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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었던 사람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by 까만곰

"딸, 무슨 좋은 일 있어?"

"어? 갑자기?"

"아니, 00이 오늘 밥먹다가 언니 좋은 일 있다고 하길래. 그런데 도통 무슨 일인지 말을 안해주네. 언니한테 직접 들으라며."

"아... 그게 엄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짐으로 가득찬 집에서 필요없는 물건을 하나씩 버리고, 더러워진 물건은 깨끗이 닦고, 고장난 물건은 수리하며 천천히 정돈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내 마음 속을 오래 들여다보게 해주고 어루만져주는 작업이 글쓰기였다.


쓰다 보니 아픈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쓰리기도 했고, 잊고 있었던 행복한 기억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야속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고, 억울했던 마음들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참 힘들지만 고마운 과정이었다. 그 과정의 결과로 세상에 나온 책.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책이 나왔다고 여기 저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들썩이게 했다. 손에 쥐게 된 작은 책 한권이 엄청 큰 훈장처럼 여겨졌다.


여기 저기 책이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고, 많은 축하인사를 받으면서 행복했다. 그동안 힘들게 쓴 보람이 있네! 이렇게 책 한권이 나오니 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이 내가 해낸 작은 성공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움츠러들었던마음에 봄바람이 들어와 살짝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고맙고 소중한 책을 보여주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들과 친정엄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아들에겐 영원히 보여주고 싶지 않은 책이다. 부족한 엄마의 이야기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행여나 글을 읽고 어린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면 어쩌나 싶어서이다. 내가 힘들었던 건 아들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이런 마음을 이해해줄 날이 온다면 그때가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리고 친정엄마. 매번 전화할 때마다 내 걱정부터 하는 엄마.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일은 힘들지 않는지, 애들은 말을 잘 듣는지. 엄마의 관심사는 온통 나다. 내가 편안하게 살기를, 속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이 책을 보여드리기가 미안했다. 내 이야기를 읽으면 딸 고생했다고 엄마가 얼마나 마음아파 하실까 생각하니 선뜻 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 사실은 나 책 썼어."

"책? 네가 썼다고?"

"응.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나왔어."

"딸 대단하다. 바쁜데 언제 글을 썼어~ 무슨 책인데?"

"아들 키우는 이야기, 학교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 이야기."

"....... 딸 애썼다. 엄마도 책 읽어볼래."

"고마워, 엄마. 그럼 내가 이번에 내려갈 때 책 가져다 드릴게."

"아니야, 나 사서 볼래. 딸이 애써서 썼는데 내가 돈 주고 사서 볼거야."


이 와중에 딸 책까지 사준다는 엄마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애썼다고 말해주는 엄마의 말을 들으니 다 괜찮아졌다. 어쩌면 엄마에게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딸이 이렇게 잘 해내고 있다고, 이제 걱정은 그만 해도 된다고.


눈이 안좋으셔서 평소 책은 읽지도 않으시는 엄마가, 내 책은 사서 어찌 읽으실런지. 이제 시작한 낭독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에게 책을 읽어드리고 싶다. 매일 밤 딸에게 읽어주던 책을 이제는 우리 엄마에게도 읽어주고 싶다.


"엄마, 항상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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