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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 발을 내딛다.

브런치 작가가 되다니.

1974년 4월 어느 날 나는 태어났다.

  내가 들은 첫마디는 '또 딸이네.'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위로 언니가 이미 하나 있었기에. 그때는 다 그렇듯 아들을 기대했기에. 다행히 밑에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아들에게 터를 팔았다면서 그래도 잠시나마 이쁨 받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탄생을 아무도 반기지 않았지만 나는 엄청난 난산 끝에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고야 말았다.


내가 두 살 때 엄마는 다섯 살 언니와 두 살 나 그리고 한 살 남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가셨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가끔 겪어보아도 너무나 잔인하고 무서웠기에. 하사관 조교 출신이라고 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뇌는 이미 히틀러보다도 더 잔인하게 굳어버렸기에 가정을 군대처럼 여기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해마다 명절이 되면 신작로 위에 있는 양지바른 무덤 한편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명절 연휴가 다 끝나는 마지막 날 저녁까지도. '올 해도 오지 않나 보네.'라며 긴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발걸음으로 어둑해진 흙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너무도 무겁고 처절하기만 했다.


  당시 3학년이었던 언니가 이모할머니네 막내아들 집으로 식모살이를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목놓아 울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퉁퉁부은 눈으로 보따리를 안고 집을 나서는 언니의 뒷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당시에 아버지가 재혼하신 새엄마는 자식이 셋이란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우리 삼 남매를 버리다시피 하셨기에 명절 때나 한 번씩 와서 잠깐 들여다보고만 가셨는데, 왜? 무엇 때문에 언니가 남의 집으로 식모살이를 가야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항상 언니가 8개월 만에 태어났다면서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불신했던 탓이 가장 큰 것 같지만 아버지에게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언니는 삶의 생채기들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19살에 첫 아이를 출산하고 형부의 사업 실패로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하며 여전히 힘들게 살고 있다. 가끔 사랑이 그리울 때면 내게 전화를 한다.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언니의 이야기를 조근히 들어주며 위로해준다. 언니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알기에.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한다 해도 나라도 언니 편이 되어주어야 하기에.

그래야 언니가 웃을 수 있기에.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일지라도 언니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이제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들 그 삶이 자신들에게 최선이었음을 알기에. 엄마의 삶도. 아버지의 삶도. 엄니의 삶도 그리고 내 삶도 말이다.


  나도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큰 아들은 군 복무 중이고 둘째는 중1이 되었다. 서른 살에 언어치료 공부를 다시 하게 되면서 언어치료사로 지금껏 일 해 왔지만 때로 난 늘 궁금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지,


마흔여덟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작가가 천직인 것을.

고등학교 시절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읽히면 너무 행복했고 지금도 출, 퇴근하며 듣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운 좋게도 선물까지 받게 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니 말이다. 중학교때는 아버지가 다니시던 쌍용양회라는  회사 사보에 나의 시가 소개되었었고 성인이 되어서 만난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내가 글을 잘 썼었다는 말에 어깨가 우쭐했었는데,

나는 글을 쓰려고 이 땅에 태어났나 보다.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가슴이 벅차고 기쁘다.

역마살 가득 내게 딱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허락된다면 여행 작가도 되어보고 싶다.


사람 사는 소리, 사람 사는 모습을 세상에 전하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인간미로 가득한 작가 말이다.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는 찹쌀떡 장수처럼 세상에 외치고 싶다.

나도 이제 작가라고 말이다.

한 줄기 빛 내 삶을 조명해주는 이 가슴벅찬 감동을 세상에 크게 외치고 싶다.


나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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