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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Oct 20. 2023

신도시 어린이집 적응기 (2)

'쫄지 마'를 되뇌었다.



아이의 첫 등원날이었다. 


밖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아이는 자꾸 얇은 공주 드레스를 입고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한참 진땀을 빼다가 결국 바지를 입혔지만 아이의 아랫입술은 오리처럼 툭 튀어나왔다. 어쩐지 험난할 듯한 하루였다.


비바람은 갈수록 몰아쳤다. 우산을 썼어도 왼쪽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들고 아이의 옷에도 빗자국이 하나 둘씩 물이 들었다. 날씨 만큼 기분도 음습해졌다. 그래도 어찌저찌 가다보니 저만치 어린이집이 보인. 힘내자, 힘.


어린이집 1층 주차장에서 벤ㅊ와 비엠w가 멈췄다. 아이들이 내렸다. 등에 맨 노란 가방을 보니 같은 어린이집이다. 아이 엄마들끼리 서로 아는 체를 했다. 요즘 세상엔 아주 흔한 외제차라 하지만 그 흔한 외제차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나는 속으로 '쫄지 마 쫄지 '를 되뇌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  조심히 걸어가는데 비에 축축히 젖은 내 운동화와 청바지가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여 등원을 도와주는 선생님께 오늘 처음 왔다고 말하였다. 아까의 그 엄마들이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심지어 같은 반이었다.

최대한 살갑게 인사했다.  생글생글 웃어보려 했는데 실제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은 쫄아보였을까?


젊은 여선생님이 내게 1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첫날이라 아이와 함께 원에 있을 줄 알았기에 당황했지만, 다급히 아이에게 엄마는 조금 있다가 오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다행히 울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교실에 들어가는 딸의 뒤통수를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야무진 딸보다 내가 더 마음이 여렸다. 울먹이면현관을 나왔다.


그런데 아까 마주친 아이 엄마 중 한 명이 날 기다리고 서 있다. 안녕하세요, 저희도 7월에 이사왔어요. 아, 정말요? 얼른 눈물을 닦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낯선 도시에서 5 일쯤 지내는 동안 외로웠던지, 아는 체를 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이는 나보다 위인 듯 싶었는데 아침이고 민낯인데도 저렇게 예쁠 수 있나 싶은 미인이었다. 아까 쫄지 마-를 연신 되뇌었던 덕분인지 그래도 편한 마음으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후 어린이집 근처의 베이글 가게에서 1 시간 동안 대기를 했다.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비에 젖어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녹였다. 그곳에서 짧은 일기도 쓰고 오늘 할 일도 적었다. 어쩐지 계속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딸이 걱정이 되어서인가, 아니면 좀 전의 대화로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인가? 나도 잘 모르겠었다.




1시간 후 다시 어린이집에 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이는 햇살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어찌나 감사한...... 선생님은 아이를 많이 칭찬했다. 예쁘고 똘똘하다고 했다. 아이도 오늘 어린이집이 좋았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아예쁘다 아예쁘다 하고 말해줬어. 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나는 딸을 꼭 안아주었다.


어느새 비는 그쳤다. 집에 와서 젖었던 옷을 세탁기에 넣고 뽀송뽀송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별 것 아니네. 괜히 쫄았어. 신나게 춤을 추는 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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