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다 보면, 별것 아닌 말에 마음이 긁힌다. 내가 가장 많이 긁히는 말은 ‘애가 낯을 가리네.’ 내지는 ’애가 예민하다.‘는 말이다.
마트에서 어떤 직원분(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유아차에 앉아 있는 아기의 맨다리를 마구 쓸어대며 아이구 시원해 시원해라고 하셨다. 처음 당하는 일이고, 다리 정도는 그래도 괜찮겠다 싶어서 아무 말 안 했다. 그런데 아기는 달랐다. 요 작은놈도 불쾌함을 아는 건지 “앙!“ 하고는, 금세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눈물을 그렁그렁 모으는 거다. ”어머 아기가 낯을 많이 가리네. 좀 예민한가 보다. “라는 말로 자기의 잘못을 아기에게 모두 떠넘기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언짢았다. “저희 아기 낯 안 가려요. 순하고 착한데, 기분이 나빴나.” 이래버렸다.
이 일화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모르는 이의 무례함보다는 나도 모르게 감추고 있던 욕심 같은 거였다. 우리 아기는 순하고, 착한 아기. 절대로 예민하거나 낯 가리지 않는 아기.라는 욕심 어린 착각.
순하고 착하기만 한 아기가 어디 있을까. 모든 아기는 불편하거나 아프거나 무섭거나 배고프면 운다. 저도 모를 다양한 이유로 반드시 운다. 어른도 놀라는데.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당연히 아기도 낯설고 무서울 수 있다. 낯도 가릴 수 있다. 당연한 건데. ’우리 아기는 순하고 착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이면 좋겠어.‘ 하는 수준 낮고 깊이 얕은 욕심을 품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누구라도 ‘얘 낯가려? 승질있네.‘ 같은 말을 하면 발끈하곤 했다. 아니라고. 우리 애 안 그런다고.
이제는 그런 말에 긁히지 않겠다. 누가 또 그러면 ’네. 좀 그런 편인가 봐요. 오늘은 기분이 그런가 봐요.‘라고 편안하게 넘겨버릴 테다. 벌써부터 내 욕심과 기대를 애한테 잔뜩 얹어두는 꼴이라니.
우리 아기는 천재예요. 우리 아기는 남달라요. 하는 무슨 무슨 맘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나도 별수 없다. 그들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걸. 내 새끼 예쁨만 받고 칭찬만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뭐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 애를 대하는 태도, 그 애를 바라보는 관점 같은 건 내가 고르고 연단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새끼 최고 같은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역시 내가 먼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온전한 내 몫이다. 사실 우는 아이를 보고 낯 가리네, 예민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영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나도 다른 애
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할 때가 있었다.
우리 모두 다 그럴 수 있으니까.
일단 나부터 잘 처신해야겠다.
긁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