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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끄적

그럴 거면 그냥 대치동 가서 살아.

by 승연



예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나는 아주 유난스러운 엄마처럼 보였던 듯하다.


두 자녀를 모두 의대에 보냈다는 부장님께 조심스레 자녀교육의 비법을 여쭈어 보거나 쉬는 시간에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짜는 모습이 같잖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루는 집에서 읽다 만 자녀교육서를 생각 없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는데, 친하던 지인이 툭 하고 던지는 말이 "그럴 거면 그냥 대치동 가서 살아." 였다.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내가 뭘 했다고 대치동을 떠올린 걸까 의아했다. 여섯 살 아이에게 피아노와 학습지와 태권도를 시켜서? 과학 동화 전집을 별 고민 없이 사들여서?


그렇지만 그 후 나는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자녀교육과 관련한 말과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쩌면 '저희는 많이 안 시켜요. 그냥 놔두는 편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 또래 아이를 둔 상대방에게 쓸 없는 적의감을 주지 않는 현명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둘째는 영어 유치원에 대기를 걸어뒀다.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고 마음 먹은 가장 큰 이유는 영어를 학습이 아닌 언어로 자연스럽게 익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우리말처럼 영어로 편하게 말하고 읽고 쓰는 자유를 딸에게 선사하고 싶다.


그 저변에는 수능영어는 자신 있었어도 실제로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나, 회사에서 외국인들과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은(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 벌써 영어를 지루한 학습으로 받아들이는 첫째의 경험이 아프게 깔려 있다. 둘째 너만은, 영어가 필수가 되어버린 이 지구에서 영어 콤플렉스나 스트레스가 없기를 바라는 심정이랄까.


집 바로 근처에도 여러 영어 유치원들이 있지만 알아보니 내가 일하는 시간대인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이를 맡길 경우에는 비용이 월 300까지 치솟았다. 그건 확실히 우리 가계에 부담이 된다. 그런 금액을 내고 유치원에 아이를 보낸다면 왠지 '교육'이 아닌 '투자'가 되어 가격에 상응하는 아웃풋을 내기 위해 아이를 닦달할 것만 같았다. 딸아, 이만큼 돈을 들였으니 저만큼의 성과를 내야지, 같은 말을 하면서.


다행히 딸을 보내기로 한 유치원은 비록 차로 15분 거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납득이 가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회사원과 교사인 우리 부부의 월급으로도 괜찮을 듯하여 대기를 걸었다. 편하고 자유로운 원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외국인 친구들도 다녀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힐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어쩌면 둘째를 영유에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를 키우면서 들었던 엄마들 간의 막연한 경쟁심리와 뒤처지면 안된다는 불안한 마음, 사교육 시장의 교묘한 광고, 그리고 마음 먹으면 우리도 영유 하나 쯤은 보낼 수 있다는 약간의 허세...? 여러 못난 마음들의 집합체가 이루어낸 우스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다지도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의 저변에는, 아닌 척, 고상한 척하며 아이에게 투영하여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을 보상 받고자 하는 심리때문은 아닐까. 그러면서 겉으로는 뻔뻔하게도, 이 모든 행위들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노라며 스스로를 기만하는 말하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아무래도 좋다. 어떤 이유로든 내 아이가 영어를 모국어처럼 편하게 쓰기를 바라는 건 달라지지 않으므로.




새로 이사를 온 이 동네에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가끔 어린이집 엄마들과 등하원 시간에 짧게 얘기하다 보면 어떤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들을 문장 곳곳에 끼워 넣었다.

원장 선생님이 너무 pydgeakgol 해서 rkslqrtgl 했잖아요.

그러면 다른 엄마들도 자연스레 받아친다.

그러게요, 너무 akqvbxwy 했어요.

다들 어디에서 살다 왔다 했나. 나만 못알아 듣는 것 같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간다. 기 죽을 필요도 없다. 자랑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문득, 어렸을 적 영어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재수 없다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최대한 한국식으로 영어 발음을 내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떠오른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지.


아파트 단지에는 백인, 인도인, 히잡을 쓴 외국인도 보이며 놀이터에서도 꽤 많은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며 뛰어논다. 저번엔 공원에서도 어떤 할아버지가 CNN 방송을 듣고 계셨지. 이런 환경에서는 자연스레 영어에 대한 호기심이 들 것 같다.


안그래도 둘째는 이미 동기 부여가 된 듯했다. 며칠 전, 햇볕이 좋던 날 놀이터에 딸을 데리고 나왔을 때였다. 놀이터에는 영어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언니, 오빠들을 잠자코 보다가 갑자기 내게 Mommy~!를 외치며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품에 안기더니 조그맣게 속삭였다.


"엄마, 나도 영어 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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