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식도락가이자 미식가인 남편은, 식당의 상호만 봐도 맛집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그만의 이상한 지론이 있다. 상호를 딱 읽었을 때 왠지 어설픈 느낌이 들면 아무리 유명한 집이라 하더라도 가기 싫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사람 이름이 들어간 상호를 선호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 정도면 어지간히 맛에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냐고. 그러니까 이를테면 '진광종 백족발', '김명자 낙지마당', '강봉석 호박엿' 같은 상호들 말이다. 이름만 봐도 고집스러운 장인의 얼굴이 선명하게 연상되고 맛에 믿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정말 그렇긴 하다고 감탄을 하면서도 그가 예로 든 이름들이 다 조금 투박하고 촌스러운 것에 주목했다. 주로 세월이 느껴지는 이름들이니 자연스레 나이 든 사람이 떠오른달까. 그러하니까 몇십 년간 맛의 기술을 연마한 장인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요즘 유행하는 아이들 이름을 넣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김이서 순댓국, 박서준 간장게장, 이지유 한정식' 같은 것들 말이다. 과연 이름만 바꿨는데도 안어울린다. 남편이 상호만 듣고도 "저기에는 절대 안 가."할 듯한 그 어설픈 느낌이 난다. 아무래도 장인들의 깊은 손맛 같은 것은 영 기대할 수 없을 듯한 이름들이긴 했다.
몇 년 전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였다. 양가에서 처음 맞이하는 손주였기 때문에 모두들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곧 이 아기의 이름을 누가, 어떻게 지을지가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어른들은 첫 손주의 작명에 욕심을 내셨다가도 부담감에 다른 분께 양보를 하는 등 상당히 고심초사하는 눈치였고 나중에는 아무도 이름을 짓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결국 시어머니가 유명한 작명소에서 거금을 주고 이름을 지어오기로 하셨다. 우리는 어떤 이름이 나올 것인지 기대했다. "달콤아, 곧 네 진짜 이름이 나온대."하고 아기의 태명을 부르면 가슴에 네임 스티커를 붙인 아기가 감았던 실눈을 뜨면서 꼬물거렸다.
며칠 후, 드디어 어머니가 이름을 받아오셨다. 작명가가 흰 종이에 붓으로 멋지게 써놓은 이름은 세 개였다.
'선웅', '사혁', '두일'.
한자 뜻풀이는 아주 좋았다. 그렇지만 나와 남편의 상상을 한껏 뛰어넘는 이름들이었다. 우리도 당시 유행하는 '유, 율, 지, 도, 서'와 같은 이름들을 마냥 따라하고 싶지는 않았고 오히려 주변에 잘 안보이는 이름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위의 세 이름은 그동안 '달콤이'라고 불러왔던 동글동글하고 보드라운 아기에게 붙여줄 이름이라기엔 너무 낯설었다. 아무래도 주변 어르신들 성함으로나 한번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지 이름만 듣고서 '와, 대단히 멋지다' 하는 느낌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아이의 성씨가 아주 흔한 것도 아니어서 성을 이름 앞에 붙이면 더욱 난해한 느낌이 들었다.
시무룩한 우리의 표정을 본 시어머니가 당신도 난감하셨는지 우리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작명가가 아이의 사주가 좋으니 이름을 잘 쓰면 유명한 판검사나 도지사 이상의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단다. 판검사와 도지사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범상치 않은 이름이 맞다나. 실제로 어머니의 외가쪽 어른들 중에서 부장판사도 계시고 교수님도 계시는데 다들 특이하고 묵직한 느낌의 이름들이라 했다. 내친 김에 어머니는 역대 대통령들 이름을 쭉 읊으셨다.
이승만! 김대중!이명박!
어떠냐고, 보라고, 이 중에 예쁜 이름 있냐고.
남편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그 직후의 대화들은 모양새가 썩 아름답지 않아서 생략하기로 한다.
며칠 후 시아버님이 변덕스럽고 철 없는 아들내외를 위해 다른 작명소에 가서 다시 이름을 지어오셨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우리 부부가 느끼기에 가장 무난한 이름을 골라 정했다. 어머니는 못내 아쉬우신 듯 집에서만이라도 처음 지어온 세 이름들 중 하나로 아이를 부르는 게 어떻냐고 하셨지만, 남편이 질색을 하며 그 이상은 함구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 후 둘째가 태어났을 때에는 첫째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들로 후보군을 만들어 다수결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 훨씬 수월했다.
요새도 심심하노라면 아이의 이름 대신 선웅아, 사혁아, 두일아, 하고 한번씩 불러보곤 한다. 정말 집에서라도 한번씩 불러주면 조금은 비범해지는 걸까, 하는 잡스런 생각 때문이다. 평범한 이름을 갖게 된 아이가훗날엄마 때문에 평범해졌다면서 나를원망하면어쩌나. 그때라도 이름을 바꿔 주면 되려나. 미신은 안 믿는다면서 두고두고 신경이 쓰이긴 하나보다.
"선웅아, 이번에 부장판사 된 걸 축하한다."
"사혁이 우리 검사님!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니?"
"두일이 내 새끼, 유우명한 도지사가 되었구나. 장하다."
아, 역시 아닌 건 아니다. 아직까지는 지금의 이름이 제일 잘 어울린다. 판검사나 도지사에 어울릴법한거창한느낌은 아니지만눈웃음이 예쁜 아이의 얼굴과도, 또 섬세하고 사려깊은 그의 성격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평범하고 부드러운 이름이다.
참고로 나는 이십대 때 영화배우 박해일을 아주 좋아했는데 그를 좋아하게 된 데는 물론 눈빛과 목소리도 좋았으나, 그 박해일이라는 이름이 한 몫 했다. 미친, 이름도 어쩜 박해일이야, 하면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만약 그의 이름이 박두일, 박선웅, 박사혁이었어봐라. 어림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