 맞추어 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음 편히 먹고 운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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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외곽을 벗어나니 급작스럽게 도로가 한가하다.

시원하게 뻗어있는 고속도로를 보니 잔뜩 긴장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서서히 풀리는 기분이다.



파리 외곽 고속도로

차들이 없는 1차선으로 운전을 하며 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옆에 오더니 차선을 바꾸라는 신호를 해준다.

순간 아차! 하며 신호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고속도로 1차선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이들은 고속도로 1차선을 차를 추월할 때만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내용도 모른 채 1차선으로 계속 달리고 있었으니...ㅠㅠ

방문했던 여러 나라에서 머물며 운전을 해보았지만 나라마다 운전 수칙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서로 '다름' 안에서도 존재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배려'가 항상 가장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배려에 대한 규칙은 더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고속도로 운전 규칙도 1차선은 추월할 때만 사용을 해야 하는 게 옳지만 왠지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한국에서의 잘못된 운전습관을 반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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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운전이 편해지고 시골 도로의 바깥 풍경도 서서히 시야에 들어온다.

전원의 분위기처럼 평화롭고 고즈넉한 목가적 풍경이다.

초록으로 덮인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집들, 멀리 성들도 곳곳에 보인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고 마냥 펼쳐진 초원을 보니 풍경이 참으로 편안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초록과 함께 곧게 뻗은 편안한 길을 가던 중 끝없이 펼쳐져 있는 노란 유채밭 풍경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도록 노란 꽃이 들어 차있는 넓은 땅이 온통 유채밭이라는 사실에 놀랍다.

이런 풍경을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아쉬워 유채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보았다.

날이 흐려서일까?

내가 알기로는 유채 꽃말이 '쾌활'이라고 하던데 오늘따라 샛노란 유채꽃이 더 환해 보인다.

기분을 밝게 해주는 꽃이라는 의미인가?

내 기분도 쾌활해지려나? ㅎㅎ

제주도 유채밭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요즘엔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들었다.

인적없는 이 넓은 유채밭과 비교가 되니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다.

넓디넓은 곳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유채밭,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이 광활한 유채밭으로 어서들 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약 1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오베르 수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고흐가 약 70여 일 동안 그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잠시 살았던 마을이고 프랑스 화가 도비니(Charles-François Daubigny)의 집이 있는 곳이다.

도비니의 아틀리에와 도비니 전시관

도비니는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이곳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소개했다던데 혹시 고흐에게도 이 마을로 오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을 전체가 무척 조용하고 아늑하다.

때마침 마을의 장이 열렸는지 길 옆에선 직접 만든 의류들과 소품들을 가지고 나와 펼쳐놓고 있다.

구경하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지만 저마다 가지고 나온 물품들을 전시하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알록달록한 스카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옷들과 직접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들 그리고 손으로 짠 소품들이 보인다.

나도 스카프를 사고 싶어 잠시 둘러보지만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다.

오베르 시청과 오베라 수르 우아즈 마을


걸어 다니는 사람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의 골목길들이 이곳저곳으로 연결되어 있다.

집들 마다 예쁘고 소담한 화분을 창 밖에 비치해두기도 하고 담장엔 아름다운 식물들이 전체를 덮고 있어 낡고 오래된 벽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아름답고 고풍스럽다.

이런 풍경이 프랑스 시골 마을이지 싶다.

아기자기한 마을의 분위기와 어색함 없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다.


고흐는 그림도구를 어깨에 둘러메고 마을 이 골목 저 골목을 산책하듯 걸어 다니며 그림을 그렸겠지?

유달리 산책을 좋아했던 고흐의 모습이 내 눈앞에 떠오른다.

70여 일을 이 마을에서 지내면서 무려 7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니 거의 매일 그림 한 점씩을 그렸나 보다.

얼마나 이 마을을 좋아했으면 날마다 그림을 그릴 정도였을까?

인정!!

마을 곳곳이 정말 편안하고 아늑하다.

심신이 지쳐있던 고흐가 힘겹고 버거운 삶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던 편안하고 평화로운 마을임은 틀림없다.

인공적이지 않으며 과장되지도 않게 자연 그대로 소박하게 가꾸어진 마을..

현대적이고 최첨단 시설과는 거리가 먼 마을이다.

바쁘고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이런 곳에서 나도 머물다 가고 싶다.

돌담 아래에는 이름모를 화초가 새초롬하게 앉아있고 담장에 둘러져있는 담쟁이 덩굴은 담에 딱 달라붙어 담을 타고 점점 올라간다.


우리는 고흐가 다녔을 그의 발자취를 따라 잠시 걸어 다녔다.

기분이 차분해진다.

사색의 길을 걷는다고 하는 건 이런 산책을 의미하는 거겠지?

마을 여기저기엔 고흐의 발자취와 예술 혼 그리고 그의 숨결이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체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아름답고 소박한 마을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일부러 꾸민 흔적 없는 고흐의 그림 속 풍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을 곳곳 길목과 담장에는 고흐가 그린 그림과 실제 배경, 그리고 설명이 함께 비치되어 있어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고 더불어 감동이 훨씬 잘 전달된다.



마을 자그마한 공원 한쪽에 고흐의 동상이 서있다.

희망 없는 삶에 힘들고 지쳐 술을 즐겨 마시던 그가 술이 덜 깬 채 얼이 빠진 모습으로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는 야위고 파리한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아린다.

방랑자처럼 떠돌며 생을 마감했던 고흐...

고흐의 삶은 비록 행복하다 할 수 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 그의 삶은 행복했고 숭고했으리라.

고흐의 동상과 무덤



고흐의 동상이 서있는 공원에서는 어린 초등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도 고흐 할아버지를 알고 있을까?


생의 마지막조차도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를 남긴 채 짧은 삶을 마감한 고흐.

고흐의 삶은 치열했고 사는 동안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을까?

'모든 것이 끝나서 좋다.'라는 말을 남겨야 했을 정도로 그가 사는 동안 고통과 번뇌에 시달리며 힘든 생을 이어나갔던 불운의 화가 고흐가 오늘따라 더 가련해 보인다.


아! 예술가의 삶은 고단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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