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자는 척하는 새벽형 인간

by 하르딘

회사에서 도보 5분 이내 거리에 살고 있다. 매일 아침 거의 5분 전에 집에서 나온다. 출근 기록부에 찍힌 내 출근시간은 늘 8시 57~ 59분이다. 집이 코앞인데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춰 오느냐는 소리를 가끔씩 듣지만, 순진한 척 배시시 웃어넘긴다. 어차피 지각은 아니니까, 눈치 볼 시기도 한참 지났다.


회사 사람들과 얘기하지 말아야 할 주제들은 워낙 많지만, 특히나 나에게 얘기하지 말아야 할 비밀 한 가지는, 사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다. 봄, 여름에는 새벽 5시~5시 반에 일어나고,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잠이 많아져서 겨울에는 보통 6시 20분쯤 일어난다. 몸이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다가, 침대가 동향 창가 쪽에 있어서 거의 해 뜨는 시간에는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때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개운하게 잘 일어난다. 겨울에는 해가 워낙 늦게 떠서 알람을 맞춰놓고 조금 힘들게 일어나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만큼 저녁에도 일찍 자는 편이다. 보통은 10시 반쯤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내가 늦게 일어나는 줄 알고 있으니, 가끔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몇 시에 자냐고 물으면 대충 12시 넘어 잔다고 둘러댄다.


회사가 코앞이면 거의 아침 8시 반까지 푹 잘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밤늦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올빼미형 인간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실제로 예전에 올빼미형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회사가 가까우니까 아침에 8시 반에 일어나도 되겠다!"는 말에 내가 "나 새벽 5시 반에 일어나는데..?" 했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던 친구의 표정이 떠오른다.


새벽은 아주 매력적인 시간이다. 모두가 잠들고 이 세상에 나 혼자 깨어있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있다. 올빼미형 인간들이 새벽 두세 시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새벽 5~6시 즈음 모두가 아직 잠들어있는 고요한 새벽의 분위기, 그리고 점점 해가 밝아오고, 도로에 차가 조금씩 많아지며, 세상이 깨어나는 풍경을 보는 걸 좋아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 기지개 켜고, 이불 정리한 다음 바로 운동을 간다. 월, 수, 금은 새벽 수영을 가고, 날씨 좋을 때는 화, 목, 토, 일은 러닝을 한다. 보통 11월 말~2월까지는 추워서 러닝을 나가진 못하고 집에서 홈 요가와 근력운동을 한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하고 나서도 출근시간까지 시간이 꽤 남는다. 모닝커피 마시며 잠시 멍 때리는 여유로움을 즐긴다. 그 후 빨래 개기, 청소기 돌리기 등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스페인어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한다.


사 외부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새벽 루틴을 잘 알고 있다. 다들 나에게 '갓생' 산다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나는 갓생엔 관심이 없다. 새벽 분위기가 좋아서 일찍 일어나는 것뿐이고, 이른 새벽에 운동하는 게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하는 느낌이라 좋아서 하는 것뿐이다. 자꾸 갓생 산다, 대단하다는 말이 듣기 거북해져서 점차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새벽 루틴을 말하기가 껄끄러워진다. 더더군다나 회사에 나의 이런 새벽 루틴이 알려진다면..?! 그냥 회사 근처 살면서도 맨날 칼출근하는 게으른 직원으로 남고 싶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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