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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Oct 11. 2023

셀프 입주청소를 했습니다.

희한한 노동요를 불러댔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한 가족이 꼬질꼬질한 차림으로 콩나물 국밥을 사먹습니다. 부부는 며칠 굶은 듯이 국물을 퍼먹었고 그들의 두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꾸벅꾸벅 졸더군요.

들은 방금 막 입주청소를 마친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아침에는 각종 청소 도구들을 든 채 호기롭게 나섰지만 열두 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패잔병처럼 돌아와 앓아눕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었습니다.




이삿날을   남겨두고 입주청소 업체를 알아보았다. 34평의 오래된 아파트를 청소하는 비용은 40부터 60까지 다양했. 우리 부부는 한동안 가성비와 만족도를 따지다가 어느 순간 비용도 아낄 겸 직접 청소를 하기의기투합했다. 그동안 이사는 많이 다녔어도 직접 청소할 생각은 처음이었다. 그 돈이면 첫째 학원이라도 하나 더 보낼텐데 하는 마음도 들었고 마침 휴직 중이라 시간도 여유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할 만해보였다.

 

결론부터 쓰겠다.

입주청소는 업체에 맡기십시오. 그것만이 옳습니. 사람들이 말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디다.




리가 이사갈 집은 모녀 단둘이 오래 살던 곳이었다. 중년의 딸이 노년의 어머니와 살다가 비운 집이었다. 나는 그들을 직접 본 적은 없고 남편만 봤는데 그의 말로는 노모의 건강이 많이 안좋아 보였다고 했다.


아직 그들이 거주하고 있을 때 남편만 혼자 가서 그 집을 살펴보았다. 남편 말로는 가구들이 아주 많았다고 했다. 둘만 살기에는 휑하니 넓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사람 대신 가구들로 집을 채운 느낌이라 했다. 그가 집을 둘러볼 때 모녀는 미국 사람들처럼 스탠드와 같은 간접 조명들만 켜두고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집이 좀 어두웠다고 했다.


우리는 한참 후에야 그들이 간접조명만 켜두고 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집에 있는 전구란 전구는 오래되어 다 나가 있었다. 그날 우리는 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무려 열두 개도 넘는 전구를 갈아야 했다. 모녀는 전구를 갈 줄 몰라서 여기저기 스탠드를 두고 지냈던 것이다. 전구를 갈아달라 부탁할 남정네 하나 없었던 걸까. 어두컴컴한 집에서 무얼 하며 지냈던 걸까. 

   

좀 특이했던 것은 생활의 흔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집 어디에서도 바로 며칠 전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여길 만한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오래된 먼지, 먼지, 그리고 먼지만 있었다.

다만 눈길이 닿는 곳마다 달아놓은 벽걸이 후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곳곳에 붙여놓은 벽걸이 후크는 어림잡아 20개는 족히 되어 보였다. 저기에는 마스크를 걸었으려나...... 아니면 스카프? 저기에는 모자나 가방...... 여기에는 외투를 걸었을까. 모녀가 남기고 간 유일한 흔적이었다.


짐이 다 빠지고 난 집은 언뜻 봤을 땐 깨끗해 보였는데 자세히 보면 경악할 만큼 더러웠다. 창문마다 붙여놓은 빛바랜 단열필름을 제거하고 나니 창틀에 내린 새까만 먼지가 보였다. 여름에도 창문을 닫고 살았던 건가. 쌓인 두께로 봐서는 몇 년은 묵은 듯했다. 가볍게 닦아보려 했는데 먼지가 너무 날렸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계속 마른 기침이 나왔다. 나중에는 기침이 하도 멈추지 않아서 욕지기가 나왔다. 그와 동시에 짜증이 치밀었다.


주방 후드, 베란다, 실외기실, 세탁실...... 군데군데 페인트 칠도 다시 해야 하고 탄성코팅이며 시트지 교체며 손봐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제야 왜 여자가 천만 원을 깎아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슴에 연민과 분노가 뒤섞여 휘몰아쳤다.






