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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끄적

교실에서 마주한 꿈의 풍경

by 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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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하다 보면 같은 교실 안에서도 유독 "저는 커서 의사가 될 거예요." 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의욕이 전혀 없어 졸기 바쁜 아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학부 시절 교육학 수업에서 배웠던 마샤의 정체감 지위 이론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마샤는 청소년기의 정체감 형성 상태를 정체감 성취, 유예, 유실, 혼미의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결국 '내 삶의 방향을 얼마나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유형은 정체감 성취다. 진로에 관한 여러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한 뒤 스스로 선택하고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상태를 말한다. 정체감 유예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진지하게 여러 대안을 탐색 중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도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정체감 유실과 정체감 혼미다. 정체감 유실은 충분한 탐색 없이 부모나 사회의 기대를 그대로 수용한 상태를 뜻하고 정체감 혼미는 인생의 방향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나 계획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바로 뒤의 두 가지 유형, 정체감 유실과 정체감 혼미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부모님이 저보고 의사하래요. 공부 열심히 해야 돼요.", "저희 엄마가 교사하라는데 교사는 어떻게 하면 돼요?"와 같은 말을 하는 학생들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런 아이들은 아직 중학생이라 그런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좀 더 안타까운 아이들은 학교에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고 매일 수업시간마다 자거나 멍하니 앉은 아이들이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자고 있던 한 남학생을 깨웠다가, '나중에 아무 배달일이나 쿠팡에서 일하면 된다'면서 자기는 공부 안 해도 되니 깨우지 말란 말을 들었다. 그럴 때면 화가 나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말문이 막힌다. 이제 겨우 십대 청소년의 입에서 나오기엔 너무 이른 체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학생들에게는 앞으로의 삶과 진로에 대해 마음껏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나 어릴 때와 달리 학교에서도 진로 교과가 잘 운영되고 있다. 아이들이 다양한 직업 세계와 삶의 방식, 가치관 등을 접할 기회가 아주 많아졌다. 가끔 아이들이 진로 수업 시간에 참여하는 활동들을 지켜 보는데 그럴 때마다 내 학창 시절에도 이런 수업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완벽한 정체감 유실 상태였다. 희망 직업란에는 늘 교사라고 써넣었지만 이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을 보면서 막연히 꿈을 갖게 되었고 또한 어머니의 강한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 이후에도 몇 년간은 잘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의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지금은 교직 생활이 즐겁지만-어릴 때 직업에 관해 고민할 기회와 경험이 충분히 주어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이제는 나 역시 부모의 입장이 되고보니 자꾸 어리석은 욕심이 들곤 한다. 부모로서 자녀의 앞날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마음과 아이들 스스로 길을 찾게 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아직 균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몇 해 전, 아들이 게임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고지식한 어미로서 선뜻 "좋은 생각이야."라고 대답하지 못했고 최근까지도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거나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아이를 돌리기도 했다. 만약 나와 남편이 계속해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 진로에 관한 우리의 결정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면 결국 아이들도 나처럼 오래도록 정체감 유실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요즘은 많이 노력중이다. 교실의 학생들을 보면서 느낀 바가 컸다. 나의 자녀들이 다양한 활동을 직접 경험해 보고 그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스스로 찾아가기를 바란다. 엄마로서 성급히 아이들의 앞날을 제시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아이가 자신의 꿈을 탐색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조용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정해준 삶을 따라가거나 아무 목적과 방향 없이 삶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교사로서,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선택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결정할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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