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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곰 Apr 18. 2024

고민? 곰 IN!

곰이라서 고민이 많은 건가, 고민이 많아서 곰인 건가.

태어날 때부터 비염이 심했던 아들. 출산하고 첫 모유수유를 하러 수유실에 갔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 애기 숨소리가 왜 그래? 많이 답답한가 봐요." 

젖을 빨려면 코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아들은 코로 숨을 쉬기 힘들어서 쌕쌕거렸다. 젖을 물릴 때마다 유독 더 크게 들리는 그 소리가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과 비염과의 동거.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자주 감기에 걸리고 더 오래 아파야 지나가는 감기. 봄에 꽃가루와 함께 시작되는 감기는 초여름 잠시 주춤했다가 에어컨을 켜면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에어컨도 안 켰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찬바람 나는 늦가을부터 다시 감기가 찾아왔다. 1년 동안 약을 안 먹는 날보다 먹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약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자꾸 열이 나고 코가 막히니 잠자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어려울 텐데, 아이가 안쓰러워서 육아휴직을 하면서 어린이집에 최대한 늦게 보냈다. 남들보다 더 키워서 보냈지만 그래도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는 자주 아팠다. 등원하는 날보다 등원을 못하는 날이 더 많으니 어린이집 적응이 힘들었다. 매년 반복되는 비염을 이겨보고자 좋다는 약도 먹여보고, 여러 가지 치료도 해봤지만 코 상태는 똑같았다.


비염이 심한 나를 닮아 그런 것 같아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괜스레 미안했다. 혹시 집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가 싶어서 구석구석 먼지를 닦고, 이불을 삶고, 공기청정기를 돌리고, 수저를 소독하면서 아이가 얼른 낫기를 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감기에 걸리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열나고 아파도 이겨내는 힘도 늘어났다. 이젠 봄에 좀 편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다시 항생제러시가 시작되었다. 코가 숨도 못 쉴 정도로 막혀서 항생제를 먹으며 2주쯤 치료를 받았더니 거의 다 나은 듯 보였다. 그렇게 약을 끊고 2~3일이 지나면 다시 시작되는 열과 감기.  이렇게 2달 넘게  약을 먹었다 끊었다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의사 선생님도 이상하다고 하셨다. 평소에도 비염이 심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감기가 나으면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는 약을 먹어보자고 새로운 약을 처방해 주셨다.  가격이 좀 비싸긴 해도 먹어서 자주 안 아픈다면야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기가 잦아들고 새로운 약을 먹기 시작한 지 3일. 하교하고 집에 온 아들 상태가 영 이상하다.

"엄마, 나 왠지 오늘 하루종일 머리도 아프고 컨디션이 안 좋아."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어제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 그럴까?"

"모르겠어. 나 아픈 것 같아."

아, 뭔가 느낌이 싸하다. 혹시 몰라 체온계로 열을 재봤더니 역시나!

38도가 넘는다. 다시 시작인 건가?


새로운 약을 먹어서 아픈 건지, 그냥 오늘 미세먼지가 심해서 아픈 건지, 피곤해서 아픈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왜 아픈지 어찌 알겠나. 아들이랑 누워있던 남편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성장기라서 그래. 많이 크려고 자주 아프나 보지. 애들은 원래 아프면서 큰 거야."

참 맞는 말을 얄밉게 한다. 누가 그걸 모르나? 자꾸 아픈 아들이 걱정돼서 그러지.

"자꾸 아파서 어쩌냐, 고민이다. 새로운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거니, 해열제를 먹어야 하는 거니. 내일 또 병원에 가야 하는 거니?" 

"둘 다 먹이면 되지~"

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고민된 단말이야, 자꾸 아프기만 하니까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 라고 화를 냈다.


이 심각한 상황에서 아들이 갑자기 피식 웃는다.

"고민? 그래서 엄마가 곰이구나. 고민을 많이 해서 곰인가 봐."

"아니지, 곰이라서 고민을 하는 거지. 곰이 안에서 웅크리고 생각하는 거지 곰 in."

남편도 한술 더 떠서 아들의 말장난을 받아친다.


평소 같으면 너무 어이없어서 화가 났겠지만 오늘은 왠지 헛웃음이 났다. 고민? 곰 in? 뭔들 어떠리오.

내가 고민을 많이 하긴 하지. 남편 말대로 고민해 봤자 답도 없는걸 뭘 그리 머리 아프게 살고 있는 건지.

오늘은 좀 아들이랑 남편처럼 말장난이나 하면서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지내볼까 한다.

아픈 아들 해열제 먹이고, 열 떨어지면 새로 받은 약도 먹이고, 그래도 아프면 내일 병원 데리고 가지 뭐.


곰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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