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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끄적

퇴근해서 집으로 출근.

by 승연



오늘같이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서둘러 퇴근하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썰렁한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 때문이다. 이런 날엔 집에 엄마가 있어야 한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뜨끈한 쌀밥에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여내고,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는 존재 말이다.


교실에서는 교사로, 집에서는 엄마로 나는 매일 두 세계를 숨가쁘게 오가는 중이다. 비 내리는 퇴근길의 도로는 오늘따라 꽉 막혔고, 차들은 느릿느릿 제자리 걸음을 한다. 아이들이 기다릴 텐데... 초조함에 자꾸만 마른 침만 삼킨다.


교사라는 직업이 워라밸이 좋다는 말이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런 교사가 있으면 저런 교사도 있다. 특히 나처럼 일머리 없는 사람은 오히려 매일 집에 일거리를 싸들고 온다. 그런 면에서 나는 교사보다 엄마의 역할에 더 서투른 것 같다. 아이에게 늘 바쁘고 피곤한 얼굴만 보여주니까.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첫째가 차디찬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두 아이 중에서도 특히 초등 4학년인 첫째가 늘 마음에 걸렸다. 둘째는 워낙 야무지기도 하고 다행히 유치원과 등하원 도우미 덕에 돌봄 공백이 거의 없지만, 첫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힘으로 지낸다. 혼자 등하교하고, 혼자 간식을 챙겨 먹고, 혼자 학원에 가고... 대견하지만 한편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더 많다. 남의 아이를 챙기느라 내 아이를 놓치는 교사들이 많다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그 말이 내게 하는 말 같다.


주말부부로 지내던 시절, 남편도 물론 힘들었겠으나 혼자 일하며 아이도 키워야 했던 나 역시 늘 지쳐 있었다. 남편과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틈도 벌어져 갔다. 그때는 관리자 눈치를 보느라 육아시간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아이 앞에서 남편과 다투기를 여러 번. 불 같은 내 감정에 매몰되어 어린 아들의 겁먹은 눈빛을 번번히 외면한 채 지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우울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들었던 건 아이였다. 매일 어린이집에 제일 먼저 와서 제일 늦게 남아야 했고. 늘 지치고 우울한 엄마와 단둘이 지내야 했으므로.


나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순간마다 곁에 있어주지 못한 엄마였다. 그런 내가 어떻게 자신있게 다른 아이들을 가르친단 말인가. 가끔씩 아이가 아프거나 하면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오늘도... 집에서 춥게 혼자 잠든 아이를 보니 어찌나 마음이 아파오던지.




얼마 전 시 쓰기 수업 시간에 한 여학생의 시를 읽었다. 제목은 <엄마>였다.


학교 가기 전
잘 갔다 와, 말하는 엄마
학원 가기 전
조심히 다녀와, 말하는 엄마
늦은 저녁 집에 들어가면
잘 갔다 왔니? 묻는 엄마
나만 걱정하는 우리 엄마

정작 나는 한 번도 말하지 못한 말
"엄마는 오늘 어땠어?"


마지막 한 줄에서 나는 나의 아이를 떠올렸다. 세 살배기 시절,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눈망울을 떠올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던. 이제는 초등학생이 되어 조용히 내 퇴근을 기다리는 모습도 떠올렸다. 눈물 대신 그리움과 반가움이 가득한 눈망울로 변했다.


요즘은 오히려 아이가 먼저 내게 "엄마, 피곤해 보여. 오늘 많이 힘들었어?" 라고 말해주곤 한다. 시의 마지막 줄에서 그런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아이가 눈을 떴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엄마, 언제 왔어? 보고 싶었어."
마음이 녹아내렸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았다. 비록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아이가 지금 내 앞에 있다.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되었다.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마음을 나눴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오은영 선생님이 그랬다. 일하는 엄마라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아이는 다 느낀단다. 그 대신에 짧은 시간이라도 여건이 될 때 집중해서 사랑을 주면 된다고 했다.


오늘도 아이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지만

내일도 나는 변함없이 교사로, 일하는 엄마로 살아갈 것이다. 늘 어설픈 미완성이지만 학생들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며 살아가겠지.
그리고 내일은 내가 먼저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해주리라.

"아들, 오늘은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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