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들의 여자 친구

젊은 날의 나의 자화상을 만나다.

일주 일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짐을 싣기 위해 기숙사로 향한 나에게 해맑은 미소를 가진 한 아가씨가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캠퍼스의 낭만조차도 즐기지도 못한 신입생이라니. 짠하기만 하다. 일주일 새에 여자 친구가 생겼고 집이 광주라 내려가는 길에 내려주고 가면 안되냐는 아들의 전화에 괜히 마음이 설레기만 했다. 웃음소리가 경쾌하고 수줍어하는 여자 친구와의 2시간여의 대화는 즐겁기만 했다. 우린 여행도 같이 갔고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고 틈만 나면 함께 했다.

아들은 어느새 21살이 되었고 막 설을 쇠고 군입대를 했다. 3주나 지났을까?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여자 친구가 보냈다. 영문도 모르고 열어 본 택배박스에는 내가 준 성경책과 말씀 액자, 아들의 옷가지들과 아들이 선물했음직한 인형들이 들어있었다.

사귀면서 서로 오해가 많았는데 그 오해들이 잘 회복되지 못할 것 같다고 아들에게도 이별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나는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지난가을 시어머니로부터 쌍욕과 함께 두 번 다시 시댁에 오지도 말라고. 이제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은 지 4달만의 일이다.

그 새 남동생의 주식실패로 남동생 가정은 이미 파탄 나기 일부 직전이었고 아버지가 모아둔 얼마 남지 않은 돈과 평생 운전하셨던  레미콘을 아들에게 넘기면서 간신히 마무리해놓은 상태였다.

왜 힘든 일들은 연달아 오는 걸까? 결국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 저변에는 늘 버림만 받았던 나의 심리기제가 작용하지 않았나 한다. 2 살 때 엄는 아빠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우리 삼 남매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리셨고 23살 땐 자식과 자기 중에 선택을 하라는 새엄마의 성화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집 나온 지 일주일새에 나를 23년간 키워 준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와 뒤늦게 연락이 돼서 몇 년에 한 번씩 얼굴 보는 것에 만족하며 산 엄마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나는 늘 애정을 갈구하고. 인정받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건만. 25년의 남편과의 결혼생활의 허무함과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애정결핍과 단란한 가정을 부러워하는 마치 스무 살의 나를 너무나 꼭 닮은 아들 여자 친구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내가 제일 힘든 게 바로 이별인 것 같다.

어쩌면 내겐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버림받은 애완견처럼.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왔다.

아들의 첫 번째 휴가. 아들은 다시 여자 친구와 만나기로 했단다. 하지만 다 쓰고 구겨서 버린 종이 조각 같은 내 마음은 아들의 여자 친구를 다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의 마음은 너무 형편없이 메말라버리고 구겨져버려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같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느덧 9개월이 지난 11월의 어느 날.

아들의 여자 친구는 나를 꼭 보고 싶다고.

자기한테 너무 잘해줬는데 너무 미안했다고.

내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우린 바다가 보이는 5층 커피숍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찍고 일상을 이야기하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2살 때 이혼 한 홀아버지 밑에서 아주 자유분방하고 쾌활하게 자란,  내면의 상처 따위는 전혀 없 것 같은 해맑은  표정으로 다시 내게 온 아들의 여자 친구.


스물한 살의 나와 마흔여덟의 나는 그렇게 다시 마주했다.

우린 안다.

우린 내면의 결핍과 외로움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처럼 밝게 웃고 떠들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엄마랑 완전히 똑같다는 아들의 말처럼.

언젠가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용돈과 함께 건넨 편지에 펑펑 울었다는. 그 편지에 도대체 무슨 말을 썼냐는.

늘 궁금해하는 그 말.


환희야~

지금까지의 네 삶도 결코 쉽지 않았겠지만.

지금 모습 이대로도 너무 사랑스러워.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엄마는

바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을 사랑해.


작가의 이전글 나의 배급날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