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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Sep 14. 2023

아직은 아니지만 공부를 잘 할 아이



학부모 공개수업에 다녀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파란 덧신을 신고 2학년 12반 교실 뒤편에 들어서니 고만고만 하니 앉은 아이들 틈에서 눈에 익은 뒤통수가 보인다. 두리번대던 아들은 제 엄마가 온 걸 확인하자마자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수업이 진행되자 자꾸 주책맞게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아이는 수업 내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대답했으며 가끔 친구들이 엉뚱한 말을 할 때면 함께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40분 내내 꼿꼿하게 앉아있는 아들의 모습을 눈에 꾸욱 눌러 담았다. 그리고는 참관 기록지에 떨리는 손으로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적어내고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왔다.   

  

  ‘느린 아이’니 ‘자폐’니 ‘부진아’니 하는 두려운 단어들을 인터넷에 검색하며 초조해하던 시간, 어둑어둑해진 밤거리에서 아들을 꼭 끌어안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니며 검사를 받던 날들이 필름처럼 차르르 하고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3년 전, 나만큼이나 삶을 팍팍해 하던 임 선생님이 혹시 점을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옆 도시에 사는 점쟁이가 눈이 멀었는데 꽤 용하단다. ** 사는 ㅇㅇ도사라고 하면 근방에선 다들 알아준다 했다. 딱히 궁금한 건 없었지만 그저 왜 이렇게 사는 게 고달픈 건지 상담이나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 주위 10km 이내의 모든 심리 상담센터들에게서 최소 2개월은 지나야 예약이 가능하다며 줄줄이 거절당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그날 퇴근하자마자 차로 30분을 달려 낯선 도시의 낡은 집으로 들어섰다. 그날 점집에는 처음 가본 거라  두려웠다. 그러나 생활한복을 입고 우리를 반겨주는 눈먼 도사님이 포크 가수 송창식과 얼굴이 흡사하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마음이 확 놓이기 시작했다.     


 먼저 임 선생님이 점사를 봤다. 금방이라도 ‘담배가게 아가씨는’, 하며 노래를 부를 것만 같은 도사님이 우리 사이의 허공 어딘가에 시선을 두며 말문을 열었다.

    

 “학교에 있어야 할 분 같은데요.”      


오, 이렇게 신기할 수가.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임 선생님은 도사님의 말에 강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점차 눈먼 송창식이 하는 말들에 정신없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상담가였다. 20분쯤 지나자 임 선생님은 많이 개운해진 표정이 되었다. 오길 잘했다고 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나는 잔뜩 기대했다. 그가 임 선생님에게 보여준 그 놀라운 능력을 나에게도 보여주길 원했다. 나와 내 가족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더듬더듬 말했다. 그리고 아마도 뭔가를 물어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송창식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꽤 의외의 것이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겠네요.”      


 그리고는 확신에 찬 어조로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겠어요.

아... 차갑게 식어버린 나의 표정을 도사님은 알 리 없었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경계성 지능인 것 같다는 전화를 받은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의 나는 매일 아이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거나 소아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거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아이가 정상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필 송창식은 나의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을 쿡 찔러버리고 말았다. 아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질 때였다.


황당해하는 나를 앞에 두고 그는 아주 아주 공부를 잘해야만 할 수 있는 직업들을 몇 개 읊었다. 먼 훗날 아이가 이런 일들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반박하는 대신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정확히 반대로 얘기하는 그가 너무 어이 없고 얄미웠다. 이런 엉터리 같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다양한 긍정의 말들은 숫제 나를 조롱하기 위한 것만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아이를 제외한 다른 일들에 관해서는 직접 옆에서 본 듯이 잘 맞췄다. 그가 그때 내게 해준 남편과의 관계, 시어머니와의 관계, 직장에서의 애로점에 관한 조언들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래서 아이에 관해서는 그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더욱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찝찝함은 한동안 계속됐다.




 시간은 잘도 흘러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됐다. 지극히 정상인 지능을 가진 아이임을 여러 명의 의사들에게 입증받은 후에도, 아이는 잊을만 하면 번번이 내 마음을 졸이게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설픈 발음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영 나아지지 않았고 한글은 학교 입학 직전에야 간신히 쉬운 글자를 읽는 정도만 뗄 수 있었다. 1학년 첫 학부모 공개수업 때에도 아이는 엄마가 학교에 와서 자기를 지켜본다는 것에 흥분했는지 아주 방정을 떨었고, 내 기분은 엉망진창이 됐다. 알지도 못하는 옆에 선 낯선 엄마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기쁨은 갑자기 찾아왔다. 야무진 여학생들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어리숙하지만 아이는 어느날부터 스스로 숙제를 하고 책을 꺼내 읽었다. 학교에 빨리 가고 싶다며 아침 일곱 시가 되기도 전에 책가방을 챙겼다. 단 한 번도 받아쓰기에서 백 점을 맞은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빵점을 맞은 적도 없었다. 심지어 점수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보통의 학부모들이라면 당연히 여길 모든 일들에 하나하나 의미 부여를 하며 감격해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의 두 번째 학부모 공개수업을 참관하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감동스런 마음을 참지 못해 결국 울기까지 하고 말았던 것이다. 연신 눈물을 닦고 코를 풀어대던 나를 보며 저 집은 아마도 굉장한 사연이 있을 거라 여기고 놀랐을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아무튼 나는 오늘의 감격을 잊지 않으려 글을 쓰기로 했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아이가 앞으로 공부를 많이 잘하지 않아도 상관 없을 것만 같다. 사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그러하듯 공부 말고도 자랑할 게 아주 많다. 연민이 많고 섬세하며 남에게 공감할 줄 안다. 지렁이와 사마귀를 주저없이 잡는 담대함과 어린 동생의 입에 과자를 넣어주는 상냥함도 지니고 있다. 아이가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좌절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딱 지금처럼만 즐겁게 지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의 눈부신 성장 과정을 어느 새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성적표에 실망하여  모진 소리를 내뱉는 엄청난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덧. 아이에 대한 도사님의 말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아마도 ‘쟤 혹시 바보 아냐?’라는 소리를 내내 듣다가 이만큼이나 좋아진 것을 두고 잘한다는 말로 위로한 건 아닌가 싶다. 그의 점괘가 결국 틀렸음을 확인받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날의 상담이 꽤 멋졌기에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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