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저물고 밤이 되면 술을 찾는다. 그렇게 잊고 싶을 기억들이 희미해질 만큼 취한 채 나의 방으로 돌아오면, 나는 또 희끗희끗 남은 기억들을 더듬어 글로 엮어본다.
모든 마음이 버겁고 피곤하다. 어느 생각에 사로잡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지면 머리를 흔들며 자리를 뜨곤 한다.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타각거리는 발소리. 현실이었던 것은 환상이 되었고, 바라지 않았던 현실에 던져진 나는 또 저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기분으로 잠을 청해본다.
어떤 기억은 깊은 슬픔으로써, 또 어느 기억은 터질듯한 분노로써 괴롭다. 나는 그것들에 매몰되어 옴짝달싹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가쁜 숨만을 내쉬어 본다. 이따금씩 야박스럽고 연옥과도 같은 세상이 내게 삶을 그만두라고 종용하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마다 간절히 바라건대, 어딘가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깊은 골짜기. 그곳에서 실족을 하여 깊고 긴 추락 끝, 그 밑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객사하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 물이 범람하여 부서진 머리와 싸늘해진 몸뚱이를 바다로 이끌어 그 안의 모든 물고기가 잔뜩 불어버린 나의 살로 배를 가득 채우고 뼈는 모두 짠 기에 삭아버려 바다와 한 몸이 되고만 싶다. 누구도 찾지 않지만, 누구나 지나칠 수 있을 어딘가가 부디 내 무덤이길 바라본다.
태생이 예민한 나는 어느 상처도 주고 싶지 않고, 어느 상처도 받고 싶질 않다. 보고 싶은 이들을 생각하면 그저 깊은 잠에 빠져들어 기나긴 꿈 속에서 내가 바라던 그들의 모습과 마주하길 바라곤 한다. 그리고 그러질 못 해 눈치를 본다. 어쩌다 이곳까지 와버렸을까. 이십 대 초반의 다짐처럼 서른 즈음 삶을 마감했다면 지금의 고통을 느끼진 못 했으리라.
그리고 그 와중에 당신 걱정을 한다. 내 육중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길 바라곤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당신의 말을 믿어주지 못하는 나라면 당신은 얼마나 억울할까. 몇 개의 거짓을 낙인으로 찍어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라면 얼마나 속상할까. 당신 또한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무거운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나 하나 괜찮아지면, 나 하나 넘어가면 그만인 것들이니까. 결국 끊어내지 못하고 이어가는 것은 나니까. 모든 책임은 나의 것이 되는 게 된다.
비루한 몸뚱이와 뒤틀린 결핍. 부족한 능력, 그리고 부정한 생각과 그에 따른 불안정한 정서. 결국 모두 나의 탓이 된다. 놓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것이 내 삶에 고개를 치켜들 줄 몰랐다는 변명은 누구도 이해해 주질 않는다. 나조차도.
마음이 전부인 사람이었기에 마음이 아닌 것은 결코 연장선이 되질 못 했다. 그렇기에 당신만이 계속해서 나의 연장선이 되어 이어졌다. 나는 웃긴 사람이 아닌데, 당신의 웃는 모습이 참으로 좋기에 자꾸만 당신을 웃기려 애쓰게 된다. 당신이 나로 인해 자주, 많이, 활짝 웃기를 바라곤 한다. 미숙한 고백처럼 들릴까 싶어 말을 하진 않았다만,
내 마음이 그렇다.
그저 우는 것이 싫다. 나로 인해 우는 당신도, 나로 인해 우는 나도. 그렇기에 모두 잊고 싶어 술을 들이켠다. 부디 술이 뇌를 절여 번잡스러운 생각들을 희미하게 남기길 바란다. 오늘은 아니었다. 번잡스러움이 지워지질 않아 잠을 삭히고 글을 써본다.
매몰되고, 처박히고, 떠내려가고, 살갗이 뜯기고, 삭아들어간다. 나는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되는 것일까. 매몰되는 와중에도 괜스런 의문을 홀로 읊조린다.
매몰시키는 것은 나의 조악하게 껴맞춰진 기억과 어림짐작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적 생각이지만, 결국 그 매몰된 곳에서 나를 건져내주는 것은 당신이었다. 그때에 더 붙잡지 못하고 놓아버림이 아쉽고, 더 빨리 돌아가지 못해서 미안함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나는 왜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싶어 안달인 걸까. 모든 진실을 마주한다고 해서 납득이 되는 것이 아니거니와,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더욱 무거워짐이 분명한데 말이다. 깊은 수렁에 빠지는 듯한 매몰증은 홀로 있을 때에 가중된다.
믿기로 하였으니 더 이상 비겁하게 진심을 떠보는 얕은수는 쓰지 않기로 한다. 믿지 못할 거라면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으니까. 내가 직접 마주하지 않았던, 그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현실로 끌고 오지 않기로 한다. 그저 나에 대한 미안함에 내 품에 안겨서 울던 당신의 모습만을 남기기로.