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좋다. 나 혼자 간다.
마음의 여유가 주는 기쁨.
오늘은 나의 공식적인 외출이 있는 날.
한 달 전부터 날짜를 달력에 크게 적어두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나 00에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 저녁 전에는 돌아올 거지만 낮에는 셋이서 지내야 해."
나의 선언에 가족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엄마, 또 뭐 배우러 가요?"
"난 엄마가 나가는 거 싫은데, 집에 같이 있자."
"몇 시에 나갈 건데? 아침은 주고 가?"
아이들이 조금 크니까 좋은 점은 가끔 주말에 나 혼자 외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너무 지쳐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내가 좀 나가볼까 싶었을 때는 엄마에게 붙어있으려는 애들을 억지로 떼어내기가 마음 아파서 못 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쯤 내가 없어도 괜찮다고 한다.
"엄마가 나갈 때만 저래. 현관문 닫히고 3초만 지나면 찾지도 않고 잘 놀아."
남편의 말이 믿기지 않지만 그렇다니 다행이다.
애들이 괜찮다는 믿음이 있어야 나가도 마음이 편하니까.
한참 아들이 힘들 때는 밖에 있어도 가시방석이었다. 집에서 어떤 날 리가 났을지 눈에 안 보여 더 불안했고, 돌아가서 날리난 집을 수습하는 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애들이 힘들어하면 기분 좋게 나갔다 오라고 마음 써준 남편도 맘이 상해서 괜스레 더 미안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해도 안 뜨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 아침밥을 챙겨주다 버스를 놓쳤지만 괜찮았다. 바깥날씨가 어제와는 다르게 싸늘했지만 버틸만했다.
왜냐하면 나 혼자만의 외출이니까.
"다녀올게~ " 말하며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마음이 가벼웠다. 나 혼자 간다는 것이 이리도 설레고 기쁜 일이었나 싶었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약속장소.
여긴 비가 내린다. 젖은 신발이 축축했지만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경쾌하다. 나 혼자 나오니 궂은 날씨도 별로 힘들지 않다. 열차 배차간격 때문에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지만 괜찮다. 남는 시간에 비 오는 거리를 걸어도, 건물 처마 밑에 서서 비 오는 풍경을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항상 마음이 바쁜데 나 혼자 나오니 여유가 넘친다. 마음이 한가하니 뭘 해도 편하다. 오랜만에 혼자임을 즐기며 약속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참 기쁘다.
가끔은 나 혼자서 나와야겠다.
마음의 여유를 찾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