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번역앱이 잘 되어 있고, 요새는 번역을 오류도 거의 없이 해주는데, 굳이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더군다나 그 나라에서 한 달이라도 살게 아니라, 단순히 여행만 할 거라면 번역 앱이면 충분한 거 아닌가? 실제로 다른 외국어는커녕 영어도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충분히 혼자 해외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스페인 여행을 하고 바로 깨달았다. 아무리 완벽한 번역앱이 있더라도(완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나라 외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정말 편. 하. 다. 간단한 대화를 하고 나서 '내가 이 대화를 외국어로 할 수 없었다면..?'이라고 상상해 보니 생각만으로도 뭔가 피곤했다. 핸드폰을 꺼내고 번역앱을 켜고, 말을 하고, AI가 번역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중요한 건 내 의도를 AI가 정확히 번역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하니 여행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 나라 외국어를 할 줄 안다면 상황상 빠른 대화가 필요할 때, 빠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바쁜 공항 직원들한테 뭔가 물어봐야 한다거나, 특히 여행자들은 뭔가 도움 요청이나 질문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번역앱을 켜고 하는 것은 서로 불편하다. 그리고 번역앱이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사람 간의 대화의 표정, 말투, 말의 의도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외국어가 서툴러도 표정과 상황, 몸짓과 어우러지면 소통이 더 잘 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기계에 대고 서로 말을 하는 경우보다, 서툴더라도 말로 하는 것이 더 소통하기 좋다.
그리고 자기 나라 언어를 할 수 있는 외국인에게 사람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더 친절하고, 조금이나마 좀 더 관심을 가져 준다. 내가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얘기할 때, '오, 얘 스페인어를 좀 하네?' 하는 듯한 상대방의 눈빛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Hablas español?"(너 스페인어 할 줄 알아?)였고, 내 대답은 늘 "Un poco(조금)"이었다. 스페인에서 주로 에어비앤비에서 묵었는데 호스트들이 특히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동양인은 신기하다는 듯 계속 스페인어로 말 시켜주며 여행에 도움을 주려고 했었다. 뭔가 스페인어 하는 나를 기특하게 보는 것 같은 느낌도 한두 번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해당 언어를 알고 있다면 번역앱이 캐치하지 못하는 오류를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번역앱을 사용하더라도 아예 모르는 사람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완전 번역 앱에 의존(AI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 하는 게 아니라, 비서처럼 내게 도움을 주는 '보조 도구'로써 사용해야 할 때 번역앱이 더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