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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Oct 20. 2023

신도시 어린이집 적응기 (1)

영어 유치원에 대기를 걸다.



이사를 간  어린이집에 상담을 받으러 갔. 


대기 번호가 밀려서 다 떨어지고 간신히 상담을 잡은 유일한 어린이집이었다. ㅇㅇ야, 오늘 어린이집에 가면 떼쓰거나 울지 않아요. 알았지요? 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연락을 준 어린이집도 엄밀히 말하면 입소 확정은 아니었다. 만 2 세 반의 딱 하나 남은 자리를 두고 한 명의 지원자와 경쟁을 했다. 그래서 상담이라기보다는 원장 선생님께 학부모 면접을 보러 간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대학 입시 면접만큼이나 긴장이 됐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딸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발걸음이 사뭇 비장하다. 전에 살던 곳은 큰 걱정 없이 원하는 곳에 입소를 했고 그게 그렇게 고마운 줄 몰랐다......  아이들이 많으니 여기에선 어린이집이 귀했.


그런데, 좀 걷다보니 생소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대형 버스들이 줄줄이 아파트 단지로 들어와 멈추는데 버스에 도색된 이름들을 보니 전부 영어 유치원 버스였다.

서너 대의 버스 안에서 명문 사립고교 교복처럼 생긴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제이든! 클로이!

마중나온 엄마들은 저마다 아이들의 영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그중 몇몇은 유창한 영어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이 참 신기했다. 물론 영어 유치원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대규모의 현장(?)은 처음 보았다. 신도시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이 실감나던 순간이었다.




어린이집은 아담한 편이지만 분위기는 좋아보였다. 최대한 예의바른 태도로 상담을 받았다. 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이곳 아이들은 숲 나들이도 자주 가고 미술, 영어, 팩토, 체육, 악기 배우기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고 했다. 정말 간절히 아이를 보내고 싶었다. 원장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었다. 이곳에 입소하지 못하면 내년 초까지 대기를 하거나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다시 알아보는 밖에 없었다.


내가 원장실에서 상담을 받는 동안 아이는 밖에서 선생님들과 장난감 놀이를 했다. 아이는 평소의 떼쟁이 모습을 감추고 애교있게 굴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문득 아까 보았던 영어 유치원 버스들이 떠올랐다. 한 영어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네 살 반도 있나요? 네, 네 살 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자리가 있나요? 지금은 없습니다.


그는 외국인 주재원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왕왕 있으므로 연락처를 알려 주면 빈 자리가 생길 때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잠시 후, 좀 전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입소를 축하한다는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딸과 놀아주던 선생님들이 아이가 참 예쁘고 똘똘하다며 우리를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우리 딸이 정말 해냈구나, 나이스. 정말 감사하다고 전화기에 대고 몇 번이나 인사했다.


한시름 놓았다. 기뻐서 딸을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도 영어 유치원 대기는 그대로 걸어두었다. 아까 보던 광경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사온지 3 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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