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몸이 심상치 않다.
목도 따끔거리고 머리도 멍한 것이 감기가 온 것 같다.
나를 깨우는 딸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엄마, 일어나요. 벌써 7시가 넘었어."
더 자고 싶은데 주말마다 일찍 일어나는 딸.
딸도 감기가 심하게 왔다.
누런 콧물이 줄줄, 열이 나서 몸은 뜨끈뜨끈.
"아픈데 더 자지~ 우리 좀 더 누워있자."
"코 막혀서 못 자겠어. 우리 같이 놀자."
이렇게 딸과 함께하는 주말이 시작되었다.
좀 더 늦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혼자 있는 게 무섭다는 딸은 일어날 때 나를 꼭 데리고 일어난다. 나랑 딱히 같이 하는 게 없어도 나를 깨운다.
거실에 혼자 있으면 무섭다나?
아빠도 자고, 오빠도 자는데 엄마만 깨우는 딸이 야속하다. 오늘 같이 몸이 아픈 날은 정말 쉽지 않다.
헤롱헤롱한 정신상태로 딸과 시작한 보드게임.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 내려와서 꾸벅꾸벅 졸았다.
내가 게임을 하는지 잠을 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구원해 준 것은 잠꾸러기 남편.
어제 늦게까지 공부하고 자느라 피곤할 건 알지만, 오늘처럼 내가 아픈 날은 자고 있는 모습만 봐도 얄밉다.
그런 남편이 선뜻 제안을 했다.
"내가 딸이랑 같이 있을게. 아들 나가는데 같이 다녀와."
딸은 엄마랑 있을 거라고 아빠는 싫다고 떼를 쓴다.
"아빠는 안 놀아 준단 말이야. 같이 게임도 안 해주는데. 나 혼자 놀면 심심해."
"아빠가 같이 보드게임해 줄게. 엄마보다 아빠가 더 재밌잖아."
덕분에 난 무사히 딸의 손아귀에서 탈출했다.
몸이 아픈 날은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안 하면 좋겠지만,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고난길이다. 3초에 한 번씩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 차라리 오늘처럼 집을 나오는 게 속 편한 일.
2시간 후, 아들과 집에 돌아오니 분위기가 뜨거웠다.
딸의 웃음소리와 표정을 보니 아빠와 노는 시간이 즐거웠나 보다.
"2시간째 모노폴리만 하고 있어. 허리가 안 펴져."
방바닥에 붙어서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신나게 아빠랑 놀아서 그런지 기분이 업된 딸.
"점심 먹고 나서는 엄마랑 게임할 거야."
"또? 엄마 누워서 좀 쉬고 싶은데."
"나도 아프단 말이야. 아파서 밖에 못 나가서 심심해. 같이 놀아줘."
그때 나의 구원자 남편이 재등장했다.
"아빠가 영화 보여줄게. 밥 먹고 영화 보면 되겠다~ 엄마는 좀 자라고 하자."
"혼자 보는 건 재미없어. 같이 보자."
결국 남편은 2시간 동안 딸과 같이 '벼랑 위의 포뇨'를 봤다. 아빠랑 같이 ost도 따라 부르고 대사도 따라 하며 신이 난 딸. 덕분에 난 2시간이나 혼자서 누워있을 수 있었다.
일요일 오후에 침대에서 쉴 수 있다니~
오늘 하루 공부를 포기하고 집에서 아픈 딸과 나를 위해 머물러준 남편한테 정말 고마웠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응원하지 못하고 야속하게 생각했던 것이 미안했다.
"앞으로는 내가 팍팍 밀어줄게! 우리 아프지 말고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