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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Nov 28. 2023

브런치 스토리 에디터님,  꼭 읽어주세요.

저 지금 아주 진지합니다.

제 마음입니다만...



에디터 님, 안녕하신가요.

말을 워낙 못해서 글이라도 실컷 써보고자 브런치 문을 두드린 지도 벌써 두 달쯤 되어가네요.

우선 작가 도전 한 번 만에 뽑아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지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더군요. 갈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처음에 그리 잘 쓴 글도 아니었는데 왜 뽑아주신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덕분에 응어리졌던 기억이나 하고 싶은 말들을 실컷 토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잘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에디터님,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감사하게도 글들이 가끔 에디터 픽을 받곤 합니다. 벌써 세 번째인가, 그렇습니다. 아주 가끔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쓰곤 하는데요. 그러면 조회수가 보통 30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대충 쓴 글은 지울까 말까 망설일 때쯤에 꼭 에디터 님의 선택을 받아서 사이트 메인에 글이 뜨고 조회수가 몇 천을 우습게 넘기더군요.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잠시 말씀드려도 될까요?


처음에는 마냥 기쁘고 신이 났답니다. 수많은 주옥같은 글 중에서 제 글을 읽고 선택해 주신 거잖아요. 이곳 덕분에 글로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고 정말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사이트 메인에 글이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구독과 라이킷도 눌러주니, 행복했어요.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그런데 이게 갈수록 부담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뽑힌 글들이란 것이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낼 거라는 글, 처음 신라 호텔에 간 날, 지금 사는 신도시에 입성하려고 애썼다는 글들이었거든요. 사실 다 따지고 보면 전부 삿되고 속물적인 내용의 글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또 어떤 글의 조회수가 치솟았을 때 앗, ㅇ됐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악플 같은 댓글을 봤을 때는 아찔하니 식은 땀도 났고요.

 

독자를 전제한 사이트임을 알면서 바보처럼 왜 그랬을까요. 굉장히 욕심 많아 보이고 저속해서 아무에게도 말 못할 내용들을 글로 끄적거려 본 건데... 누군지도 모를 에디터 님은 어쩌면 그렇게 나라는 사람의 속을 예리하게 간파해서 꼭 그런 부끄러운 글들만 콕콕 찝어 광장에 전시하고 공개적으로 참수를 하고 마는지요.

혹시, 이 속세에 찌든 아줌마야, 악플 받고 정신 차려랏! 하는 의도로 글을 뽑으시는 건가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설마 그건 아니겠죠. 그렇죠. 그럴리가요.




에디터 님, 지금쯤 혹시 네가 알아서 안 부끄러운 글을 쓰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이 하고 싶어 애달으실까요?

애초에 저속한 글 대신에 맑고 예쁜 글을 쓰면 되잖냐고요...


네, 그런데 제가 또 그런 글들은 잘 못 쓰겠더군요. 저는 맑고 선한 일상의 글을 쓰는 걸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주로 남들 보기엔 부끄러운 글들만 발행합니다. 그러면서도 에디터 님께 너무 부끄러운 글은 메인에 올리지 말아달라며 부담스러움을 호소하는 중입니다. 참 웃기는 아줌마죠.


실제로 이 브런치에는 평범한 일상도 지나치지 않고 보석 같은 글로 완성하는 재주꾼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이런 글들은 읽을수록 질투가 났습니다. 한편으로는 감탄할 수밖에 없어서 존경과 찬사의 의미로 라이킷과 구독을 열심히 눌러댔지요.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쓰는 맑은 감성의 글들이었거든요.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행복해,  연민해, 이래도 저래도 그럼에도 괜찮아, 세계 평화... 그런 것들이 제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마음이 한껏 뒤틀리고 어긋나 있어서 그런지 자꾸 그런 식으로만 글이 써지나 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맑고 선한 글이 안나왔던 건, 어쩐지 그런 글은... 자기 기만처럼 느껴졌달까요.  


그래, 그러면 너만의 인상적인 글감을 찾아 쓰라고 말할 수도 있으시겠지요. 제가 또 나름대로 두 달간 브런치 스토리를 탐색하며 인기 있는 글들을 분석해 봤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런 글들도 제가 쓸 수는 없겠더군요. 상처 받았습니다, 이혼했습니다, 학교를(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아팠습니다, 나쁜 시어머니를 두었습니다, 이민 갔습니다, 국제 결혼을 했습니다, 망했습니다... 와 같은 글들이 제일 인기가 좋아 보였는데요. 물론 저 역시 가장 인상 깊게, 또는 감명 깊게 읽은 글들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 글은 감히 제가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었습니다. 저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집순이일 뿐인지라 그런 글은 쓸 수 없었습니다.


에디터 님, 방금  글쓰면서 깨달은 사실인데 애초부터 광장에 걸려도 괜찮은 글이란 건 제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맑은 글도 못 써, 인상적인 글감도 없어, 이제껏 제가  모든 글 중에서 부끄럽지 않은 글은 아예 존재하질 않았던 거였네요.

아... 그래도 앞으로는 제 글 중에서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운 글을  메인에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 정도는 부탁 좀 드려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에디터 님께 아주 인상적인 글도 맑은 감성의 글도 아니지만, 평범하디 평범한 제 글을 픽해달라고 조르는 중입니다.  


(더럽고 치사해서 앞으로 너의 글 중에서 그 어떤 글도 픽하지 않겠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 대단한 관종이거든요. 글이 메인에 걸릴 때마다 가족에게 자랑한단 말이예요. 아, 물론 어떤 글인지는 말하지 못합니다만.)




에디터 님, 지금까지는 그냥 해 본 말인 것 아시죠. 정말 적고 싶었던 것은 그러니까 에디터 님, 사랑한다는 거였습니다. 이런 공간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려요. 복직 전에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 덕분에 행복합니다.


브런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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