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온 후 둘째가 새롭게입소한어린이집은 대형 평수로만이루어진 그 아파트단지 내에위치했다. 우리가 입주한 아파트 단지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곳인데 일전에 집을 구하기 위해한번 둘러본 곳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아파트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40 평대부터 시작하는 집들이라 너무 넓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생각한 예산을 가뿐히 초과했다. 그러나 부동산 사장님이 급매로 특-별히 싸게 나온 매물이 있다 해서 구경이나 한 번 해볼 요량으로 가볍게 따라나선것이 그 집이었다.
그렇게 들어선 48평의 집은 어찌나 크고 넓던지, 진한 흑갈색의 인테리어는 또 얼마나 고급스럽던지 현관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방은 방대로 컸지만 그 안에 들어찬 가구들 역시 만만찮게 크고 장엄했다.
마침 거실에는 주인인 듯한 중년의 부부가 검은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말이 없어서 그런지 마치 부동산 사장님에게 고용된 모델들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다만 집을 둘러보는 우리에게 은은한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들이집을 내놓았으니 우리는 보러 온 것 뿐인데 어쩐지주눅이 들었다. 좀 더 꼼꼼하게 봤어야 했는데 막 기세 좋고 당당하게 둘러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우리를 안내해준 부동산중개사는풍채가좋고 화려한 장신구를 많이 걸친 여자분이었다. 한 60 살쯤 되어보이는그분 역시 이 아파트에 산다고 하였다.중개사사장님은 우리가 이 아파트에 들어온다면 마주하게 될 이웃들로 의사와 교수, 판검사와 사업가들을 읊으며 입주를 적극 권유했다. (반대로, 그들의 이웃이 우리라도 괜찮은 걸까?)
특히 그녀는 이 집에 살던 아이들은 모두 SKY에 갔다며 일명 명문대 합격이 보장된 집이라고비밀스럽게 소곤댔다. 입주만으로도 보장된 SKY 합격이라니, 사교육비가 장난 아닌 이 나라에선 분명 수지맞는 장사였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시세보다 저렴한 가격과 품위있는 이웃 주민, SKY 합격 보장까지! 이 정도면 대단히매력적인 집이 아닐 수 없었다.
"젊은 부부 꼭 와요, 우리 이웃주민 되면 좋겠어 정말."
부동산 사장님은 남편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리며 웃었다.마흔의 남편을 보고 학생인 줄 알았다며한껏 그를 치켜세운 뒤였다. 그러나 사장님과 헤어지자마자 남편은 내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분명 아주 좋은 집이지만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우리 가족을 상상하니 너무 우습고 이상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아빠 양복 입고 뽐내는 꼴 같달까,생각할수록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집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그후 우리가 계약한 집은 그 집의 맞은 편 단지에 위치한 34평의 아파트였다. 좀 더 밝은 톤의 (저렴한) 집으로, 이 아파트 단지에는 어린 아이들이 아주 많이 살았다. 우리는 놀이터가 훤히 내다보이는 집을 계약하였고 그제서야 마음이 좀 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