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남긴 자리

소리가 사라진 밤

by 여백로그


눈은 늘 소리를 지운다.

말이 많던 하루도, 복잡했던 생각도

눈이 내린 뒤에는 모두 같은 색으로 눌러앉는다.


이 밤의 마당도 그렇다.

낮에는 분명 사람이 오가던 자리였고

어제까지는 발자국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 흔적마저 조심스레 가려져 있다.


가끔은 이 풍경이

마치 삶이 우리에게 주는 힌트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워야 할 것은 결국 시간이 알아서 덮어준다고.


불빛은 완벽하지 않다.

어둠을 전부 밝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둠 속에 완전히 잠기지도 않는다.

그 애매한 경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안심한다.


사람도 그렇다.

늘 밝을 필요도 없고,

완전히 괜찮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 정도의 빛,

이 정도의 온기면 충분한 날들이 있다.


눈이 덮인 마당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았는지 묻는 대신

오늘 하루를 무사히 통과했는지만 물어도

삶은 이미 우리 편이 되어준다는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밤처럼 보이지만

이 고요 속에서

마음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다시 걸어가기 위해.


눈은 녹고,

발자국은 다시 생기겠지만

이 밤의 정적은

분명 오래 남을 것이다.


삶이 너무 시끄러울 때,

우리는 이렇게 한 번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풍경에

몸을 맡겨도 괜찮다.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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