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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Nov 03. 2023

신도시에서 집값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하지.




단지내 놀이터나 집 근처 커피숍, 식당, 공원, 체육 시설이 비치된 공터... 요새 주로 머무르는 곳들인데 그곳에 있다 보면 꼭 한 번씩 듣게 되는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집, 집값, 부동산 이야기들이다. 


아파트 주변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족히 열 곳은 동네라  잘 들리는 듯하.  머릿속 레이더  쪽으로 유독 길게 뻗어 있어서 더욱 그런 것일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보다 그런 이야기들이 자주 들려오는 건 사실이었다. 커피숍에 느긋하게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다가도 집값이나 동네 시세와 같은 대화가 들리면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고 말았다. 좀 우스워도 어쩔 수 없었다. 얼마간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할 사람으로서 이 동네 집값 얘기는 가장 궁금하고 듣고 싶은 주제였으니까.




몇 년 전, 둘째를 낳고 집 근처 조리원에 들어갔는데  무렵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았다. 당시 거주하던 지역에서  집값이 연일 신고가를 경신했다. 말 그대로 자고나면 하루에 몇 천씩 뛰었는데 부동산 사장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매일 수직으로 상승하는 집값은 누군가에게는 행운이자 축복이였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당시 세입자이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많고 많은 아파트들 중에서 어디에도 하나 없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즈음 주변 지인들 몇몇 집과 관련한 다툼이 잦아지면서 이혼을 하네마네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기 .


그래도 그때 내가 크게 속상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둘째 출산에 온 정신이 쏠려 있던 덕분이었다. 방금 태어난 딸아이는  사랑스러웠. 첫째와는 또 다른 오밀조밀한 귀여움이 있었다. 깎아 놓은 밤알처럼 귀여운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집값이고 뭐고 다른 일들은 저만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조리원에서 다른 엄마들과 안면을 트자마, 다들  것마냥 자연스레 집값 이야기를 해왔다. 생각해보면  시기 스몰토크의 단골 주제가 치솟는 집값 이야기이긴 했. 물론 대화 상대자가 누구냐에 따라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지만. 주로 화제를 꺼낸 쪽은 자가를 소유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굴었다. 어떤 여자는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각각 아파트 분양에 당첨돼서 현재 2주택자라고 했다. 두 아파트 모두 수 억씩 올랐다고 했다.

...부럽네요... 

자연스레 튀어나온 내 말에 그녀 행복한 듯 까르르 웃었다. 앞으로 정말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그녀와 한번 벌어진 자산 규모의 격차는 절대 좁혀지지 않으리라. 해사한 표정의 여자와 마주앉은 내 표정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어둡지 않았을까 싶다.


그 후로도 조리원에서 산후 마사지를 받을 때에도, 식당에서 밥먹을 때에도, 이벤트용으로 제공되는 신생아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릴 때에도....! 만나기만 하면 다들  , 집, 집 이야기였다. 한번은 참다못한 내가 현재 세입자이고 벼락 거지임밝혔다. 그러면 그들이 화제를 바꾸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였다.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


새콤이 엄마, 지금이 막차 탈 기회예요. 아직 안 늦었으니까 빚을 내서라도 빨리 집 하나 사요. 나도 대출을 얼마 받아서 샀는데 지금 집값이 얼마냐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얼마 후 드디어 우리부부 역시 집을 샀고 조리원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여자(나) 즉시 어떻게 변했냐면...  놀랄 것도 없이 딱 조리원에서 마주쳤던 그녀들처럼 바뀌었다. 


일단 집을 사면, 아무튼 한동안은 부동산에 미쳐있는 거다. 온통 집, 부동산, 재테크에 관한 생각밖에 안 들었다. 다행히 우리집도 가격 뛰었는데 그 차익이 교사 월급으로는 몇 년을 벌어도 못 모을 금액인 것을 알고나큰 충격을 받았다.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안타깝지만 한동안 근로 의욕을 떨어트리는데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그즈음 친정 부모님에게도 참지 못하고 집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친정 집까지는 차로 무려 3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막 서울을 빠져 나오려는데 한 유명한 아파트 근처를 지나면서 아빠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저 건물, 내가 지은 건데.


