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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배급날 풍경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가진 날

'선생님~저 내일 배급 타러 가요.'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내일 할머니를 모시고 배급을 받으러 가야 해서 학교에 올 수 없음을 국민학교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좁은 논길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히 달려 내려간다.

'아줌마, 리어카 좀 빌려주세요.'

나의 배급날 풍경의 시작이다.

'할머니, 어서 타.'

한 살 아래 남동생은 꼬래 남자라고 리어카를 끌고 나는 뒤에서 밀며 할머니가 춥지는 않은지 목도리로 얼굴까지 꽁꽁 싸매 준 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작로를 따라 농협 연쇄점으로 달려 내려간다.

한 달에 한 번 쌀과 얼마의 돈을 타러 가는 우리만의 월례행사다.

오늘따라 눈발이 거세다.

연쇄점 안의 호빵 기계 속에 가득한 하얀 호빵들은 먹음직스럽기만 하다. 얗게 뿜어져 나오는 김을 신기한듯 바라보며  차마 사달라는 말도 못 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손자, 손녀가 불쌍했는지 '하나 먹어 볼 테야?'할머니가 먼저 운을 뗀다.

'응~~~'철부지 손자들의 쩍쩍 갈라진 손등 속엔 어느새 따끈한 팥 호빵이 하나씩 들려있다. 뜨겁긴 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은 이 세상의 맛은 아닌 듯했다. 너무나 부드러운 호빵과 단팥의 진한 달콤함이라니.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창호지 구멍 슝슝뚫린 흙집에 사는 지독히도 꼬질꼬질한 나와 남동생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배급날만 먹을 수 있었던 40년 전 그 팥 호빵이 아닌가 한다.


아버지도 버리다시피 한 우리를 70이 넘은 꼬부랑 할머니는 고아원에 갖다 맡기라는 이모할머니네 땅에서 변변한 것 하나 없이 우리들을 품어내고 있었다. 엄마 투리처럼.


얼마 전 할머니 산소에 꽃을 드리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머니, 정말 고맙고 사랑해.

나 반드시 성공해서 나라에 진 빚을 갚는 사람이 될게~

우리 할머니  그 헌신과 사랑을 이 세상에 반드시 남기고 갈게. 할머니, 두고 봐~ 나 보란 듯이 성공해서 세상이 욕심내는 사람이 될 거야!

그때까지 천국에서 편히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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