출처: 픽사베이


입주 청소는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첫 날은 주말이어서 아이들까지 온가족이 출동했다. 남편은 청소도구들을 플라스틱 아기욕조에 담아 트렁크에 실었고, 나는 새벽에 싸둔 김밥과 유부초밥, 과일과 쿠키, 생수까지 넣어 무거워진 보냉가방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돗자리도 두 개 실었다. 아이들이 짐을 보더니 우리 소풍가는 거야? 하고 천진하게 물었다. 일견 나들이를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가벼운 목소리로 응, 우리 이사갈 집으로 소풍가는 거야-라고 답했다. 자, 갑시다- 남편의 목소리도 밝았다. 아름다운 호수공원과 도시의 활력이 공존하는 우리의 새 집으로 희망차게 출발하자꾸나.  


집에 도착해서 상태를 파악하고 나니 그러나 덜컥,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사갈 집을 처음 본 아이들은 뭣도 모르고 좋아서 환호성을 질렀지만 우리 부부는 굳은 표정으로 한동안 서있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깔끔하게 업체에 맡기자고 할까. 슬쩍 남편의 눈치를 봤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걸보니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때 말하자 싶었다.

 

옷을 갈아입고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장착했다. 급한 대로 거실 가운데만 쓸고 돗자리를 깔았다. 아이들은 그 위에서 놀고 있으라고 당부하며 남편과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네 시간쯤 지났나. 닦고 닦고 또 닦으면서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아악-일부로 멕이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고- 중얼거렸다. 지루하다고 떼쓰는 아이들 손에 하나씩 핸드폰을 쥐어준 지도 한참 지난 터이다. 남편 역시 그가 맡은 구역에서 끊임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우리는 지금 본인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또 얼마나 심기가 불편한지를 여러 감탄사로 드러내고자 했다. 내가 휴우-하면 그는 하아-했고 그가 끄응-하고 숨을 뱉으면 내가 아이고-하고 답했다. 한동안 메기고 받는 소리를 하며 우리는 희한한 노동요를 불러댔다.


여보, 이제 집에 가자.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했다. 100매짜리 소독 티슈를 네 통 하고도 반 넘게 썼다. 두 다리는 후들거렸고 산발한 머리를 다시 정리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은 집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들고 있던 손걸레로 눈에 보이는 아무곳이나 문질렀지만 그의 눈에도 총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고개나 어깨를 좀처럼 반듯하게 두지 못하고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였다. 자꾸만 비틀거렸다. 좀비들 같았다. 그때 아이들은 아주 화가 났다. 좁은 돗자리 위에서 꼼짝 없이 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소풍이야, 재미없잖아! 엄마 아빠 나빠!




셀프 입주 청소 둘째날이 밝았다. 

이날은 평일이라 나 혼자 청소를 하러 갔다. 저녁에는 퇴근한 남편이 바톤 터치해서 청소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집 상태를 다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을 굳게 먹게 됐다. 청소도구들을 독한 것들로 새로 챙겼고 성능 좋은 KF94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후줄근한 옷을 챙겨입고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비장하게 나섰다.


집에 가니 탄성코팅을 할 작업자가 먼저 와있었다. 그는 작업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할 것인지를 내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차분한 태도가 꽤 믿음이 갔다. 나도 그에게 그의 작업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못다한 청소를 마저 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안방 베란다와 실외기실에서 작업을 하고 나는 지난 번에 못다한 창틀 청소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법 여유가 생겨서 작게 음악도 틀었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며 창틀을 싹싹 문질러 닦았다. 버스커 버스커, 악동뮤지션, 볼빨간 사춘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노래를 들으며 나 역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창틀을 닦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의 청소와는 많이 달랐다. 그 전날은 험한 말과 탄식을 쏟아냈다면 오늘의 청소는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느 새 집은 많이 깨끗해져 있었다.




저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짐을 챙겨들고 인사를 하자 마스크를 쓴 그는 말 없이, 그러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의 작업도구들이 어지럽게 놓인 바닥 옆에 근처 빵집에서 산 커피 한 잔을 살포시 내려놓고 나왔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가본 남편이 아주 좋아하며 내게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탄성코팅 작업이 마무리된 공간들은 몰라보게 깨끗했다. 덕분인지 집은 마치 새집처럼 환했다. 남편이 말했다. 좀 고생하긴 했지만 우리가 입주청소 하기를 잘했네. 하기야 청소를 두 번이나 하고나니 집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해지긴 했다.


그후 남편이 서너 시간 더 애를 쓴 후에야 우리의 청소는 마무리되었다. 정말 고단한 일이었다. 다시는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이번의 경험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셀프 입주청소를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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