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을 입고 어른을 꿈꾸던 아이들

"남자는 에스프레소죠"

by 온 이든

병원이 리모델링을 하던 조금은 어수선한 계절이었다. 병동 몇 개가 이사를 하고 임시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나는 정형외과 암 병동으로 로테이션을 가게 되었다. 그곳은 내가 알던 암 병동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주로 노년의 환자분들이 많았던 이전 병동과 달리, 그곳엔 아이들이 있었다. '골육종'. 뼈에 암이 생기는 이 병은 얄궂게도 가장 푸르러야 할 10대와 20대 초반의 청춘들에게 주로 찾아왔다. 내 눈엔 그저 아직 앳된 10대 초반의 아이들, 혹은 나보다 고작 몇 살 어린 동생들이 환자복을 입고 그곳에 있었다.


당시 나는 신규를 벗어난 4~5년 차 간호사였다. 일에 치여 허덕이던 시기를 지나, 환자와 눈을 맞추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고, 틈만 나면 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골육종의 치료 과정은 험난하다. 수술 전 항암, 수술, 그리고 수술 후 항암. 대략 1년이 조금 안 되는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4기 아이들이라면, 기약 없는 치료를 이어가야 한다. 학교 대신 병원이, 교복 대신 환자복이 그들의 일상이 된다.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은 수술 후였다. 살기 위해, 혹은 더 이상 전이를 막기 위해 누군가는 수술 후 다리를 절게 되고, 누군가는 팔이나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잃어버린 팔다리가 여전히 붙어있는 듯한 극심한 고통, '환상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는 그 유령 같은 통증 앞에서 아이들이 울부짖을 때, 나는 차마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건 동정이 아니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너무 아프고 무력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마냥 슬픔으로만 가득 찬 곳은 아니었다. 그곳은 10대 특유의 생기발랄함과 반항심, 그리고 순수함이 공존하는 그들만의 우주였다.


내가 아이들을 예뻐한 만큼, 아이들도 나를 참 잘 따랐다. 출근길 병원 진입로를 걸어 올라갈 때면 멀리서부터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수액 폴대를 끌고 내려온 아이들이 병원 현관 앞에 쪼르륵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누나! 선생님! 빨리 와요!"


그 모습은 내 기억 속에 박제된 '우주 최강의 귀여움'이다. 가끔은 자기들 용돈을 털어 편의점 캔커피를 내밀며 묻곤 했다. "커피 맛 어때요? 나도 빨리 어른 돼서 커피 마시고 싶다."


기억에 남는 녀석이 있다. 힘든 치료를 모두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를 찾아온 아이였다. 멋진 어른이 되었다며 원내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물론 계산은 '진짜 어른'인 내 몫이었다. 녀석이 고심 끝에 고른 메뉴는 '에스프레소'.


"남자는 에스프레소죠."


에스프레소 마시는 남자 어른이 그렇게 멋있게 보였단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녀석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환상과 현실은 다르다나. (ㅎㅎ) 결국 우리는 낄낄거리며 큰 잔에 뜨거운 물을 한가득 부어 '연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셨다.


물론 모든 이별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항암을 마치고 기쁘게 떠났지만,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함께 지내던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아이들은 그 두려움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침묵하곤 했다. 슬픔이라 부르기엔 너무 거대하고 차가운 공포가 병실을 감돌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그 아이들의 곁을 지키던 어머니들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것이다. 40대, 혹은 50대.


그때는 몰랐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는 엄마의 심정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을, 까맣게 타들어가는 그 마음을. 20대의 나는 그저 아이들이 안쓰러웠을 뿐, 그 뒤에 서 있던 어머니들의 무너지는 어깨를 따뜻하게 안아드리지 못했다. 그게 지금도 못내 마음에 걸린다.


행복했지만 아팠고, 웃었지만 울었던 날들. 어떤 교훈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억지로 슬픔을 떨쳐내지도 않는다. 그저 내 간호사 인생의 한 챕터에 그 아이들을 고이 담아두었다.


어떤 날은 그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다. 쓰디쓴 에스프레소 향 같은, 나의 어린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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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든의 덧붙임

- 골육종 (Osteosarcoma):

뼈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 뼈 성장이 활발한 10대 청소년기에 주로 발병하며, 무릎이나 어깨 등 긴 뼈의 끝부분에서 흔히 발생한다.


- 환상통 (Phantom Pain):

팔이나 다리 등 신체 부위를 절단한 후에도, 그 부위가 여전히 있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증상. 신체는 절단되었지만, 뇌가 해당 부위의 신경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해 느끼는 통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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