? 아빠는 교사였잖아요. 무슨 소린가 했다. 알고보니 아빠는 이십대 초반서울에 사는 큰고모 집에서 거주하며 잠시 건설 현장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몰랐던 아빠의 과거였다. 그랬구나. 아빠도 그 옛강남 건설의 현장에 함께 있었구나. 스물 한 살의 젊은 아빠가 힘들게 벽돌 같은 걸 날랐을 모습을 상상하며 안타까워하던 것도 잠시, 갑자기 머릿속에 속된 생각이 들었다.


아빠, 저 집을 짓지말고 샀어야죠.


그때 부모님이 20년 넘게 거주중인 아파트는 집값이 1억도 오르지 않았다. 근방에선 제일 괜찮은 아파트인데도 워낙 인구감소가 빠른 지방이라 그런지 영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울과 멀수록 집값도 내려갔다. 그동안 대도시로 하나 둘 이사를 나간 아빠의 친구들이 집이 얼마가 올랐네, 몇 억을 벌었네, 쉴 새 없이 그런 류의 자랑들을 해오던 시기였다.


아빠가 저길 샀으면 어? 지금 아빠가 어? 얼마를 벌었을텐데 어?


내 말을 들은 아빠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런 소리 말라고 했다. 그러면 뭐가 달라지냐고, 지금도 행복하게 잘 산다고 했다. 평생 선비처럼 살아온 아빠였다. 그래도 난 끝까지 투덜거렸다.


어휴, 저길 샀어야지. 아빠, 서울에 집을 샀어야 해요.





그렇게 한동안 부동산에 미쳐버린 사람처럼 지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똑같이 부동산에 미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집 이야기는 영 껄끄럽고 불편한 주제라는 것을.


주변에 수 차례 분양을 넣어봤지만 당첨이 되지 않아 의기소침하지인이 있었다. 그녀가 최근에 넣은 아파트의 분양 경쟁률이 2대 1도 되지 않은 걸 확인한 후 이번에는 붙었지?하고 웃으며 물었을 때였다. 그녀가 내 기대에 찬 표정을 보더니 또 떨어졌다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마 그쯤부터일 거다, 집과 관련한 이야기를 가게 된 것이.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고 혹 얘기가 나와도 잠자코 듣기만 하는 편으로 바뀌었다.




오늘도 이 동네의 집값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며 내 귀에까지 들려오는 중이다. 이곳의 집값은 다행히 안녕하신 편이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의 상태인 남편은 요즘도 여전히 돈을 많이 아끼고 재테크와 부동산 카페에서 관련 지식을 쌓으며 의욕적으로 한강변 아파트의 진출을 꿈꾼. 그러나 나는 이제 경제적인 것은 남편에게 일임하고 속 편하게 책이나 읽고 이런 공개 일기나 쓰며 지내려 다. 조금은 내려 놓았달까.


사실 오늘도 매콤쫄깃한 대화를 듣긴 했다.


생각엔 바로 지금이 상급지로 갈아탈 기회 같아.


집을 보러 온 듯한 남녀 한 쌍이 아파트 단지를 서성였. 젊은 남녀는 몇 달 전 나와 내 남편이 그러했듯, 신중한 눈빛으로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집은 마음에 드는데 매매가 나을지 전세가 나을지 민이라며 소곤소곤 얘기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내려 놓았다면서 또 다시 그들에게 한껏 집중한 내 자신을 발견한다. 안 엿듣고는 못배길 것만 같은 집 이야기. 더이상  먼저 말을 꺼내진 않지만 두 귀만은 앞으로도 한동안  쫑긋댈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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